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이모션 - 유니버설 발레단>을 감상한 후
우연히 그런 말을 들었다. 한국인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다고. 나는 이 말에 전격 동의한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리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따뜻해지는 한국의 정. 초코파이에도 적혀 있는 ‘정’은 대체 이 세상에서 어떻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 ‘정’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해오름 극장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코리아 이모션 - 유니버설 발레단>은 2021년 제11회 대한민국발레축제 공식 초청작으로 초연한 <트리플 빌 Triple Bill> 중 가장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다. 한국인의 고유 정서인 ‘정’을 아름다운 몸의 언어로 표현한 공연으로 총 9개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동해 랩소디>, <달빛 유희>, <찬비가>, <다솜 I>, <다솜 II>, <미리내길>, <비연>, <달빛 영>, <강원, 정선 아리랑> 이 9개의 작품을 통해 가족, 연인, 형제와 자매, 그리고 친구 간의 정을 표현했다. 모든 작품이 인상적이었지만 이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두 작품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며 정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커다란 보름달 아래, 네 가지의 꽃이 서서히 깨어나고 있다. 각각 다른 색의 무용복을 입고 기지개를 피우는 듯이 가슴을 하늘을 향해 펼치기 시작한다. 하지만 참으로 신기하다. 꽃들은 햇빛을 따라 고개를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왜 이 꽃들은 보름달 아래에서 환히 고개를 들게 된 것일까.
관람객으로서 이 꽃들은 각자의 소원이 있는 듯했다. 예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꽃들도 자신들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가득 담아 피었던 것을 아닐까.
꽃들의 소원은 무엇일까. 더 크게 자라게 해달라고, 더 오래 살게 해달라고. 네 명의 무용수들은 각자 다른 움직임으로 소원을 표현했다. 다르게 움직이던 무용수들 즉 꽃들은 자신들의 두 손을 하나로 모으는 안무를 보여줬다. 이 부분에서 난 꽃들의 소원이 그들의 안정, 장수, 평안이 아닌 정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 달님에 대한 정이라고 상상했다.
단순히 소원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닌 연모와 은애의 대상인 달. 그렇기에 꽃들이 그 아래에서 춤을 추며 자신들을 뽐낸 것이 아닐까. <달빛 유희>, 여기서 꽃들이 말하고 있다. 정은 누군가를 경외하는 마음이라고.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달빛과 함께이기에 유희를 즐길 수 있었던 꽃들의 “정”다운 모습이었다.
네 명의 무용수가 차례대로 등장한다. 뒤 배경엔 안개가 자욱한 산이 둘러싸여 있다. 산의 정령 같은 표정으로 천천히 안무를 시작한다. 특이한 점은 각 커플마다 서로 마주 보면서 춤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별히 여자 무용수가 오른쪽으로 가려고 팔을 뻗으면 남자 무용수가 뒤에서 껴안듯이 당긴다. 반대로 남자 무용수가 뒤돌면, 여자 무용수가 그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타이밍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의 타이밍은 왜 맞지 못하는 것일까. 누군가의 진심을 알아주는 일은 너무나 어렵다. 자신의 사랑이 상대에게 닿기 위해서는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데 그 노력에 자신이 먼저 지치게 되는 슬픈 정의 모습을 보여주는 <비연>이다. 물론 나의 상상이지만 그들은 서로를 너무도 많이 사랑했기에 서로를 마주 잡을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다면 그 사랑을 꽉 붙잡는 것이 아니라 연모의 끈을 잠시 느슨하게 푸는 것이 좋겠다. 불안해하지 말고, 지치지 말고 상대와 함께 하는 <비연>을 떠올리자!
<비연>, 바람을 이용하여 연을 하늘 높이 띄움을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연이란 작품에서는 인연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의 바람이 저 멀리 닿는 날을 꾸준히 기다리면 인연이라는 우리의 연도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나의 엄마와 같이 보았다. 발레와 한국 무용의 조화라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모녀의 정을 나타내는 작품 <다솜 I>을 보면서 엄마를 잠시 바라보게 되는 순간, 코리안 이모션 ‘정’이 머릿속을 관통했다. 시선이 머무는 것, 생각이 머무는 곳 그것이 바로 정임을 말이다. 나의 코리안 이모션은 바로 이것이다.
"시선이 머물며 생각을 머금게 하는 대상 혹은 장소"
@ 원문 링크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4018
@ 아트 인사이트 https://www.artinsight.co.kr/index.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