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투명한 미래에 불안하던 어린 소녀에게_잘 했고 수고했다
변호사시험에 합격해서 기뻐하던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4년차 변호사가 되었다.
아직도 나는 가끔 변호사시험을 다시 보는 꿈을 꾼다.
그래서 감사하지 않을 수 없고, 열심히 살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나는 대부분의 변호사들처럼 학창시절 모범생도 아니었고, 공부 잘하는 우등생도 아니었다.
놀기 좋아하는 천진난만하고 평범한 학생이었다.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아빠는 나에게 골프를 시작해보는게 어떻냐고 물으셨다.
아마 공부에 흥미도 소질도 없는 나에게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주셨던것 같다.
뜬금없었지만 활동적이고 운동을 좋아하던 나는 별 생각 없이 아빠를 따라 골프장에 갔다.
그렇게 나는 인생의 첫 갈림길에 놓이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프로골퍼가 되지 못했다.
골프를 잘 모르시는 부모님은 부족한 형편에 물질적 지원은 열심히 해주셨지만
어떻게 나를 가르치고 훈련시켜야 할지 전혀 모르셨다.
불행히 나에게는 운동선수로 성공할 수 있는 멘탈도 체력도 없었다.
결과는 당연했다.
중3 겨울방학
뉴질랜드로 3개월 간 전지훈련을 떠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골프선수로서의 성공은 너무 불투명했고, 내 인생이 벼랑끝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합출전, 전지훈련 등의 핑계로 학교는 거의 가지 않았고 영어 외 다른 책은 펴보지도 않았다.
할 줄 아는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불안했다.
내 마음을 모르는 아빠는 집으로 돌아온 나에게 뉴질랜드로 골프유학을 떠나 마음껏 꿈을 펼치라고 하셨다.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음에도 교육에는 아낌없이 지원해주신 부모님께 참 감사하고 죄송하다.
나는 아빠에게 골프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아빠는 당황하셨고 무슨 계획이냐고 물으셨다.
아무 계획도 자신도 없었지만 그냥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별 다른 반대없이 아빠는 그러라고 하셨고
다음날부터 나는 골프장이 아닌 도서관에 골프백이 아닌 책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너무 막막해서 눈을 뜨면 무작정 도서관에 갔다.
어떻게 공부를 하는지도 모르고 책을 읽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홀로 도서관 생활은 5년 간 이어졌다.
대학을 가고 졸업하고
로스쿨에 입학하고 변호사가 되기까지
외롭고 힘들었다.
하지만 내 기준에 나는 항상 부족한 사람이어서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했던것 같다.
늘 앞만 보고 달려가느라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을 돌보지 못했다.
그래서 꿈꾸던 변호사가 되고 안정된 삶을 가져도
마음 한 켠에 자리잡은 상처의 기억들이 불쑥 불쑥 떠오른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치유되고 사라지는게 아닌가보다.
인생 제2막을 시작하기 위해
더 늦기 전에 그 시절 나에게 위로의 편지를 쓰고 싶다.
고생했다고. 포기하지 않고 꿈을 이뤄 대견하다고.
앞으로는 자신감을 가지고 새로운 인생을 행복하게 살라고.
어른들은 잘 모른다. 아니 알아도 망각한다.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사춘기 청소년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상처가 된다는 것을
한마디의 응원과 믿음이 한 사람의 미래를 바꾼다는 것을
나의 진솔한 경험담이 부디 나와 주변에 위로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