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4)
새벽 이슬의 냉기에 잠에서 일어났다.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켜 보니 근축이 동굴 바로 앞의 바위에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에게로 다가가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서 뭐해요? 위험하게.”
그가 내 쪽을 돌아보더니 내게 느릿한 목소리로 말했다.
“되새김질.”
내가 그게 궁금해서 물어본 게 아닐 텐데. 이런 사람을 잠시라도 걱정했던 내가 우스워져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그에게 질문했다.
“잠은 좀 잤어요?”
“응.”
그의 표정은 늘 그렇듯 무표정이었다. 짜증이나 분노라기보다는, 정말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무표정. 그래도 오늘 상처는 어제보다는 조금 더 나아보여서 나는 다시 몸을 돌려 동굴로 들어가 짐을 챙겼다. 어제 급하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그는 아마 지금 당장 떠나고 싶어할 것 같았기에. 또한 나도 우승을 하려면 좀 더 서둘러야 할 터였다. 동굴에 머물렀던 흔적을 지우고, 등불을 꺼 주머니에 넣었다. 동굴 밖으로 나오니 저 멀리서 동이 트는 모습이 보였다. 이토록 잔인한 공간에서도 일출은 참 아름다웠다. 나는 여전히 앉아 있는 그에게 말했다.
“이제 출발하죠.”
그는 천천히 일어나 옷에 묻은 흙을 털었다. 확실히 상처가 밤새 많이 호전되었는지 움직임도 훨 부드러웠다. 자상이 생각보다 깊지 않았거나, 저 자의 회복력이 일반인들보다 강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물론 내 입장에서는 둘 중 어느 것이라도 나쁠 게 없었다. 나는 그에게 숲을 빠져나가는 방향을 공유하고 우선은 해가 떨어질 때까지만 걸어보자고 제안했다. 밤새 이슬을 머금고 축축해진 풀들이 발목을 스치는 게 썩 유쾌하진 않았으나 서리가 끼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좀 걷다 문득 풀숲 사이로 이질적인 발자국이 보였다. 그것은 분명, 누군가가 근처에 있다는 신호였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발자국이 이어진 자리를 살폈다. 나무들이 빼곡히 있어 그 쪽에 누군가 있는지 육안으로는 살피기 힘들었으나, 미세한 진동이 느껴지는 듯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근처에 누군가가 있는 것 같은데요.”
그는 눈을 껌뻑이다 아래쪽을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걸음을 떼며 그에게 말했다.
“뭐, 조심하라는 거죠. 적대적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사람에게 공격당해서 자상까지 입은 사람치고는 너무 무심하게 반응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으나 더 이상 그의 심중을 파악하고 싶지 않아 포기했다. 나라도 경계해야겠다 싶어 주변 공기를 살피니 공기들 사이로 어쩐지 신경쓰이는 박하 향이 느껴졌다.
그 박하 향의 주인은 얼마 가지 않아 금방 만날 수 있었다.
낙엽 같은 주황빛의 살짝 긴 머리와 바다 같은 푸른 눈빛을 가진 한 남성이 고목 밑에 웅크리고 앉아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의 푸른 눈은 독특했으나, 맑다기보다는 깊은 쪽에 가까워 보였으며 오히려 눈빛에서는 생기보다 공허가 먼저 느껴졌다. 그는 우릴 보자 방긋이 웃더니 입을 열었다.
“그 쪽으로 가면 안돼. 무지하게 큰 늑대가 있거든. 내 동료들도 그 늑대에게 모두 죽었어. 그때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까 늑대가 아마 아직 근처에 있을 거야.”
순간 소름이 끼쳤다. 그가 말한 내용보다도,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지껄이고 있다는 사실에. 무거운 내용과는 반대로 그는 반달 같은 눈웃음과 함께 실실 웃으면서 마치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말했다. 그는 흙이 묻어 더러워진 옷가를 손으로 문지르며 또다시 콧노래인지 혼잣말인지 모를 소리를 중얼거렸다. 그가 걸치고 있는 옅게 줄무늬가 그려진 도포는 옷에 별 식견이 없는 내가 보기에도 값이 꽤 나가 보여서 이곳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옷이라 확언할 수 있었다. 남자는 줄무늬가 짙게 그려진 꼬리나 귀를 봐서는 범이 분명했으나 범치고는 몸집이 작았으며-그래도 범은 범인지라 나보다는 키가 약간 더 컸다- 나긋나긋하게 말하는 투로 봐서는 성격도 그리 사납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그의 미소는 유안과 다르게 어쩐지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말하자면 마치 의도를 가지고 포장된 듯한 웃음이랄까. 애초에 동료들이 자신 빼고 모두 전멸한 상황에서 저렇게 웃고 있는 게 맞나 싶은 의문이 드는 그런 웃음이었다. 그렇다고 늑대 이야기가 거짓이라기엔 그의 옷 군데군데에 묻은 거뭇한 핏자국과 헝클어진 머리카락,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검이 눈에 밟혔다. 나는 의아한 마음이 들어 그에게 물었다.
“늑대가 근처에 있다면 왜 아직까지 도망치지 않은 거죠?”
그는 실없는 웃음을 흘리다가 나를 쳐다보더니 답했다.
“음, 도망친다고 될까? 늑대가 마음만 먹으면 내가 어디에 있든 쫓을 수 있을 텐데. 그리고…….”
그는 이상하게도 거기까지 말한 뒤 더 말을 잇지 않았다. 무언가를 생각한 뒤 멍한 눈빛으로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근축은 잠시 멈춰 대화를 듣다가 이내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와 내가 가고 있던 방향, 그러니까, 저 호랑이가 경고한 그 방향으로.
“못 들었습니까? 그 쪽으로 가지 말라잖아요.”
그가 내 말에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더니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차피 이쪽 방향이 결승 지점이라며.”
“그 정도는 돌아서 갈 수도 있는 거잖아요. 굳이 거기로 가서 늑대를 마주할 필요는 없는데.”
그는 잠시 머리를 긁적이다가 답했다.
“글쎄. 별 상관 없을 거 같은데.”
“네?”
내가 되묻자 그는 검지손가락을 펴서 내 오른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대한 늑대라면 아까부터 저기에서 여길 경계하고 있었거든.”
나는 몸을 돌려 그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여전한 나무들과 흙만 보였을 뿐, 별다를 것은 없었으며 냄새도, 진동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딱 하나, 정밀히 살펴보자 무언가의 체온이 느껴졌다. 무언가 체온을 가진 물체가 이쪽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 순간 어제 봤던 풍경이 떠오르며 속이 뒤집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를 다시 돌아보며 따지듯이 물었다.
“왜 미리 말 안 하셨어요? 누가 봐도 지금 저희를 사냥할 준비 중인데.”
“네가 안 물어봤잖아.”
나는 대답도 못한 채 내가 들은 게 무엇인지 수 초 정도 고민해야 했다. 저 사람에게는 상식이라는 게 없나? 순간 하고 싶은 말이 많았으나 지금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냥 눌러두기로 했다. 그에게 욕지거리를 내뱉는 대신 으드득하며 어금니가 갈리는 소리가 들렸을 뿐. 그리고 마음속에서 상당히 순화되고 정제된 문장을 입 밖으로 내었다.
“이제 어쩌실 겁니까?”
그는 고목 근처에 떨어져 있던 칼을 주우며 말했다.
“싸워야지.”
그러면서 혼잣말을 하고 있던 그 남자에게 칼 좀 빌릴게, 라며 고개를 까딱했다. 내가 그런 그에게 말했다.
“싸운다고요?”
그는 왼손에 칼을 쥔 후 날 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그럼 어쩌게.”
그는 더 이상의 일언반구 없이 검을 뽑았다. 그리고 그것을 기다리고 있기라도 했는지 그가 뽑아 들기 무섭게 나무들이 쓰러지는 소리, 땅에 전해지는 무거운 진동, 점점 진하게 풍겨오는 피냄새, 저 멀리 날아가고 있는 새들, 일련의 것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감각되었다. 역시, 지금 도망치는 건 너무 늦었겠지.
쿠르릉-
정적을 찢고 무언가 땅을 밀어내며 튀어나왔다. 커다란 덩치, 이빨, 그리고 불타는 듯한 두 눈. 집채만큼 커다란 잿빛 늑대였다. 귀를 찢는 듯한 울음소리가 땅을 울렸다. 근축이 싸우는 모습을 보며 나는 무의식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만 금방 독을 어제 그 곰에게 전부 사용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 분명 시간이 지나면 근축이 밀릴 수 밖에 없을 터이니 이대로 아무것도 못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초오까지는 아니더라도, 저 괴물을 약화시킬 만한 독이 필요했다. 나는 머릿속을 필사적으로 뒤졌다. 갖가지 굉음들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울리는 바람에 손까지 떨렸으나 가까스로 주머니에서 약초 몇점을 꺼내 손으로 잘게 가루를 내었다. 그렇게 낸 가루들을 자그마한 약첩에 나눠 넣고 서로 섞었다. 익숙한 냄새가 코 끝에 감돌았다. 약초로 준비한 것들이지만, 성분이 섞이면 그럴듯한 독이 될 것이다. 같은 풀이라도 쓰기에 따라 독이 된다, 늘 그랬다. 나는 약첩을 단단히 봉하고서야 다시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자 시야 너머로 피가 튀었다. 근축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칼로 늑대의 이빨을 막아내고 있었는데, 격렬히 움직이는 바람에 상처가 다시 벌어졌는지 옆구리에서는 피가 배어나오고 한쪽 팔은 이빨인지 발톱인지에 파여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근축이 그때부터 계속 늑대를 상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약초를 배합하는 동안 늑대가 이쪽을 덮치지 못한 모양이었다. 나는 침착하게 가루가 잘 섞이도록 약첩을 흔든 뒤 조용히 동태를 살폈다. 머릿속으론 여러 생각이 많이 들었으나 손끝만큼은 놀랄 정도로 기계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적당한 시기에 늑대의 입 속으로 약첩을 넣어야 하는데. 두 눈으로 둘의 움직임을 계속 쫓았으나 마땅한 순간이 보이질 않았다. 어제 만났던 곰은 가까운 거리였고, 곰이 큰 움직임 없이 서 있던 상황이라 쉽게 던져 넣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늑대는 큰 몸집임에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고, 그와 싸우고 있는 근축까지 피해서 던져 넣어야 했다. 실패하는 순간 잘못하면 일이 틀어질지도 모르는 상황, 평정심을 유지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자꾸만 어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튀기던 살점과, 비릿한 피비린내와, 날리는, 날리는 깃털들. 어쩌면 이번에도 또 누군가가…….
그때, 한 목소리가 들렸다.
“뱀, 뱀! 그거 내가 할게. 저 늑대 입속에다 넣으면 되는 거지?”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니 범이 이쪽으로 팔 하나를 뻗은 채 내게 외치고 있었다. 다만 나는 바로 그에게 약첩을 건네지 못하고 망설였다. 선뜻 몸이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믿을 수 있나, 나는 이 사람을 믿고 맡길 수 있는가.
하지만 지금은 별다른 수가 없었다. 그의 투명한 눈빛에 거는 수 밖에. 그의 푸른 눈이 아주 잠깐, 나를 설득했다.
나는 그의 손 위에 약첩을 놓았다. 약첩이 미끄러지듯이 손을 벗어나는 감각이 불안했지만, 그래도 믿어 보기로 한 이상 불가피한 일이었다. 범은 그것을 받아들더니 몸을 낮추며 발소리를 죽이고는 천천히 접근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가까이 접근했을 때 그는 늑대에게 약첩을 던졌다. 정확하고도 빠르게, 독이 늑대의 몸에 들어가 약간의 틈을 만들 수 있도록.
독을 삼킨 늑대는 무언가 뒤틀리는 것을 느낀 듯 잠시 자리에 서 포효했다. 그리고 근축이 그때를 놓치지 않고 칼을 늑대의 목에 깊숙이 박았다.
쿵-
피가 잔뜩 뿜어져 나오며 늑대는 쓰러졌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그 주황빛 머리의 남성도 늑대와 엇비슷한 때에 주저앉은 건 덤이었다. 그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띄고 있었는데, 아까 전의 공허한 웃음과는 약간 다르게 이번에는 성취 비슷한 감정이 담겨 있어 보였다. 뭐, 그래도 웃음에 꺼름칙한 기운이 담겨 있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여기서 좀 쉬다 가지. 보다시피 당장 걸어가기는 힘들어 보여서.”
근축의 말에 그 쪽을 바라보니 그는 옆구리와 팔 뿐만 아니라 한쪽 다리에까지 피를 흘리고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놀라 그에게 말했다. 걱정한다기보다는 질책하는 듯한 어조로.
“도대체 왜 이렇게 무리한 거예요? 다친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잖아요.”
그는 다치지 않은 쪽 팔로 상처를 대강 지혈하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마치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듯 무신경한 움직임이었다.
“이겼으면 됐잖아. 아, 칼은 미안해. 더러워졌네.”
호랑이는 바닥에 앉아 멍하니 있다가 그의 말에 고개를 들고 배시시 웃었다.
“그건 괜찮아. 고마워. 너 정말 강하더라.”
그러더니 조용하게 덧붙였다.
“나는 인경이라고 해. 혹시 괜찮으면 너희와 함께 다녀도 될까?”
답을 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근축이었다.
“그래.”
나는 그에게 약간 못마땅한 투로 대꾸했다.
“근축 씨, 동행자에 대한 존중은 어디 버리셨습니까.”
저 호랑이, 아니, 인경이 나를 보며 말했다.
“나 발목 잡지 않으려고 노력할게. 뱀에게도 내가, 경주에 있어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사실 그런 이유로 꺼려하는 게 아니라 그 거짓되어 보이는 표정 때문인데. 나는 아직까지도 그의 눈에 담긴 것이 진심이 맞는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때때로 너무나 쉽게 선한 미소를 짓고 그것을 순식간에 뒤바꾸곤 한다. 미소는 주의해야 했다. 타인의 순진한 웃음 뒤에 무엇이 있는지 이미 여러 경험들을 통해 뼈저리게 배웠다. 사람들은 쉽게 웃고, 쉽게 다정하게 대하고, 쉽게 친절을 베풀다가도 그 안에 다들 칼을 숨기고 있는 법이었다. 친절에 꾀인 대상이 다가오는 순간 날카롭게 벼르는, 그런 칼들을. 아픔은 시간이 약인지라 오래 지나면 다 잊혀진다지만, 그보다 더 깊숙한 곳을 찔러 생긴 흉터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쉽게 치유되지 않았다. 그랬기에 나는 새로운 인물을 만날 때마다 끊임없이 마음속으로 저울질해야 했다. 이 사람을 믿을 수 있는가. 믿는다면 어디까지 진심을 보여줄 수 있는가. 그것이 내가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뱀이 아니라, 사영이라고 합니다.”
내 말에 인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웃었다. 그 웃음이 어쩐지 위태로워 보였다.
나는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결국 조용히 말했다. 저 웃음을 믿는 게 아닌, 아까 보여 주었던 기개를 믿어 보자고 속으로 다짐하면서.
“어차피 갈 길이 겹친다면, 따라오는 것 정도는 괜찮을지도 모르죠.”
인경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사영, 앞으로 잘 부탁해!”
나는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이 기분이 뭔지 지금의 나로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