사유의 여백

2부를 끝내며

by 무뿔

넓은 주차장 한가운데에 차를 세울 때가 있다.
좌우에 차도 없고, 벽도 멀리 떨어져 있다.
공간은 충분한데 이상하게 마음이 불안하다.
차 안에서 주차선을 정확히 가늠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럴 때 나는 주차장의 한 쪽 끝으로 가서
핸들의 중심축을 주차선에 수직으로 맞춘다
차의 바퀴가 일단 차선과 나란할 때 제대로 간격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차에서 내려 확인해 보면,

그제야 차는 선과 나란해져 있다.
바깥에서의 기준은 안에서 찾기가 어렵다.
내 안에서의 형상을 바깥에 맞추어 정렬한다는 것은

차안에서 차선과 나란하게 핸들을 조작하는 것과 같다.

안과밖의 교차점 즉 서로 겹칠 수 있는 기준을 찾는 것이 핵심이다.

안에서는 밖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때 잘 보이지 않는 기준을 찾으려 애쓰기 보다는
임의의 선을 하나 긋고 안과 밖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교차점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평행사변형의 면적을 구한다고 생각해보자.
도형 안에서 높이를 찾으려 하면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는다.

하지만 평행하지 않은 두 변을 임의로 연장해서 외부의 한 점에서 만나게 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평행사변형 상단에 임의의 꼭짓점을 공유하는 서로 닮은 두 삼각형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 닮음 관계를 기준으로 삼는 순간, 평행사변형의 높이를 직접 구하지 않아도 면적은 자연스럽게 읽힌다.

도형 안에 답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기준이 안에 없었던 것이다.


읽기도 마찬가지다.
텍스트 안의 단서만으로는 윤곽이 드러나지 않을 때가 있다.
의혹을 품고 몇 개의 단서를 임의의 선처럼 연장해 볼 때, 그 선들이 서로를 가리키는 지점이 생긴다.

그 교차점에서 나는 텍스트를 “이해했다”기보다, 나와 텍스트의 관계가 잠시 곧게 맞춰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기준이 이미 주어져 있다는 믿음을 내려놓으면, 책을 주어진 기준에 맞춰 이해해야 한다는 강박은 내 안의 의혹과 텍스트 안의 단서를 맞추어 보려는 생각으로 전환된다.


책은 다른 우물에서 온 흔적이다

책은 답을 주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책은 다른 우물에서 세계를 바라본 흔적이다.

그래서 읽는다는 것은 이 다른 세계와 나의 우물을 연결하는 임의의 선을 그어서
내가 서 있던 우물의 깊이와 벽을 조금 더 정확히 확인하는 과정에 가깝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안의 의혹과 견해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가이드를 의심하고

나와 텍스트와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이다.

책의 마지막을 덮으면 또다른 독서가 시작된다.
나와 책의 관계에서 얻어낸 경험을 일상속에서 다시 읽어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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