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보름달

신(3)

by 동글동글하게

“야, 거짓말이지? 이건…….”


시화에게로 다가가 땅에 놓여져 있는 그의 손을 잡았다. 핏기 하나 없는 차가운 손이 내 피부에 닿았다. 그 촉감을 느끼자마자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미 숨이 끊어진 지 오래라는 사실을. 작게 그의 이름을 중얼거리는 내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내가 좀 더 빨리 왔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근축은 아무런 얘기도 꺼내지 않은 채 내 뒤에 가만히 서 있었다. 아마 그것이 그 나름의 애도이겠지 싶었다. 나는 시선을 돌려 시화의 얼굴을 바라봤다. 기다란 잿빛 머리카락이 얼굴을 반절 정도 덮고 있었고, 눈은 고이 감은 상태였다. 그리고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복부에 큰 상처가 나 검붉은 피가 근처에 말라붙어 있는 게 보였다. 괴물이나 짐승의 것이 아닌 인위적인 자상. 이건 분명 타살이었다. 하지만 누가?


나는 시화를 찬찬히 살폈다. 그동안의 의뢰 경험으로 보건데, 범인은 항상 어떤 형태로든 그 흔적을 남기는 법이었다. 예컨데, 시화의 옷 아래쪽에 붙어 있는 회색빛 털이라던지 하는 것들 말이다. 그 털은 아주 소량이어서 눈에 쉽게 띄지 않았지만 그랬기에 아직까지 옷에 남을 수 있었던 모양이었다. 털은 밝은 회색인 것으로 보아 분명 시화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서 털을 잡아들고 근축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근축은 내 손에 들린 그것을 확인하고 나서, 놀란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그건…… 자솔이 거야.”


순간 하고 싶지 않았던 상상이 들었다. 털을 쥔 내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 모습이 근축에게도 보였는지 그는 무언가 말하려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나는 애써 침착하며 그에게 말했다.


“네가 아는 한 자솔이는 이런 짓을 저지를 애가 아닐 거야, 그치?”


턱—


갑자기 근축이 흙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미안해.”


아니, 왜 이렇게 극단적이야? 나는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해서 그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너 미안해하라고 그런 것도 아니고. 옷 더러워지니까 빨리 일어나.”


그리고 조용하게 덧붙였다.


“자솔이가 아니길 바라야지. 자솔이는 이럴 애가 아니잖아?”


그가 다시 일어나며 말했다.


“응, 아니지…….”


나는 다시 시화가 누워있는 쪽을 바라보며 그에게 말했다. 씁쓸한 미소를 띤 채로.


“푹 쉬라고 여기다 무덤이라도 만들어주고 갈 생각인데, 정 미안하면 그거라도 도와주던지.”


.

.

.


시화를 양지바른 곳에 묻고, 그 앞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나는 손으로 흙을 한 줌 떠 그의 무덤 위에 살포시 놓고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봐.”


내가 뒤 쪽에 서 있던 근축에게 말을 걸었다. 뒤쪽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낮은 대답이 들려왔다.


“응?”


나는 웅크린 채 그에게 조용히 물었다.


“아직 3시간 안 지났지?”


음, 너무 굳어있는 것 같아 나름 농담한 거였는데. 하지만 이런 내 의도와 무색하게 뒤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기에,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뭐, 내가 아직 살아있는 걸 보면 안 지났겠지.”


하하, 하…….


애써 웃어보려 했지만, 내 입에서 나온 웃음에는 힘이 없었다.


잠시 후, 그는 말없이 내 옆에 와 앉았다. 거친 손바닥이 바닥을 짚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그리고 한참을 말이 없다가, 마침내 조용히 말했다.


“응, 아직 안 지났어. 그러니까 좀 있다 가자.”


나는 무덤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죽지 말았어야지. 그렇게 떠났으면 화해할 기회라도 줬어야지. 이렇게 영영 못 볼 줄 알았다면, 그날 네가 떠나는 뒷모습을 어떻게 해서라도 말렸을텐데.


가만히 앉아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발 너머로 닿는 흙의 감촉이 어쩐지 어느 때보다 더 차갑게 느껴졌다. 나는 하늘을 향해 한번 기지개를 켠 뒤 근축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갈까. 더 있어봤자 좋을 것도 없고.”


그리고 그가 일어나는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근축, 너는 자솔이를 찾으러 간다고 했지. 나도 같이 갈 수 있을까?”


그가 약간 놀란 표정으로 내게 되묻자 나는 이로 아랫입술을 꾹 누르고는 답했다.


“시화를 죽인 범인을 찾고 싶어. 그리고 자솔이의 털이 나온 이상, 아마 그녀를 찾아야 뭐든 할 수 있겠지. 난 내 친구, 이렇게 억울하게 못 보내.”


근축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따라와도 좋다고 동의한 거겠지. 나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

다시 처음에 있었던 장소로 돌아왔을 때 어느새 숲속에는 땅거미가 드리워져 있었다. 저 멀리서 익숙한 주황색 머리카락이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왔구나! 기다리고 있었어.”


그리고 그 뒤에서는 사영이 바위 위에 앉아 이파리들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나와 근축을 보더니 두갈래로 갈라진 혀를 낼름거렸다.


“참 빨리도 오셨네요.”


난 그가 고개를 들자마자 그에게로 다가가 말했다.


“그건 됐고. 해독제 내놔.”


그는 잠시 고개를 기웃거리더니, 이내 한쪽 입꼬리를 비틀듯이 웃었다.


“그걸 믿었어요? 사실 그 침 끝에 독은 없었는데. ”


그는 빈정대듯 말하며 손가락으로 자기 목덜미를 툭툭 쳤다.


“순진하셔라. 제가 귀한 독을 그런 곳에다 쓸리가요.”


나는 멍하니 있다가 한마디 툭, 뱉었다.


“정말?”


사영이 약간 미간을 찌푸리며 답했다.


“당연하죠. 몸 상태는 본인이 가장 잘 아실텐데? 그리고, 애초에 제가 말했던 세 시간이 이미 훌쩍 지났잖아요.”


이걸 기뻐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차라리 화라도 내야 하는데. 지금 먼 길을 이동하거 나서인지라 피곤한 탓인지 나는 웃음을 흘리며 그에게 답했다.


“그래. 그것 참 고맙네. 우리 뱀 씨의 자비가 아니었다면 난 죽을 뻔 했는걸?”


목소리에 담긴 뉘앙스는 농담이었지만, 그 끝은 어딘가 힘이 빠져 있었다. 그런 나를 본 사영은 무언가 대꾸하려다 멈췄다.


그때, 인경의 목소리가 불쑥 들어왔다.


“근축, 자솔이는 만났어?”


“아니. 이미 떠난 뒤였어.”


나는 그 둘에게 그곳의 상황을 대략적으로 설명해주었다. 시화의 얘기는…… 이들과 상관없으니 빼고. 대신 말 끝에 내가 앞으로 동행할 거라는 얘기를 덧붙였는데 그 말을 듣는 표정들이 참 가관이었다. 뱀은 어쩐지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이었고, 호랑이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잘 부탁한다, 고 생글거렸으니. 내 말이 끝나자, 사영이 손으로는 풀들을 정리하며 중얼거렸다.


“그러면 쥐가 적인지는 결국 확인할 수 없었다는 거네요.”


근축이 바로 반박할 줄 알았으나 예상 외로 그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아마 저쪽도 지금 자솔의 살인 청부 의혹과 시화의 죽음으로 머릿속이 많이 어지러운 모양인데. 그 자솔이란 애는 도대체 어떤 심정인거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녀의 의중이 파악되지 않았다. 당연하잖아.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군가를 죽일 생각은 안 하는 거잖아. 그게 자신의 부모라면 더더욱. 이쯤되니 의구심마저 들었다. 분명 친부모는 아닌 것 같단 말이지.


사영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그가 근축에게 자솔과 무슨 관계냐고 물었다. 이에 근축은,


“내 딸이야.”


그 말에 사영이 약간 머뭇거리다가 차갑게 말했다.


“친딸이…… 아니잖아요.”


그 뒤는 정적. 나뭇가지들 사이로 흐르는 바람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우리 네 사람 중에 인경만이 도통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이었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주위를 한번 둘러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친딸이 아니라도, 마음만 이어져 있다면 충분한 거 아냐?”


사영이 작게 한숨을 쉬며 답했다.


“문제는 그 딸이 아버지를 죽이려 들었을 수도 있다는 거죠.”


나는 조용히 사영을 바라보았다. 차갑고 이성적인 판단. 그게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마음이 쓰렸다. 그리고는 근축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근축 씨, 힘든 건 알지만, 살인 의뢰가 한 번 있었던 이상 다음에 또 없을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잖아요. 전 동행자로서 위험 요소는 알고 있어야겠어요.”


근축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하나에 행동에, 여러가지 감정이 담겨 있는 듯했다.


“내 친딸이나 다름없는 애야. 다음번엔, 괜찮을 거다.”


사영이 의심하는 듯한 투로 말했다.


“확신할 수 있어요?”


“응.”


나는 그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다 말했다.


“그래, 뭐, 아직까지는 모르는 거잖아? 적어도 안 죽었으면 그걸로 된 거지. 일단 결승선 쪽으로 가자고. 그게 현재 우리의 최선이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며 흙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선은 자솔을 찾거나 우승을 하려면 뭐라도 움직이는 수 밖에 없었다.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일이 저절로 해결되는 건 역시, 있을 리가 없으니. 그래도 사람은 움직일 수 있기에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발을 내딛는 한, 무언가는 바뀔지도 모른다는 믿음. 나는 지금까지 그 믿음 하나로 살아왔다. 하루를 넘기고, 또 하루를 버티며. 그리고 그건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중앙에서의 앞길에 무엇이 있는지, 경주를 연 신의 목적은 무엇인지, 시화의 죽음은 무엇 때문이었을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나아가다 보면 풀리겠지, 하는 희망이 내 마음속에 자리잡았다. 예전에 어머니가 내게 말씀하신 게 있었다. 달은 둥글고 또 높아서, 신분을 막론하여 자신의 고운 빛을 모두에게 전해준다고. 내가 지금 어디에 있더라도 달빛이 닿지 않는 곳은 분명히 없다. 그리고 바깥에 있는 동생들도 분명 같은 빛을 보고 있겠지. 그 사실을 아는 한, 나는 무너지지 않았다. 아니, 무너질 수 없었다. 다른 이들의 사연은 알 수 없지만, 다들 중앙에 들어온 이상 비슷비슷하려나. 무너질 수 없어서, 그 간절한 마음에 경주에 참여한 것이려나.


노을빛인지 달빛인지 모를 빛 한줄기가 앞길을 밝혔다. 그리고 나는 마음속으로 가만히, 그 빛을 희망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것이 나라는 인간의 사는 방식이었다.



해가 지고도 조금 더 걷자 마침내 긴 숲을 벗어날 수 있었다. 숲 밖에는 넓은 들판에 듬성듬성 나무들이 서 있었다. 어두운 밤하늘과 조용한 들판은 어쩐지 스산한 분위기였으나 그래도 나무에 가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던 숲보다야 훨 나았다.


등 뒤에서 인경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괴물은 없지? 그렇지?”


난 괜찮으니 안심하라고 그에게 일러주고는 앞서가던 사영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는 커다란 느티나무 앞에서 멈춰 서 있었다.


“거기 뭐라도 있어?”


그리고 느티나무 쪽으로 다가선 순간,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을 수 밖에 없었다.


-도망쳐, 늦기 전에, 경주에서, 당장.


어두워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두꺼운 나무 몸체에 그을린 자국으로 쓰여 있는 것은 분명 그 문장이었다. 누가? 대체 왜?


그 순간, 나무 밑동에서 무언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안녕?”


그건, 하늘색 머리카락을 가진 토끼 종족의 소녀였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