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fore Sunrise

— 말이 아직 안전했던 시기

by kate


비엔나의 밤에

두 사람은 계속 걷는다.


그리고 쉼 없이 말한다.


질문이 나오고,

대답이 길어지고,

다시 질문이 이어진다.


그런데 그 많은 말들 사이에서

꼭 해야 할 말은 보이지 않는다.


이 장면의 대화에는

고백도 없고,

확정도 없고,

요구도 없다.


대신

조심스러운 가정들이 오간다.


“그럴 수도 있겠네.”

“만약에 말이야.”

“어쩌면.”


말은 계속 이어지지만

어디에도 정착하지 않는다.

그들의 언어는

상대를 향해 곧장 가지 않는다.


상대 주변을 돌고,

거리를 유지한 채

생각만 나눈다.


가끔은

한 사람이 말을 멈추면

다른 사람이 아주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이어받는다.


마치

미리 정해둔 순서라도 있었던 것처럼.

마치

그사람이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믿음처럼.

서로의눈을 맞추며

나는 너의 아무이야기라도

들을준비가 됐다고

말하는것처럼.


그럴 때

우리는

이 사람이 나와 같은 결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전함을

느낀다.


그래서

다음 말을

조금 기대하게 된다.


3편 비포미드나잇 에서

말과는 대조적이다.


3편에서 그들은

상대의말에

상처로

위험함을 느끼는것과는

아주 다르게.


그들은 서로에게

눈을 떼지못하고

서로의 말을

바라본다


그래서 이 장면의 대화들은

설레임을 가져온다.


아직

아무것도 다 말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확정하지 않았다.


말은

겉돌고,

비껴가고,

중간에 멈춘다.


그래서 대화는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고,

그 미완성이

오히려 감정을 더 오래 붙잡는다.


관계가 생기기 전의 말은

이렇게 작동하는지도 모른다.


말은

상대를 규정하지 않고,

상황을 밀어붙이지도 않는다.


그저

가능성의 형태로

잠시 머물다 지나간다.


말이 많았던 밤이

특별히 위험하지 않았던것은

어쩌면 그 밤이

아직 아무 관계도 아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작가노트


Before Sunrise에서
그들의 말은 아직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가능성은 가볍고, 대화는 자유롭다.
말은 관계가 될 수도 있다는 감각만 남긴 채,
선택을 시간에 맡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말은 더 이상 그렇게 순수할 수 없다.


Before Sunset에서
그들이 파리의 오후를 걸으며 나눈 말들이
어떻게 관계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 않고,
오히려 결정의 순간을 지연시키는 역할을 하는지 보인다.
말이 고백이 아니라
관계를 아직 현실로 만들지 않기 위한 유예의 장치가 되는 순간들에 대해.


그리고 다음
Before Midnight에서
말이 더 이상 시간을 벌어주지 못하고
대화 하나하나가 관계를 견딜 수 있는지 시험하는 질문이 되는 과정을 따라가려 한다.
이제 말은 가능성도, 유예도 아닌
관계를 흔드는 힘이 된다.


이 시리즈는
사랑 이야기 넘어
말이 관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말이 언제 관계를 열고,
언제 버티게 하며,
언제 시험대에 올리는가, 를

따라가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