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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Jul 16. 2023

글쓰기 재활 훈련

내가 글을 쓰며 얻었던 것들

from. 일 년 전의 마침표




취뽀에 성공한 지 어느새 두 달 차. 정신없이 출근 퇴근 잠만 두 달이나 반복한 후에야 여유가 조금 생겼다. 아주 조금...주말에 뭔가를 할 수는 있을 정도...?


그러다 보니 매일매일을 여유 속에 빠져 살던, 눈앞에 닥친 졸업시험을 애써 무시한 채 노트북만 두드리던 작년 이맘때가 떠올랐다.


지금 생각하면 참 대책 없이 놀던 시절이었지만 아무 의미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진 않았다. 글쓰기에 집중하면서 얻을 수 있던 게 많았으니까.

정신 못 차리고 취준도 안 하던 4학년 1학기 재학생


나는 글 쓰는 속도가 빠른 편은 아니다. 지금도 위 세 문장을 쓰는 데 걸린 시간이 거진 한 시간?

이미 완성된 문장을 읽고 또 읽으며 단어가 적절한지, 구조가 어색하진 않은지 고민한다. 그렇게 커피를 절반쯤 마셨을 때가 돼서야 한 문장에 n번째 마침표를 찍게 된다. 찐찐찐찐 최종. txt까지 오는데 몇 시간이 걸린단 말이지.  


이게 글쓰기로부터 얻어낸 첫 번째 습관. 내가 집중하는 주제에 대한 사고를 멈추지 않는 습관이다.

만약 글을 쓰고 있지 않는다면 나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정답은 간단하다. 아무 생각도 하고 있지 않을 거다. 아무 의미 없이 누워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을 내 모습이 너무나도 선명히 보이거든

퇴근하고 의미없이 빈둥거리던 내 마음에 비수를 꽂아버린 인스타툰

그냥 흘러가는 대로, 유튜브가 떠드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며 누워있기 몇 달째, 어느샌가 휴식=생각하기를 멈추기라고 당연하게 여기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영화? 글쓰기? 피곤하고 힘든데 그런 걸 왜 해? 그냥 누워서 쉬어야지."라는 인식이 어느샌가 마음속에 깊숙이 뿌리내렸다. 참 웃기는 일이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나에게 있어서 영화 보고 글 쓰는 게 최고의 휴식이었는데...

물론 생각하기를 멈춘다고 당장에 문제가 생기진 않는다. 하지만 꾸준한 사고는 어떤 방면에서나 발전을 앞당기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생각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에게 뒤처질 미래가 눈앞에 아른거리지 않는가?

그리고 이건 어떤 면에서나 유효하다. 직장에서나, 무언가를 학습하는데나 가장 우선시되는 건 멈추지 않고 사고하는 일이다. 수동적인 모습으로 시키는 일만 하고, 주어진 학습량만 공부한다면 한계를 넘을 수 없다.       

주절주절 길게 써놨지만 간단한 이야기이다.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낭비하기보단 보단 사고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나만의 무기를 조각하는 게 어떤 면에서나 좋잖아? 그렇게 만들어낸 무기가 영 쓸모없는 잡념이라 하더라도 무지 보다야 나을 테니까.




그렇게 글쓰기를 위해서 끊임없이 사고하게 된 뒤로 얻게 된 두 번째, 독서에 대한 열정이다.


펜을 잡든, 키보드를 두드리든, 무언가를 쓰기 시작하면 어떤 벽에 가장 높게 부딪힐까? 가장 먼저 어휘력이란 높은 장벽이 우리를 막아 세운다. 사전을 찾고 구글을 뒤져 어떻게든 어휘력을 극복하면, 이번엔 표현력이란 태산이 눈앞에 펼쳐진다.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뭔가 맛깔난 문장을 쓰고 싶은데, 어떤 느낌으로 써 내려갈지 분명히 뇌가 느끼고 있는데, 마음에 쏙 드는 문장 한 줄 단어 하나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이게 내 글 쓰기 실력의 한계인가 현타도 많이 오고, 점점 떨어 저가는 집중력은 덤.


이런 벽을 극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당연히 "독서"다.

책을 읽다 보면 다양한 말들과 마주치곤 한다. 기발한 비유로 감탄 속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말도 있는가 하면 아름다운 묘사로 가슴속에 사근히 남기고 싶은 말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빳빳한 종이 속에 숨어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당연히 이런 표현을 그대로 재활용하라는 게 아니다. 이렇게 마음 깊숙이 박히는 말을 자주 마주하는 것 만으로 사고하는 공간이 넓어지고, 활용 가능한 단어가 늘어난다. 여기서부터가 본인만의 문장이 창조되는 순간이다. 누구 군가 읽더라도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마침표까지 읽어주었으면 하는 그런 문장을 말이다.


아직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책을 집어드는 애독가가 되진 못했다. 이 세상 미디어에는 재밌는 게 너무나 많단 말이지... 애초에 전부 끊어버리고 책만 읽는다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기에 천천히 줄여나가야겠다. 정확히 말하면 책을 붙잡는 시간을 천천히 늘려야겠지.

이번에도 플옵 못 가면 다 같이 죽지 그냥




그렇게 느긋이 책장을 넘기고 타자를 두드리며 얻어낸 마지막, 자유로워진 사고다.

책을 읽으며 항상 깨닫는 건, 평소엔 상상치도 못한 관점을 통해 세상만사를 들여다보는 게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건 좀 아니지 않아?" 마냥 반대 관점으로 들여다본다는 게 아니다. "아 이렇게 바라볼 수도 있구나"처럼 무지했던 시각을 일깨워 준다는 의미다.


단편적이 예시를 들기 위해 기억을 되짚어보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선명히 떠오른다.

작중에서 칼 세이건은 외계 생명체는 존재하는가? 그리고 존재한다면 어째서 인류와 마주하지 못했는가?라는 SF소설과 비문학에서 골백번도 더 성찰된 단골 질문에 대해 대답한다.  

우선 외계 생명체는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한다. 우주에 존재하는 수억 수조 개 행성 역시 지구에 생명체가 만들어진 원인(번개와 같은 자연현상)들은 지금도 발생하고 있으며, 수억 년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이런 현상을 겪으며 생명체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설명한다. 여기까지는 흔하게 듣던 관점에서의 설명이다. 하지만 그의 관점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다들 우주에는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물과 산소가 존재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고 진화했을 우주 생명체에게 있어선, 물과 산소가 넘쳐흐르는 지구라는 행성이 하나의 지옥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상상치도 못했던 관점이었다. 또한 후자의 질문에 있어서 대답은


"우리가 외계 생명체와 조우하지 못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의 문명과 기술이 지구만큼 발전하지 못했다면, 우리 은하 속 지구라는 행성까지 도달하거나 신호를 전달할 방법이 없기에 당연히 만나지 못한다.


하지만 지구를 뛰어넘어 우주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만큼 진보했다 할지라도 조우할 수 없는 건 변하지 않는다. 왜일까? 그 해답은 지구에서 이미 찾을 수 있다. 만약 과학자들이 정글, 심해, 동굴에서 새로운 생태계를 발견했다고 생각해 보자. 그렇다면 과학자들은 우선적으로 어떤 행동을 취할까? 당장에 첨단 장비들을 챙겨 들어가 대대적인 조사를 실시할까? 아니다. 절대 개입하지 않고 생태계를 관찰만 할 것이다. 그러한 생명체들이 어떤 군집을 이루고 어떠한 특성을 지니는지, 어떻게 소통하는지에 대한 조사야말로 무엇보다 값지고 귀한 성과다.


이와 같은 논리는 그들과 우리 사이에도 적용된다. 가벼운 마음으로 우주를 여행하던 중 지구라는 푸르고 아름다운 행성을 마주하고, 그 행성 속에 인류라는 외계 생명체가 독자적인 문명을 이루어 막 우주까지 손을 뻗는 모습을 본다면, 호기심과 놀라움이라는 감정 속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보다는 발전해 가는 우리의 모습을 한 발짝 떨어져 지켜볼 것이다. 어쩌면 이미 우리 사이에 숨어서 지긋이 관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상상력이 뛰어난 n이라고 할지라도 이 정도 깊이까지 파고들어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거다. 한편으론 놀랍고 한편으로는 존경스럽다. 정해진 선이 존재하지 않는 상상력이란 측면에서, 누구보다 넓게 발을 디디는 드넓은 사고가. 이렇게 자유로운 사고를 일찍이 깨우치고 삶을 살아왔다면, 그간 내가 겪었던 많은 고민들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었겠지? 삶의 방향이 아예 달라질 수도 있을 거고.  

책장에 꽂혀있는 스테디셀러


그리고 자유로워진 사고는 글쓰기를 넘어서 삶을 살아가는데 유용하다. 편협한 사고를 벗어나 글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다양한 관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취향, 종교, 정치, 신념, 무엇이든 상대방이 살아온 인생이 큰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기에, 그리고 내가 상대방이 겪은 인생을 그대로 겪지 않았기에, 그 선택을 무시하거나 비하할 수 없다.

이렇게 넓어진 이해심이 인간관계에서 얼마나 큰 이점으로 작용할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이해할 거다. 마음속에 "왜 저래?"라는 문장이 피어나지 않는다면, 정말 너도 나도 행복할 거야.




분명 짧게 쓰기로 마음먹고 시작한 글인 테 쓰다 보니 오만 얘기가 다 나와버렸다. 이것조차 글쓰기의 장점이 아닐까? 위에 언급한 칼 세이건의 관점은 책에 쓰여 있는 문장을 그대로 따온 게 아니다. 인상 깊어 마음속에 희미하게나마 새기고 있던 그의 주장을 나만의 문장으로 풀어내본 것이다. 처음 해본 작문이었지만 매력 넘치는 작업이었다. 이 글 전체를 쓰는 중에서 제일 재밌었던 순간이었으니까!


계속 쓰다 보면 마침표가 찍히지 않을 느낌이라 일단은 여기서 마무리지어야겠다. 쓰다 보니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아져 산으로 갈 미래가 뚜렷이 보였다. 글쓰기 얘기하다 보니 책 얘기가 나오고, 책 얘기하다 보니 영화 얘기가 나오고, 영화 얘기하다 보니 예술 얘기까지 나올 예정이거든... 최근에 국립 현대 미술관에 처음 가봤는데 굉장히 인상 깊었어,,,


그리고 영화 얘기는 영화 글에서만 해야지.        


진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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