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1)
“안녕?”
나는 그렇게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뭐, 뭐야?”
내 앞에 있던 갈색 머리의 남자가 기겁하더니 그렇게 외쳤다. 나는 기다란 두 귀를 좌우로 가볍게 흔들며 그에게 말했다.
“초면에 사람 보고 뭐냐고 묻는 건 실례라고 생각하지 않아? 난 묘연이라고 해. 밤도 늦었는데 이 근처에서 자고 가는 게 어때, 경주 참가자분들? 여기가 땅도 다 녹아 있고 탁 트여 있어 한숨 돌리고 가기 적당할 거야.”
그 옆에 서 있던 긴 머리의 남성이 잠시 무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동안, 갈색 머리가 먼저 넉살 좋은 웃음과 함께 말했다.
“아, 미안, 순간적으로 놀라는 바람에. 확실히 좋은 곳이네. 경주만 아니었다면 여기서 잔치를 벌여도 됐겠어. 그럼 토끼 씨만 괜찮다면 여기서 자고 가도록 할까? 어때, 사영?”
그 사영이라는 긴 머리의 남성은 고개를 작게 끄덕이는 것으로 그 대답을 대신했다. 동의는 했으나 눈으로는 날 여전히 경계하는 상태였다. 그들의 뒤에서 괜찮아? 하는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로 미루어보건데 이들의 일행은 어림잡아 4명, 딱 적당한 숫자였다. 내가 근처에 모닥불 피울 준비를 해둔 곳이 있다고 말하고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이 나무는 대체 뭡니까?”
내가 뒤를 돌아보니 한 명은 다른 일행들을 데리러 가 있었고 나머지 하나가 느티나무 앞에 고목처럼 서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반달의 위태로운 빛이 느티나무 가지 사이사이로 흩어졌다. 나는 부드러운 밤바람을 느끼며 눈을 반쯤 감고는 그에게 답했다.
“나도 몰라. 다만 분명한 건 이 경주는 그냥 단순한 내기 따위가 아니라는 거지. 우선 따라와. 너희가 다 모이고 나면 차근차근 말해줄 게 있으니까.”
그는 한쪽 손으로 허리춤에 달려있는 가죽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당신의 목적은 뭐죠? 무언가 다른 속셈이 있는 것 아닙니까?”
나는 다시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하며 그에게 말했다.
“내가 너흴 해치려고 했으면 다른 사람들을 불러오기 전에 진작 했겠지. 안심해. 난 우승에 관심 없으니까. 이렇게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상황에서 사람들끼리 피터지게 싸우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아? 그 정도 상황 파악은 될 텐데.”
그는 이 말에 어느 정도 납득을 했는지 이후로는 말 없이 따라오기 시작했다. 아니면 이런 몸집 작은 토끼 한마리 정도는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을지도 모르고.
나는 주변 지형보다 약간 높은 곳에 자리를 잡고 미리 모아두었던 장작들을 모아 부싯돌로 불을 피웠다. 불이다, 하는 호랑이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덕 위로 올라온 사람들이 하나씩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때, 원숭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야, 대단하네. 우리에게 뭐 원하는 거라도 있어? 이거, 뭔가 보답이라도 해야겠는걸.”
나는 마른 잎을 불씨에 밀어넣으며 그에게 말했다.
“괜찮아. 너희가 이곳에 오고 내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충분하거든. 정 보답을 원한다면 끝까지 들어줘. 밤을 새는 한이 있더라도.”
호랑이의 목소리.
“무슨 이야기?”
나는 그의 푸른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신에 관한 이야기.”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을 설명하기 전에 먼저 나에 대한 이야기부터 풀어야겠지. 내가 왜 경주에 참여한 자들을 붙잡고 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하는지. 답은 간단했다. 단지, 이렇듯 신에 도전하는 인간은 어느날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법이기에, 언제 신벌을 받을지 모르니 그 전에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신의 정보를 퍼뜨려 두는 것, 그것뿐이었다. 그래야 내가 죽어도 누군가가 나 대신 그들을 찾아줄지도 모르니까. 또 이 지긋지긋한 경주를 멈추려면 이 방법밖에 없기도 하고. 그중에서도 이들을 굳이 불러들인 이유는 내가 경계심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사실 이들을 마주하기 전, 이들이 숲속에 있었을 때부터 계속 하는 대화들을 엿듣고 있었다. 내 나름대로의 선별 방식이랄까. 그리고 이들의 대화를 들어본 결과, 참가자들을 무차별적으로 처리하고 다니는 악한 이들은 아닌 것 같아서. 내가 경주에 와서 처음 만난 이들은 우승을 위해 다른 참가자들을 죽이고 다니던 자들이었다. 결국 그 한심한 놈들은 나중에 다 괴물에게 죽긴 했지만.
잠시 불꽃이 튀는 소리에 시선을 내렸다. 다시금 떠오른 건, 내게 처음으로 ‘신’이라는 단어가 던져졌던 그 날이었다. 그래, 내 목적은 신에 대한 정보를 얻고 결과적으로는 이 경주 자체를 멈추는 것. 아주 오래전부터, 그것이 나 혼자만의 속죄이자 숙명이었다.
내가 태어난 곳은 어느 한적한 마을이었다. 인자한 부모님과 굶주리지도, 무언가에 위협받지도 않는 그런 평범하고 안온한 일상, 한때는 그런 날들이 내 인생의 전부이던 때가 있었다. 그러니까, 날씨가 좋은 날이면 어머니의 발치에 앉아 부드러운 목소리로 들려오는 옛이야기를 듣곤 하는 날들이 당연한 순간이라고 해야 할까. 이제 와서는 그 마을에서 보냈던 기억이 많이 스러지긴 했으나, 여전히 그 순간들에 느꼈던 따뜻한 온기만은 어렴풋이 귓가를 울렸다. 엄마의 손은 참 따뜻했었지, 하는 감각들 말이다.
이러한 추억들은 내가 열두 살을 맞이했을 때 무참히 막을 내렸다. 잠시 부모님의 심부름을 하러 장터로 가는 길에 검은 손들이 그 여린 소녀를 덮쳤던 것이다. 눈을 뜨니 그곳에는 내 또래의 어린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그곳은 한눈에 봐도 감금소였다. 빛도 들지 않았고, 아이들의 얼굴은 두려움에 잠식되어 있었다. 이후 검은 옷에 얼굴을 가린 사람들이 들어와 말하기를, 자신들은 이름하여 ‘신’을 모시는 사람들이고 너희들은 신의 강림을 위해 뽑힌 인재들이라는 것. 그것들은 단지 그럴듯하게 잘 포장된 말에 불과했다, 당연하게도.
그 다음은 그다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 뿐이다. 그곳에 갇혀 지내던 3년 동안 머리색이 특이한 빛깔로 물들어버렸으며, 곁에 있던 아이들은 너무나 쉽게 자취를 감추고 다음날 다른 아이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는 정도 뿐. 나는 그곳에서 기회를 노리다가 그들이 신당에 날 두고 잠깐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도망쳤다. 곁에 있던 아이들의 만류마저 뿌리친 채로. 그날, 나는 모두를 두고 혼자 살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날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멍청하게도.
어떻게든 마을까지 도망친 후에 나는 그대로 기절했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삼주가 지나버린 뒤. 급하게 사람들을 데리고 그 인간들이 있던 곳으로 가보았지만 그곳은 화재로 엉망이 된 상태였다. 연구기록은 물론, 살림살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그곳에서, 나는 내 친구였던 그 아이들도 모두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을 마주했다. 내가 사람들을 모아올까 봐 두려웠던 건지 그곳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고향에도 찾아가봤으나 날 기다리는 것은 내 부모님도 내가 사라진 후 일년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는 불행한 사실밖에 없었다. 내게 남은 거라곤 그들이 내내 중얼였던 그것—신. 어쩌면 그것이 비겁하게 혼자 도망쳐버린 겁쟁이가 속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지도 몰랐다.
“너희는 신을 믿어?”
“신?”
내 말에 모닥불을 쬐고 있던 호랑이가 되물었다. 나는 나뭇가지로 모닥불을 살짝 건드리며 다시 말했다.
“신은 정말 존재하는 걸까?”
“그 말은 신이 없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까?”
이번엔 뱀이었다. 나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글쎄, 적어도 지금 이 경주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니 신이 있다는 쪽에 무게를 두는 게 맞겠지.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단순히 신의 존재 여부에 대한 게 아니야. 신이 왜 이런 경주를 열었는가, 하는 의도에 관한 거지.”
그제야 모닥불 주변이 조용해졌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는 말을 이었다.
“난 오래전부터 신에 대한 정보를 모아왔어. 그리고 이번 경주가 시작되면서,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이 정보를 전해주고 나도 신에 대한 것들을 더 알아보기 위해 중앙으로 왔지. 아까 내 목적을 물었던가? 내 목적은 단순해. 너희가 신에 대해 알게 되고, 또 한명이라도 더 많이 살아남아서 신에 도달하는 것. 그것뿐이야.”
원숭이가 꼬리를 살랑이며 듣다 이내 입을 열었다.
“왜? 어차피 우승자는 한명이잖아.”
나는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거야. 이 경주에는 대전제가 있어. 우승자는 하나이며 그 우승자는 신의 은혜를 받는다는 것. 하지만 나는 이 경주가 단순히 우승만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지 않아. 신은 과연 이 경주를 통해 무엇을 하고 싶은 건지 다들 생각해본 적 없어? 단순히 어느 한 종족에게 은혜를 주기 위해서, 라는 자비로움을 신이 가지고 있다면 이렇게 사람들이 괴물에게 죽어나가도록 하는 방법 말고 다른 식으로 은혜를 하사해줄 수도 있었잖아? 어쩌면 신은 경주에 참여한 참가자들이 어떤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게 아닐까? 가령, 우승이라던지 말이야.”
나는 나무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저기 나무에 적혀져 있는 글귀, 다들 봤을 거 아냐. 이 경주에서 도망치라고.”
원숭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만 아까 물어봤던 것과는 좀 다른 투였다. 아까의 목소리에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면 이번에는 의구심이랄까.
“그래. 묘연 네 말이 맞다고 쳐. 그럼 우승이 되려 빛 좋은 개살구일 수도 있다는 거야?”
귀로는 멀리서 다른 참가자나 괴물이 다가오진 않는지 확인하며 그에게 답했다.
“아직은 가설일 뿐이야. 다만 신에 대한 정보를 얻어 신의 의도와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신의 목적이 뭐가 되었든 간에 어그러지지 않을까 해서. 그냥 의심만 하는 거지. 신의 은혜도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추상적인 개념이라서 도저히 이 경주에 대해 의심을 안할 수가 없달까. 그래서 말인데, 은혜라는 것은 과거의 신화처럼 소원이나 우승자를 신이 되게 해주는 것, 또는 단순히 그 종족의 번성일지도 몰라. 하지만 난 은혜가 신이 내리는 저주일수도 있다고 생각해.”
“저주?”
“응. 애초에 이상하잖아. 몇천년 동안 출입이 거의 없던 중앙으로 우릴 부른 것도 어쩌면 신이 참가자들을 모두 죽이기 위한 게 아닐까? 이 경주 자체가 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동물들을 파멸로 이끌고 있는 거라면?”
“신이 그럴 리가 없잖아요. 대체 왜……”
나는 코웃음치며 답했다.
“난 신이 선하다고 믿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