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by 동글동글하게

-태초에 경주가 있었다. 호랑이가 담배를 물고 여우가 간을 빼먹던 까마득한 그 옛 시절. 신은 동물들에게 전언을 내렸다. 가장 먼저 도착하는 자에게 영광을 주겠노라고. 우승은 고양이를 속이고 소를 이용한 쥐가 차지했고, 신은 쥐에게 그 모든 공을 치하해 주었다. 이로써 쥐는 신이 되었다. 하지만 발칙하게도 신화에서 이후 쥐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뒷이야기는 더 다루고 있지 않다. 어쩌면 그 신이 되었다는 쥐들이 아직까지도 지하만 전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신화는 그저 신화일 뿐이라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화는 그렇게 쥐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는 것이겠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수천, 수만 년이 흘렀다.


이제, 다시 경주가 열린다. 새해를 일주일 남긴 이 시점에 신이 다시 동물들에게 고한 것이다. 중앙으로 와서 신을 찾을 것, 각 종 당 한마리씩만 이 경주에 참여할 것, 가장 먼저 도착하는 우승자에게는 신의 은혜가 있을 것…… 단편적인 정보들이 동시에 머릿속에 울렸다. 그게 딱 어제 자정의 일이었다.



“참가할 생각이니?”


부드러운 여성의 목소리가 찻집 안을 울렸다. 그 질문의 대상은 여성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어떤 한 남성이었다. 그는 반쯤 비운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여성은 서서 잔을 헝겊으로 닦고 있는 모습으로 보아 그녀가 이 다방의 주인인 듯했다. 고즈넉한 호롱이 밝혀주는 다방에 손님은 그 남성 하나였고, 바깥에는 자그만 눈들이 드문드문 내리고 있었다. 사실 이 찻집은 여타 다른 찻집들처럼 저잣거리에 위치한 게 아닌 산 중턱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라 오늘처럼 눈이라도 내리는 날에는 손님 발길이 끊기는 일이 다반사였다. 게다가 얼마 전 경주 시작 소식이 들려오자 다들 이 기이한 일의 소문을 들으러 장터 쪽으로 사람이 몰렸으니, 오히려 저 사내가 오늘 이 찻집을 택했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사실 사내 입장에서는 그 역시 고산지대에 산다는 점에서 산을 내려가는 일보다야 근처의 다방을 들리는 게 덜 수고스럽기 때문에 이곳을 찾은 것이었다. 어차피 그는 이미 자주 왔던 까닭에 그녀와 말을 튼 사이이기도 했고, 뭐, 겸사겸사였으나 여주인이 그 내막까지 알 리는 없었다. 그녀는 잔을 닦다가 문득,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까지 중앙에 갔다 살아서 돌아온 사람은 없었어, 알아?”


그도 그녀를 바라보았다. 한손에 쥔 잔에서는 뽀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알아. 그러니까 참가하는 거야.”


그녀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으나 그는 그런 사실에 개의치 않는다는 듯 태평히 잔을 입에 가져갈 뿐이었다. 한모금 마시고 나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우승하러 가는 게 아냐. 그냥…… 자솔이가 어제 몰래 경주로 떠났어. 그 애를 데리러 가는 거야. 죽을지도 모르니까.”


그녀는 웃음인지 한숨인지 알 수 없는 작은 숨소리를 내었다. 어쩌면 그것들이 반절씩 섞인 소리일지도.


“미련하기는. 그러니까 소가 쥐한테 배신당하지.”


“상관없어. 자솔이는…… 내 딸이니까.”


자솔일 데리고 돌아올거야, 라고 남자가 중얼거렸다. 여주인은 그 말을 듣고 무어라 대꾸하려 입을 뗐지만 이내 다른 판단이 섰는지 다시 다물었다.

그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조막만한 동전 두어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의 금빛 머리카락이 조명에 비쳐 은은한 윤기를 띄고 있었다. 그녀는 동전들을 받으며 그에게 짧은 인사를 하였다. 다만 다음에 또 와, 라는 말만은 하지 못한 채로. 그 넓다는 중앙을 돌아다니려면 어림 잡아 수개월은 족히 걸릴 테였다. 중앙은 그들의 먼 조상님 때부터 출입이 쭉 금지되어 있었고 그 금기를 어겨 그곳에 들어간 사람은 늘 돌아오지 못했다. 따라서 그곳에 신이 있다는 신화만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뿐,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 어째서 그곳에 들어간 모두가 실종되어 버렸는지에 대해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신의 은혜가 무엇이든 간에 우선 경주에 참여하려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셈이었다. 아직까지 어떤 종족의 아무개가 경주에 참여했다고 하는 그런 류의 적극적인 소문이 퍼지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일지 몰랐다. 무엇인지도 확실치 않은 은혜라는 추상적인 보상을 위해 본인의 목숨을 내놓을 자는 그리 많지 않으니. 뭐, 이 관점에서 보자면 저 사내야말로 타인을 위해 경주에 참가하는, 그야말로 대범한 결정을 한 이였으나 그는 단지 자솔이 무사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이제 만나러 갈 테니, 부디, 무사히 잘 있기를.

그것은 그가 아주 오래전에 그녀와 나누었던 약속이기도 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