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등불 하나

사(3)

by 동글동글하게

길은 꽤 어두웠으나 그렇다고 해서 아예 나아가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보름달의 환한 빛이 앞길을 희끗희끗하게나마 밝혀주고 있는 덕분이었다. 간혹 길을 가다 피로라던지 회한이라던지 하는 상념들이 떠오르는 때가 있었으나, 그것들은 내 걸음을 멈추기에 역부족이었다. 해가 떠있을 때조차 괴물이 그렇게 가까이 접근했을 때까지 눈치채고 있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안전한 장소에 도달할 때까지 쉴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이곳은 기온이 높기 때문에 지금이 일반 뱀들이 동면에 빠지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몸을 움직이는 게 그리 힘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휴식이 필요하긴 하니 우선은 저 멀리 보이는 동굴까지 가서 밤을 지샐 계획이었다. 근처에 돌들이 많은 까닭에 발이 저려 왔으나, 앞으로 한 시진 정도만 더 걸으면 도착일 듯하여 고된 다리를 계속해서 부추겼다. 계속 전진, 분명 그것뿐이었다.

내가 가는 도중에 부상을 입고 쓰러져있는 한 남성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 사내는 오른쪽 옆구리에 자상을 입고 머리에 피를 흘린 채 기절해 있었는데, 그에게서는 비릿한 피냄새와 텁텁한 흙냄새가 함께 풍겼다. 그의 주변에 파인 흙자국, 부러진 근처의 나뭇가지로 미루어 보아 그는 아마 상처를 입고 저 위의 절벽에서 추락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에게로 조심히 다가가 그가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하려 그의 입가에 손등을 가까이 했다. 그에게서 희미하면서도 옅은 숨결이 느껴졌다. 아직 살아있다. 그러나 그 뿐, 내가 돕지 않으면 그는 아마 괴물들이 돌아다니는 이 숲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사실 괴물이 아니더라도 이미 그의 출혈은 지금 상태로도 꽤나 심각해 보였다. 이제 해도 졌으니 기온도 점점 떨어질 테고 이 길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또 지나갈 거라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내가 그를 살릴 명분은 될 수 없었다. 이곳은 경주이고, 이 자는 내 경쟁자이며, 나는 대가 없는 호의를 베풀 정도로 상냥한 사람이 아니다. 그래, 분명 그렇다. 그것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생각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자를 동굴로 옮기고 있는가. 이게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이득이 된다고 이러 비효율적인 짓거리를 하고 있느냔 말이다. 나는 긴 꼬리로 똬리를 트는 것처럼 그의 몸을 둘둘 말아서 들었다. 쓰러져 있을 때는 차마 가늠하지 못했으나 그는 나보다 반 뼘 정도 큰 키를 가지고 있었고, 나와 대비되는 다부진 체격을 지니고 있어 예상했던 것보다 더 힘이 들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단지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깃털의 온기가 아직 채 가시지 않았기 때문…… 정도로 설명해야 할까.

다행히 동굴은 안이 꽤 넓어서 치료에 무리가 없어 보였다. 나는 우선 동굴 안쪽에 그 사내를 눕힌 뒤에 주머니에서 작은 종이등을 꺼내 불을 붙였다. 미미한 빛이었지만 상처를 자세히 보려면 이러한 불빛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불을 밝히자 처음으로 그의 모습이 눈에 제대로 들어왔다. 황토색의 짧은 머리와 짙은 색의 피부, 머리 양쪽에 튀어나와 있는 단단한 뿔과 그 밑에 둥글게 나와있는 두 귀까지. 내 예상이 맞다면 이 자는 아마 황소일 테였다. 나는 그의 상처를 한번 살펴본 뒤 허리춤에 달린 가죽주머니에서 작은 목절구와 백렴과 포공영을 조금 꺼내 찧어서 즙을 내기 시작했다. 이 약재들로 고름을 빼고 나면 백급을 사용해서 상처를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약재를 바른 뒤에 천으로 상처가 벌어지지 않도록 고정했다. 피는 멎었으니 이제 충분한 시간만 있다면 나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천을 묶은 매듭이 풀리지 않도록 몇번이고 확인한 뒤에야 손을 떼고 그가 누워있는 반대편에 앉았다. 동굴 안이 기름 냄새와 피냄새로 진동을 했다. 그래도 저 바깥보다야 훨씬 나은 상황이긴 했지만. 나는 앉아서 천천히 숨을 골랐다. 오늘 처음으로 갖는 휴식이었다. 아니, 중앙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몇달간 계속 감옥 안에 묶여 있었으니 자유롭게 쉬는 일은 거의 반년만인가. 지금 생사의 기로에 놓여있는 상황에서 이걸 내가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잠시 시간이 비는 동안 오전에 따 두었던 약초들이나 가루로 빻아두려 빈 약첩 몇개와 마른 생약초들을 꺼냈다. 절구에 약초를 넣고 빻자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동굴 안을 기분 좋게 울렸다. 그리고 몇분이나 지났을까, 앞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쿵-

몸에 순간적으로 강한 충격이 가해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 사내가 날 벽에 몰아붙인 뒤 내 목을 한쪽 팔로 압박하고 있었다. 숨이 막혀 컥컥거리는 소리가 목구멍을 타고 흘러나왔다. 그가 칠흑처럼 검은 눈동자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너 뭐야?”

괜히 살렸나. 역시 그냥 그때 무시하고 지나갔어야 했나. 나답지 않게 괜한 연민에 젖어서는.

저 자는 부상을 입은 상태이긴 하나 그렇다고 한들 내가 싸워서 이길 수 있을 것이란 보장도 없었다. 오히려 지금 당장 목 졸려 죽지나 않으면 다행일 듯싶은데. 나는 자조 섞인 웃음을 내뱉고는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소들은 목숨 구해준 은혜를 이딴 식으로 갚나 보죠?”

그는 잠시 동안 아무런 미동이 없다가 이내 옆구리 쪽에 묶인 천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팔을 거두어 갔다. 내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동안, 그가 나지막히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마워.”

저 면상에 대고 욕을 할까 잠시 고민했으나 심기를 거슬렀다가는 또 달려들지도 몰라 애써 웃으며 답했다.

“별말씀을요.”

그는 동굴 한쪽에 다시 앉더니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의 눈에서는 생기라고는 하나도 찾을 수 없었으며 어떤 생각을 하는 중인지도 가늠이 힘들었다. 설마 날 어떻게 죽일지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는 눈을 천천히 깜빡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혹시 쥐를 본 적 있어?”

“네?”

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젓자, 그가 느릿느릿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나는 쥐를 찾고 있어. 자솔이라는 이름의, 이 경주에 참여한 쥐.”

그는 나를 또 한참 바라보다가 목소리를 내었다.

“모르면 됐어. 치료해준건 고마워.”

“대체 어쩌다가 다치신 겁니까?”

이 정도는 근방의 괴물들이나 위험 요소를 파악하기 위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보아하니 힘이 세고 싸움도 상당히 잘 하는 사람 같은데, 이 정도의 사람이 그렇게까지 다칠 만한 무언가가 근처에 있다면 내게도 위협이 될 게 뻔했다.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내 말에 간단하게 답했다.

“어떤 사람이 갑자기 공격하는 바람에.”

나는 괴물이 아니라 사람에게 당했다는 말에 의아함을 느끼고 되물었다.

“사람이요? 괴물이 아니라?”

“괴물?”

일부러 나를 속이려는 게 아니라, 정말 그 단어를 처음 듣는 듯한 반응이었다. 그는 고개를 기울이다가 괴물이 뭔지 모르겠지만 그런 건 아니었다고, 그건 그저 고양이 같은 모습의 한 사람이었다고 말을 덧붙였다. 그의 말을 듣자 어쩐지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그를 바라보니 그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등불에 비친 그의 옆구리께의 천에 피가 베어 나와 붉게 번들거렸다. 아직 안쪽에서 출혈이 완전히 멎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아까 전에 그에게 밀리는 바람에 손에서 놓았던 절구를 다시 주우며 그에게 말했다.

“더 이상 움직이지 마세요. 상처가 벌어질지도 몰라요.”

그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담담히 말했다.

“너, 이름이 뭐야?”

나는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나는 저 사람을 믿을 수 있나.

“당신은요?”

그는 내 말을 듣더니 천천히 답했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 불빛이 비쳐 형형한 윤기를 내었다.

“근축.”

나는 수 초 고민하다가,

“저는…… 사영이라고 합니다.”

대답하는 입가에 쓴 맛이 감돌았다. 근축은 사영이라고 하는구나, 하며 중얼거리다가 이내 다시 입을 다물었다. 아무 말도 오가지 않은 채, 달그락거리는 절구 소리와 조용한 불빛만이 동굴 안을 가득 채운 채였다.

조금 더 있다가 그가 일어나려는 기색을 보이기에 내가 입을 열었다.

“지금은 안 가는 게 좋을 텐데요. 밖이 어둡습니다. 상처도 아직 아물지 않았는데.”

“나는 한시라도 빨리 쥐를 찾아야 해. 아마 결승선 쪽으로 갔겠지.”

“지금 가면 안 가느니만 못해요. 해가 뜬 뒤에 움직이는 게 낫습니다.”

그때 문득 내 머릿속에 한가지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저 자도 쥐를 찾으려면 결승선으로 가야 할 텐데, 그렇다면, 저 자와 동행하는 것은 어떤가. 확실히 믿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순순히 물러난 모습을 보면 나를 해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들로 확신하건데, 조력자의 도움 없이는 난 아마 이 숲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죽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히 죽겠지. 그나마 있던 독도 아까 전에 전부 써버렸으니 길을 거닐다 괴물을 만나는 순간 난 즉사하게 될 것이다. 그와 동행한다고 해서 나에게 독이 될 것은 없었다. 어차피 저 자도 상처를 완치하려면 내가 필요할 텐데.

나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그러면 저와 같이 가는 건 어때요? 그 상처를 치료하려면 제가 필요할 겁니다. 아마 당신도 결승선으로 가는 거라면 방향도 같을 텐데.”

근축은 잠시 아무 말도 없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그래.”

밤하늘에 뜬 달빛이 동굴 안으로 스며 들어왔다. 고요한 한밤, 그는 잠이 안 오는 모양인지 멍하니 허공만 응시하면서 입을 우물거렸다. 나는 다 빻은 가루를 약첩에 넣어 봉하고는 동굴 벽에 몸을 기댄 채 웅크리고 긴 꼬리로 몸을 감았다.

길었던 하루가 어느새 끝을 보이고 있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