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2)
선들거리는 바람이 머리맡을 훑고 지나갔다. 굵직한 나무들 사이를 지나며 유안은 이곳엔 꽃이 많아 좋다거나 가끔 들리는 새소리는 직박구리의 것이 분명하다거나 하는 여러가지 말들을 재잘거렸다. 그녀의 맑은 목소리에 맞춰 등 뒤의 날개가 경쾌하게 흔들렸다. 그녀가 입고 있는 연청색의 베로 된 한복은 겨울옷치곤 상당히 얇아 보이는데다 치마 기장도 종아리가 보일 정도로 짧았다. 그런데도 본래 추위를 잘 타지 않는 건지 두 볼아 창백하긴 커녕 혈색이 돌아 발그레하게 물들어 있었다. 노란빛이 감도는 옷색은 나리꽃을 닮았고, 그 위로 겹쳐 입은 무명 치마는 나풀거리며 은은한 향기를 흩날렸다. 그녀는 마치 화창한 날 오후의 햇살 같은 사람이었다. 손에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고 한 눈 판 새에 저만치로 달아나곤 하는, 그런 아슬한 햇살 말이다. 아마 바깥에서 만났다면 우리는 다른 형태로, 다른 곳에서 만났을 텐데.
문득 무언가 이질감이 드는 냄새가 나서 바닥을 내려다보았더니 살랑이는 풀들 사이에 눈에 띄는 거뭇한 물체가 보였다. 순간 밟으면 안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어 발을 딛으려던 유안을 내 쪽으로 잡아끌었다.
“조심해요, 발 밑에.”
그녀는 몸을 좀 움츠렸다가 내 말에 따라 발 밑을 확인하더니 짧은 탄식과 함께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날개에서 깃털 두어개가 팔랑, 아래로 떨어졌다. 나는 그녀를 뒤로 밀고는 조심스럽게 그 물체에 다가가 근처 풀을 헤쳤다. 파릇파릇한 풀들 아래 날카로운 갈고리줄로 만들어진 덫이 조심스레 놓여 있었다. 그 매목은 버드나무 가지로 엮은 올무에 날카로운 쇠붙이가 달려있었는데, 빠져나가려고 바둥거릴수록 걸린 대상의 살갗을 파고드는 형태였다. 문득 한기가 들었다. 덫을 놓은 사람이 아직 근처에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게 누구든지간에 만나기라도 하면 내게 그리 호의적이지는 않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일어나서 주위를 한번 빙 둘러보았다. 다행히 근처에 별다른 인기척은 없었으나 바람이 나무들 사이로 꺼름칙한 흐름을 만들어내었다. 유안은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날 구해준 거야? 고마워! 사영 씨, 친절한 사람이구나.”
방금 죽을 뻔했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웃을 수 있다니, 그녀의 해맑은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그녀의 말에 동요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녀에게 말했다.
“덫을 설치한 사람이 아직 근처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조심하세요.”
그녀는 미소 지은 채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근조근하게 중얼거렸다.
“괜찮아. 그 사람도 막상 만나보면 좋은 사람일지도 모르고. 덫은 사실 누군가가 저녁으로 먹을 짐승을 사냥하기 위해 설치해둔 게 아닐까? 그건 아직 모르는 거잖아, 그치?”
무의식적으로 혀를 낼름거리자 씁쓸한 공기가 입안을 감돌았다. 이 여자의 삶을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타인의 아무 이유 없는 적의 따위는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안온하고 평화로운 삶. 그녀는 정말이지 이곳과는, 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유안은 방금 전 일은 정말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사뿐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조금 더 조심스러운 발걸음이긴 했으나, 여전히 입가에는 미소가 걸린 채였다. 그녀가 길을 가다가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그래도 구해줘서 고마워. 사영 씨 덕분에 다치지 않았어.”
온기가 담겨있는 눈빛이었다. 나는 그녀와 마주친 눈을 근처 나뭇가지로 돌리며 대꾸했다.
“당연한 일이었어요. 동행자가 부상을 입는 일이 달가운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녀는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 하더니 작게 웃음을 흘렸다.
“음, 그래도 사영 씨는 역시 친절한 사람인 것 같아.”
그녀의 말투는 명랑하고 부드러워서, 낯선 사람에게서라도 금방 쉽사리 호감을 살 만한 그런 어조를 띄었다. 마치 장터의 경쾌한 꽹과리 소라처럼 듣는 사람의 마음속으로 빠르게 파고들었다. 나는 잠시 입을 다물고 길을 걷다가 무심히 말했다.
“사람을 그렇게 쉽게 믿어버리는 건 좋지 않아요.”
내 딴에는 진지하게 건넨 충고였다. 그녀의 이러한 한심한 태도는 무시하려 해도 자꾸만 그녀와 비슷하게 세상을 바라보던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무심코 뱉은 말이었다. 그녀는 몇걸음 더 가다가 내게 답했다.
“그래도 믿을 수 있다면 믿어 주는 편이 좋잖아?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사영 씨도 날 믿어줬으니까.”
저 여자는 내가 길을 가다 가끔씩 주머니 속의 독이 든 약병을 만지작거린다는 사실이나 아님 여차하면 그 병을 꺼내던, 독니를 사용하던, 늘 소매 근처에 감추고 다니는 침에 독을 바르던 해서 언제든지 그녀를 죽여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나 할까. 아마 모르겠지. 모르니까 저런 말들을 간단하게 할 수 있는 거겠지.
“난 역시 누군가가 나쁜 의도로 덫을 놓았다기보다는 그렇지 않았을 거라고 먼저 믿고 싶어.”
아무렇지도 않게 신뢰를 논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어처구니 없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감정이 몸 속에서 일렁였다.
-사영아, 세상에 본성이 악한 사람은 없어.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누구나 마음 한켠에는 따뜻한 심성을 지니고 있단다. 네가 먼저 믿는다면, 저 사람들도 네가 그리 나쁜 애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거야. 괜찮아. 나는 널 믿어.
거짓말.
“세상에는 선한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모든 선의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아.”
나는 그 말에 반박하는 대신 입을 다물고 숲길을 그저 조용히 바라보길 택했다. 그녀는 나보다 약간 더 앞서 길을 걷고 있었는데, 속도 자체는 나와 비슷했기에 그녀가 내 걸음에 맞추는 중인지 내가 그녀의 걸음에 맞추는 중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니면 처음부터 둘의 걸음속도가 비슷했기에 맞출 필요 자체가 없었던 걸지도.
선의는 다치기 쉬운 성질의 것이었다. 작은 파도에도 쉽사리 망가지는 해변가의 모래로 된 조형물처럼 끊임없이 흔들리고 깨져나갔다. 악의가 타인을 상처입히는 데에 특화되어 있는 반면 선의는 전혀 스스로를 지켜주지 않았다. 오히려 타인들 사이에서 자신을 노출시켜 공격받기 쉽도록 만들었다. 결국 그렇게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깨우치게 되는 사실은 선의는 삶을 살아가는데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라는 짧고 무거운 경구뿐이라는 사실에 속이 쓰릴 뿐이었다. 그랬기에 내가 유안에게 느낀 감정은 괴리감 반, 호기심 반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이 든다고 해서 그녀가 싫다거나 하다기보다는 단지 약간의 이질감도 함께 들었을 따름이었다.
그 순간 아까부터 신경쓰이던 바람의 방향이 이질적으로 틀어지며 땅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내 배경지식이 맞다면 이건 거대한 물체가 경로를 바꿔 이쪽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였다. 내가 그녀에게 주의하라고 말하려 고개를 든 순간, 앞쪽에서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모든 일은 한순간이었다.
앞쪽 숲 나무들 사이로 집채만한 괴물이 나타나 유안을 한입에 삼켜 버렸다. 그 괴물은 얼핏 보기엔 곰과 닮았으나 붉은 눈빛, 비정상적으로 큰 몸집, 어린아이만한 길이의 손발톱과 이빨, 갑옷처럼 딱딱해 보이는 피부 등 여러 면에서 이질적인 차이를 보였다. 비명 소리도 나지 않은 채로, 유안의 흔적이라고는 괴물의 입가에 묻은 깃털 약간과 핏자국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현실성이 없었음에도 귓가에 선명히 들리는 괴물의 으득거리는 소리가 내게 이 상황이 실제라 말해주고 있었다.
빠르게 판단해야 했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검은 초오 가루가 든 약첩을 꺼내 그 괴물의 입안으로 던졌다. 저 괴물에게 약이 어떤 식으로 통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으나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곤 이런 것 뿐이었다. 그저, 그저 이 독이 저 괴물에게도 통하기를. 초오는 조금만 사용해도 일반 성인을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치명적인 성분을 가지고 있었다. 그 중 내가 가지고 있던 양은 못해도 대여섯명의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정도로, 유사시에 사용하려고 미리 가루를 빻아뒀던 거였다. 뭐, 그때는 이렇게 한번에 모든 양을 던져버릴줄은 몰랐겠지만 말이다.
괴물이 섬뜩한 비명을 질렀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귀가 찢어질 정도로 크고 높은 소리였다. 나는 괴물이 소리지르는 틈을 타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얼마나 정신없이 달렸는지 모를 정도로 먼 거리를 이동하고 나서야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다행히도 독이 온몸에 돌아 죽어버린건지 괴물이 쫓아오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자리에 주저앉아 헛구역질을 했다.
유안이, 그녀가, 죽었다.
마른 기침과 함께 울음인지 탄식일지 모를 소리가 새어나왔다. 단전에서부터 무언가 서늘한 것이 끓어오르는 기분이었다. 내가 좀만 더 빨리 눈치챘더라면, 처음부터 그녀가 앞서 나가도록 두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그랬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를 믿은 적도 없었고, 그녀와 계속 동행할 생각도 없었는데. 이제 누군가가 죽는 일 따위에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도 내 몸은 말을 듣질 않았다. 자꾸만 일어서려 해도 손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려서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특히 가슴 한구석이 시리도록 아렸다. 문득 손이 욱신거려서 확인해 봤더니 오른쪽 손바닥이 온통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까 전에 초오가 담긴 봉투를 만졌을 때 약간 베어나온 모양이었다. 나는 꼬리로 주머니에서 황련을 꺼내 상처 부위에 가만히 대었다. 아, 나는 이런 상황에서도 살려고 하는구나. 이기적이다. 구역질이 날 정도로 이기적인 생존욕구이다. 나는…… 나는 왜…….
내가 다시 몸을 일으킨 것은 해가 지고 주위가 어둑어둑해진 다음이었다.
내가 앉아있던 자리를 돌아보니 바위 위에 갈색 깃털이 하나 떨어져 있었다. 유안의 깃털, 아마 나도 모르는 새에 내 옷에 붙어 함께 온 모양이었다. 나는 깃털을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그 뒤 허리를 펴고 유안이 알려주었던 방향을 가늠해 보며 동시에 바람의 흐름도 파악했다. 분명 괴물은 그 하나뿐만이 아닐 것이므로 더이상 좌절에 빠져있을 시간도 없었다. 꺾이려는 무릎을 부여잡고 하나씩 걸음을 옮겼다.
경주는, 이제야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