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1)
중앙에 들어온 지 얼마나 지났을까, 계속해서 울창한 숲만 지나다 보니 시간 감각이 꽤나 무뎌진 듯한 느낌이었다. 아무리 걸어도 이 숲은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좋은 소식이 있다면 이곳은 그동안 아무도 들어오지 않아 귀한 약초들이 숲길에 가득하다는 것 정도. 나는 약병을 꺼내 채워진 약초와 여러 독 성분을 다시 한번 살폈다. 사실 여유가 있다면 탕약도 좀 달여 두면 도움이 될 텐데. 이곳에서 그렇게까지 하는 일은 사치인가 싶어 미루어 두었지만 숲을 빠져나가고 나면 마땅한 장소라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쭉한 나무들 사이 하늘을 올려다보니 해는 아직 중천에 걸려있었다. 하루가 지기까지는 그래도 시간이 충분한 모양이었다. 일몰 전까지 이 숲을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그렇다고 첫날부터 무리하게 되면 내일 제대로 걸을 수 없을지도 몰라 오늘은 적당히 갈 수 있는 곳까지만 갈 작정이었다. 다만 방향이 큰 걸림돌이었다. 아까부터 계속 같은 풍경만 보다 보니 지금 제대로 전진을 하는 건지도 가늠이 쉽지 않았고 목적지인 신의 위치 역시 미지수였다. 그러나 이곳에 들어온 이상 선택지는 계속 나아가는 것 밖에 없었다. 발밑에 있는 식물 종류를 확인해 새로운 식물들이 피어 있는 쪽으로 나아가다 보면 적어도 똑같은 길을 가지는 않겠다고 막연히 생각할 뿐이었다. 한겨울이었으나 이곳의 기온은 바깥보다 상당히 높아서 얇은 옷을 입고 있었음에도 꽤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다행히 옷 사이로 살짝 빠져나온 꼬리도 그렇게 많이 차가워지지는 않은 상태였다. 꼬리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비늘들이 햇빛을 받아 윤기를 내었다. 이것이 다른 이의 주의를 끌지는 않으려나 싶은 생각이 들었으나 뭐, 이건 괜한 노파심이려나.
우리 종족인 그 구불거리는 파충류들을 위해 우승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단지 우승을 하고 돌아오면 그 영광을 보아 원하는 일을 들어주겠다고 한 수장의 말을 믿었을 뿐. 사실 그 말은 미끼였고 실상은 나를 제거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들 내게 그다지 다른 선택권이 있지도 않았었다. 하기야 사형을 선고받은 입장에서는 살려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 셈이니 그 상황에서 내게 그런 의도와 숨은 속셈을 파악할 자격 따위는 없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었다. 한 달 내로 형장의 이슬이 되나 경주에서 미지의 사고를 다해 죽나 결과론적으로는 같은 일 아닌가. 우승하면 사면, 그것이 내가 경주에 참여한 유일한 이유였다. 죽음을 피하려고 결국 무덤 속으로 발을 들인 셈이니 불 속으로 뛰어드는 나방과 별다를 게 없었다. 그래도 역시 이곳에서 순순히 죽을 생각은 없었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목숨이 위협될 만한 사건도 없었으니 말이다.
사영이라는 나의 이름처럼 처음부터 그림자처럼 살다 그림자처럼 죽을 운명이었는지도 몰랐다. 빛에 다가가지 못한 채로, 늘 그렇듯, 암막 속에서. 이런 사람은 빛을 동경하기만 할 뿐, 그곳에 도달할 수는 없는 법이더라. 동경은 참으로 무서운 감정이었다. 무언가를 동경하는 사람은 어느 순간 자신도 그 동경의 대상처럼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끔찍한 희망을 가지게 된다. 누군가를 동경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들과 같은 풍경을 볼 수 있으리라고 착각해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막연한 동경만으론 갈 수 없는 세계가 있다. 제아무리 노력해도 불가능한 일이 있다는 사실을, 동경은 쉽사리 묵인해 버린다.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 가랑이 찢어진단 말이 괜히 있겠는가. 다만 슬프게도 대부분의 뱁새는 다리가 찢어지기 직전까지도 황새를 쫓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나도 저 황새처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겠지, 하곤 하는 희망은 다리를 잃고 나서야 산산이 조각나버리는 것이다. 역시, 동경이란 죄악이다. 사람은 그냥 자기 분수에 맞추어 살아가는 게 제일인데.
사람들은 나를 살모사(殺母蛇)라고 불렀다. 어미를 죽인 뱀. 그 이름은 내게 평생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그건 너무나도 잔인하리만치 적나라한 이름이었다. 그래, 어쩌면 이것이 나의 분수였을지도. 다른 이를 해할 수 있는 독을 가진 존재, 미끈거리는 비늘에 징그러운 눈을 가진 존재. 인륜도, 아들로써의 도리도 모르고…… 자신의 어머니를 자기 손으로 죽인 그런 뱀. 이런 뱀은 차라리 이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죽어버리는 편이 다른 모든 이들에게 좋지 않겠는가. 내가 조금만 이타적이었더라면 자진해서 혀라도 깨물어 볼 텐데. 하지만 애석하게도 난 본래 성정이 이기적인 놈이다. 그저 모두에게 심심히 미안할 뿐.
그러고보니 이렇게 나무들 사이를 걷는 일은 참 오랜만이었다. 발목 사이를 스치는 풀들의 질감은 한겨울답지 않게 파릇한 느낌을 띄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길가를 거닐 때마다 자꾸만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그것은 분명,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중앙의 풍경은 세간의 악소문과 다르게 꽤나 평화로운 분위기를 띄고 있었다. 나의 무덤으로는 과분할 정도로 말이다. 날씨는 기이할 정도로 포근했고 하늘은 옥빛 장막을 높다랗게 드리우고 있었다. 잊을 만 하면 들려오는 날짐승들의 울음소리가 아니었다면 누군가는 이곳을 어디 지상낙원 정도로 오인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만큼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마치 이 모든 게 꿈속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오히려 평화롭기 때문에 밀려오는 불안이 있었다. 폭풍이 오기 직전의 전야처럼, 숲이 부드러운 바람 아래 날카로운 송곳니를 감추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그러고보니 왜 갑자기 경주가 열린 것일까. 지금까지 경주는 그저 허무맹랑한 신화 속 이야기일 뿐이었는데. 신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경주를 연 것일지, 신의 은혜라는 보상이 과연 무엇인지, 왜 그동안 중앙에 들어간 사람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었는지…… 무엇 하나 명료하게 답할 수 있는 의문이 없었다. 하긴 지금 우승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조차 알 수 없는데 이것들에 어떻게 답을 할까.
바스락—
그 순간 내 것이 아닌 발소리가 날카롭게 신경을 긁었다. 그쪽으로 몸을 돌리니 한 여인이 나무 뒤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안녕? 너도 참가자구나?”
그녀가 몸을 삐죽 내밀고 손을 흔들었다. 아담한 키에 앳된 얼굴, 그리고 양 어깻죽지에 돋아나 있는 자그만 두 날개가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그녀 쪽에서 부는 바람에서 달콤한 알밤 내음새가 담겨 불어왔다. 그녀는 큰 눈을 깜빡이더니 짐짓 명랑한 투로 한 방향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경주에 참여한 거라면 길은 저쪽 방향이야!”
나는 그녀가 가리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확인은 어려웠지만 그 방향에는 새로운 종류의 풀들이 돋아나 있었다. 그러나 섣불리 믿을 수는 없었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등장과 과하게 다정한 태도에 오히려 의심이 갔다. 너무 지나치게 활발한 분위기를 띄고 있는 것은 아닌가. 왜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거지? 나는 그녀를 향해 차분히 되물었다.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그녀는 방긋 웃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조금 날아서 살펴봤어. 저쪽으로 가면 숲이 끝나고 새로운 길이 나와. 나무가 높아서 계속 날 수는 없었지만, 주변은 살펴볼 수 있었거든.”
그녀는 이후 내 눈치를 살짝 보더니 말을 이었다.
“난 지금 동행할 사람을 찾고 있어.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괜찮으면 숲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같이 가지 않을래?”
저 여자를 믿어도 괜찮은 걸까. 하지만 방향을 알 수 없던 내 입장에서는 그녀의 제안이 나쁠 바 없었다. 그래서 그녀의 제안을 수락하기 전에 한번만 떠보기로 했다.
“제가 거절하면 어쩌려고 그런 정보를 막 말하시는 겁니까? 어차피 같은 경주에 들어온 이상, 저희는 동료보다는 적에 가까울 텐데.”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활기차게 대답했다. 무언가 득실을 가지고 계산했다기엔 짧은 시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방심할 순 없었다.
“괜찮아! 숲으로 빠져나가는 길을 알려줬다고 해서 바로 우승자가 결정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먼저 이런 정보를 공유해야 네가 날 믿고 같이 다녀주지 않겠어?”
“왜 그렇게까지 저와 동행하려 하시는 겁니까?”
“혼자 다니면 외롭잖아. 어차피 가는 방향도 같을 텐데.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혼자보다야 둘이 낫지 않겠어?”
그녀의 둥그런 눈에 숲 사이 햇빛이 비쳐 반짝였지만 그 반짝임이 내게는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희망을 가진 사람의 눈에는 푸른 생기가 흐른다는 사실을 아는가. 이상에 대한 동경이 함뿍 담긴 눈빛, 좌절해본 적이 없는, 맑고 투명한 그런 눈 말이다. 다만 순수가 곧 선의나 최선을 뜻하진 않는다. 오히려 순수는 무지에 가까웠다. 역설적으로 가장 깨끗한 물에는 고기가 살 수 없는 것처럼, 순수는 무지하기에 다가온 물고기들을 상처 입힌다. 순수한 무지는 선하지 않다. 아니, 선할 수 없다. 원래 그늘과 빛은 공존할 수 없는 것처럼 그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이치였다. 그랬기에 처음 품었던 의심은 어느 정도 거둘 수 있었으나 그런 눈을 마주하는 일은 내게 어쩐지 불편하게 다가왔다. 과한 비약일지도 모르겠으나 너무 많은 게 담긴 눈동자는 텅 빈 것만 못하다.
그래도 우선 지금은 저 여인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어 보였기에 난 그녀에게 숲을 빠져나갈 때까지만 동행하자고 얘기했다. 내 말에 그녀는 뛸 듯이 기뻐하더니 내게 악수를 청했다.
“반가워! 난 유안이라고 해.”
“사영입니다.”
난 짧게 답하고는 그녀가 내민 손을 피했다. 괜히 여기서 다른 이들과 정을 쌓아봤자 좋은 점이 하나도 없었기에. 지금 웃는 얼굴이, 나중에 등을 돌렸을 때 더 아플 수도 있으니 그렇게 믿는 편이 아무래도 편했다. 또 그 손길에 무엇인지 모를 거부감이 들기도 했고. 그녀는 멋쩍게 웃으며 손을 거두더니 이내 내 옆으로 따라붙었다. 나보다 한 뼘 정도 작은 키에 걸맞는 총총한 걸음걸이였다. 어느새 해가 저만치 멀어져서 앞 길에 쨍하니 노란 햇볕이 발밑을 간질였다. 유안은 그런 햇빛을 보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지만 그 표정이 나에게까지 옮아 오지는 않았다.
울렁이는 느낌. 그건 분명,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