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움직일 수 있는 한

신(2)

by 동글동글하게


수풀을 헤치며 걸었다. 내 뒤에서 따라오는 근축이란 이름의 소는 어째선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나는 자박자박거리는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그에게 말했다.


“내 눈치 보는 거야?”


뒤에서 그의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자랑이다. 내가 왜 이런 놈들이랑 엮여가지고. 솔직히 시화가 죽이려고 들었을 때 10년지기 친구와 싸워가면서 말려주고, 쥐를 찾고 있다길래 위치도 알려주고, 게다가 지금 기꺼이 길 안내까지 해주고 있는데. 화를 낸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은 없다는 건 알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애써 웃어넘기려 해봐도 말이지, 아니 누가 은인의 목덜미에 독침을 꽂냐고. 나는 가까스로 진정하려 노력하면서 그에게 말했다.


“걔는 원래 그래?”


그는 의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누구?”


이젠 진짜 몰라서 묻는 건지 날 놀리고 싶어서 저러는 건지조차 의문이었다.


“사영이라는 녀석 말이야.”


이름은 여기 오기 전에 다 나누고 온 터였다. 뒤에서는 어쩐지 보이진 않지만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을 거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모르겠는데.”


안 그래도 그가 내게 접근해서 독을 주입한 뒤에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따지긴 했으나, 그에게서 돌아온 답은 시간이 가고 있는데 어서 서둘러야 하는 거 아니냐는 능청스런 답변뿐이었다. 사람 목숨 가지고 장난 치는 놈은 딱 질색인데. 그 웃는 낯짝을 한대 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참았다. 그의 말대로 일단은 빠르게 다녀와서 해독제를 얻는 게 우선이었기에 무사히 돌아가고나면 그때로 미루기로.


나도 참, 물러터져가지고. 지금 세시간 뒤에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다만 실의에 빠진 사람을 무시하지 못하는 것은 내 오랜 천성이었다. 예전부터 도움을 줄 수 있겠다 싶으면 무작정 손부터 내밀고 보는, 이런 쓸모없는 오지랖으로 지금까지 벌린 일이 얼마나 되는지. 그렇게 생각하면 난 역시 심부름꾼이 천직인가 싶다. 매번 말도 안되는 의뢰가 들어온다고 툴툴거렸긴 했어도 최소 그건 돈이라도 두둑하게 챙겨줬었다고. 지금 이렇게 무보수로 길 안내나 해주는 게 아니라. 아까 보니까 그 호랑이는 좋은 옷 입고 있던데 돌아가고 나면 이 자들에게도 돈이나 받아내야겠다.


그럼에도 내가 이 자를 내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 독침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론 그것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이러고 있는 건 맞는데, 독침이 아니었어도 도와줄 생각이 있었다는 뜻이다. 단지, 단지 나도, 가족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뭔지 아니까. 내가 어린 나이부터 줄 위를 오갔던 이유, 팔을 잃기 직전까지 몸을 사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일을 했던 이유, 목숨을 걸고 이 경주에 참여한 이유, 그건 다—


나에게는, 먹여 살려야 할 소중한 동생들이 있으니까.


부모님은 두 분 다 상인이셨는데, 내가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때 즈음 풍랑에 휘말려 돌아가셨다. 나에게 네명의 동생들을 남긴 채로. 팔기 위해 배에 실었던 물건들도 부모님과 함께 심해로 가라앉았고 그 후 길거리에서 동냥을 하며 하루하루 동생들을 겨우 먹여살리고 있던 나를 거두어준 것이 바로 사당패 사람들이었다. 이후 낮에는 줄 위에서 묘기를 부리고 밤에는 여러 의뢰들을 해결하며 돈을 악착같이 벌었다. 뭐,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심부름꾼으로 일하며 불법적인 일들도 종종 했지만…… 그래도 사람을 해친 적은 없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게 오래도록 뒷골목을 떠돌며 살아온 내게 남은 유일한 양심이었고, 적어도 동생들 앞에서는 떳떳한 형이자 오빠가 되기 위한 나름의 선이었다. 어쩌면 그래서였을까. 근축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더 마음이 쓰였었다. 내게 동생들이 정말 소중한 것처럼 그에게도 아마 딸이 그런 존재가 아닐까 해서. 그래서 쉽사리 지나칠 수가 없었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기.”


비록 돌아오는 건 발소리뿐이었지만 그가 묵묵히 듣고 있을 거라 생각해 말을 이었다.


“자솔이라고 했나? 걔는 어떤 아이였어?”


그가 한동안 아무 말이 없길래 나는 뒤를 돌아보며 웃으며 말했다.


“있지, 내 의뢰비는 꽤 비싸. 근데 여기서는 돈으로 받아봤자 경주가 끝날 때까지는 아무런 쓸모가 없어 보이거든? 그러니까 이야기라도 해줘. 설마 전문 심부름꾼인 날 공짜로 부려먹을 생각은 아니겠지?”


그러고 원래 광대들은 남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법이야, 라고 장난스럽게 덧붙이고는 다시 앞을 보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근축이 입을 연 것은 그보다 조금 더 지난 후였다.


“자솔이는 착하고, 똑똑하고, 자기 일도 스스로 잘하고, 반짝반짝 빛이 나는 애야. 그런데 어느새 이렇게 빨리 커버려서는…….”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아차, 그러고보니 딸 때문에 심란할 텐데 괜한 말을 했나? 그래도 난 역시 그 의뢰를 넣은 것은 자솔이가 아닐 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애를 위해 경주에 참여한 저 소가 너무 안타까우니까. 앗, 잠깐만,


나는 그를 보며 말했다.


“자솔이는 네가 경주에 참여할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걸까? 중앙에서 의뢰를 했다는 건 네가 중앙으로 온다는 걸 확신하고 있었다는 말인데. 어쩌면 쥐를 미끼로 누군가가 너를 유인해서 죽이려 했던 거라면?”


그는 잠시 놀란 기색을 띠더니 이내 다시 덤덤한 반응이었다.


“그 의뢰를 넣은 게 자솔이라며.”


“그야, 나도 그 자리에 있진 않았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그 애는 그냥 근처에 있었을 뿐이고 의뢰 일은 다 고양이의 독단적인 행동이었을지도 모르는 거니까. 아니면 어쩔 수 없이 협력할 수 밖에 없었던 걸지도 모르고.”


그는 내게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늘 무표정이던 그가 처음으로 크게 보인 변화였다.


“그래, 말이라도 고맙네.”


나는 저 자에게 동질감이라도 느끼는 걸까. 나는 웃으며 그에게 대꾸했다.


“나도 바깥에 동생들이 있거든. 내겐 아주 소중한 애들이라. 너한테도 자솔이가 그런 존재인거지?”


그의 덤덤한 목소리가 들렸다.


“응.”


어쩐지 막내 생각이 났다. 잘 있으려나. 막내는 선천적으로 심장이 약해서 자주 아팠었다. 그러다 몇 달 전에 갑자기 실신해서 의원에 실려가는 일이 있었다. 의원은 이것이 결흉이라 말했고, 막내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약값이 필요했다. 그때 처음으로 두려웠다. 죽음이란 게 나 자신이 아니라, 내가 지키고 싶은 사람에게 찾아올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막내는 늘 웃는 애였다. 아프다면서도 말 한마디 내색하지 않고, 내가 밤늦게 돌아오는 날이면 “형, 오늘도 고생 많았어.”하며 내 손을 꼭 잡아주곤 했었으니까. 그래서 그 손이 핏기가 가신 채로 병상 위에 놓여졌을 때, 난 그 손을 붙들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의원이 결흉은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언질하는 말에 머리가 새하얘졌다. 당장 많은 돈이 필요했다. 하지만 한쪽 팔이 없어진 몸을 받아주는 일자리는 많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없었다. 하긴 나 같아도 이렇게 불안정한 위험 요소를 안고 있는 사람보다야 사지 멀쩡한 사람을 고용하겠지.


그때 누군가 내게 경주 이야기를 꺼냈다. 경주에 우승해서 신의 은혜를 가져오는 사람에게 돈을 주겠다고 한 자가 있었다고. 다들 돈을 위해서 그렇게까지 하는 건 멍청한 짓거리라며 비웃었지만 내겐 그것이 유일하게 남은 동아줄이었다. 그래서 이곳에 온 것이다. 동생들이 생활비가 필요했고, 막내를 살려야 했고, 부모님이 남기고 가신 빚도 아직 많았으니까. 그리고 그 돈을 더 충당하려면 역시 우승을 하고 돌아가는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이 내가 이 길을 걷는 이유였다. 동생들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으니까, 그 애들이 마음 편히 웃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설령 내가 걷고 있는 길 끝에 고통이 있을지라도.


“신도.”


근축이 내 뒤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살짝 뒤를 돌아보며 답했다.


“응?”


“고마워.”


응? 아니, 너무 갑작스럽지 않나? 나는 얼떨떨한 마음으로 그에게 말했다.


“어, 왜?”


“날 한번 구해줬었다며.”


시화와 있었던 일을 얘기하는 건가. 나는 씩 웃으며 그에게 대답했다.


“그거? 별 거 아냐. 그냥 오지랖이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음 한구석은 묘하게 간질거렸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괜한 오지랖으로 보일 지도 모르는 행동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의미 있게 남아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바닥에 자박자박 밟히는 풀들의 소리가 귀에 들렸다. 발끝을 스치는 풀잎들, 선선한 바람에 따라 나무들이 너울너울 흔들렸고, 그 사이로 화창한 하늘이 드러나 있었다. 아주 잠깐, 이 경주와는 상관없는 세상에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폐 깊숙이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셨다가, 근축을 향해 말을 꺼냈다.


“만약 자솔이를 만나면, 어떻게 할 셈이야?”


그가 답하길,


“돌아가야지.”


“자솔이는 우승하려는 목적으로 중앙에 온 거 아냐?”


그는 잠시 동안 조용했다. 걸음은 멈추지 않았지만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글쎄. 나한테 아무 말도 없이 떠난 거라.”


그리고 내가 대답할 말을 고르는 사이 다시 말했다.


“근데, 우승이라는 게 뭐야?”


나는 그에게 되물었다.


“우승이 뭐냐니?”


그는 내 뒤를 걸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우승하면 대체 뭐가 달라지는 거냐고.”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나야 모르지, 라고 답했고, 그는 의아한 듯이 내게 물었다.


“은혜라는 게 뭔지도 모르는데 왜 다들 경주에 참여한 거지? 위험하잖아.”


나는 숨을 크게 한번 들이마시고 그에게 말했다.


“각자의 사정이 있는 거겠지. 어쨌든 우승하면 그 종족에 명예가 주어지는 거니까. 어쩌면 그 은혜라는 게 신이 들어주는 소원일지도 모르고. 그 신화 속 이야기처럼 말이야.”


“신화?”


“응. 아주 오래전에 있었다던, 경주에 대한 신화. 거기서 결국 쥐가 우승해서 소원으로 신이 되고 싶다고 빌었었잖아.”


그러고는 조금 있다가 말을 덧붙였다.


“모르겠네. 난 너와 달리 속물적인 사람이라서 말이야. 그냥 경주에 참여하면 돈을 준다는 말에 중앙으로 온 거거든.”


그 때, 눈 앞에 계속해서 이어져 온 숲이 아닌 무언가 넓다란 공간이 보였다. 나무들이 비껴져 있어 누군가가 머물렀을 듯한 공간. 내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 공간에는 짐승의 뼈들과 모닥불을 피운 흔적, 그리고 어지러이 남겨진 몇개의 발자국이 있었다. 아쉽게도 사람은 없었으나, 인위적인 흔적이 즐비한 곳이라는 사실은 확실해 보였다.


그 순간, 내 시야에 무언가 큼지막하고 희끄무레한 게 들어왔다. 나는 그것의 정체를 확인하려 한 발 다가갔다가, 그 형체가 무엇인지 깨닫자마자 뒤로 물러섰다. 피부가 서늘해지고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그것은 시체였다, 시화의.


시화가 그곳에 죽어 있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