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설임 Mar 04. 2023

한국인이 죽어라 일 하는 건 사실이잖아요.

매일 야근을 해도 돌아오는 건


내가 어렸을 땐 토요일에도 학교에 갔다. 격주마다 토요일엔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됐는데 친구들끼리 '놀토'라고 칭했다. 


학교를 가는 토요일이면 오전 수업만 들었다. 12시 땡 하고 학교를 마치면 선생님의 눈을 피해 내 눈에 이쁜 치마로 갈아입고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시내로 향했다. (지방에서 모이는 곳은 무조건 하나, 시내뿐이다)


지금은 주 5일 출근, 주 5일 등교가 익숙하지만 토요일에는 무조건 쉰다라는 개념을 처음 인식했을 때는 신기했다. 놀토라고 따로 부를 일이 없어진 것. 토요일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쉬는 휴일이 되었다.


한국인의 미련한 노동량과 성실성.. 엄청난 경쟁성장 뒤에는 이러한 미덕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안다. 점점 개인의 일과 삶의 밸런스, 삶의 질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한 우리는, 주 5일만 출근하고 등교하는 삶에 적응되었다. 주말에는 쉬는 것이 당연해졌다. 진정한 선진국으로 들어서는 좋은 과정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 대비 생산성은 여전히 낮다. 즉 일하는 시간은 많은데 일의 성과가 그에 따라오지 못한다는 뜻이다. 


왜 이런 사태가 발생할까?


월급 루팡(근무시간에 일과 관련 없는 것으로 시간을 허비해 월급을 훔쳐간다는 뜻), 칼퇴(칼 같이 퇴근)라는 단어가 직장인에게 뗄 수 없는 것처럼, 우리 모두는 일을 하기 싫어한다. 


하지만 당연하게 '일을 싫어한다'라는 사실이 사태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하기 싫은 일을 할 때는 시계만 보고, 하고 싶은 일을 할 때는 밤낮으로 매달린다.


일을 싫어하는 것이 노동 시간의 대비 결과가 낮은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질, 조직 시스템의 요인은 두 번째 문제고 자신의 일에 열의나 애정 없이 임하는 것 자체가 월급루팡이나 칼퇴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이런 비난을 얻을 수 있다. 


누가 일을 좋아한다는 거냐? 장난치나?


아직도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이 또한 동의한다. 하지만 자신의 일을 완벽하게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지언정, 애착과 열의를 보이는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주변에서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일은 삶의 많은 의미를 차지한다. 그들에게는 알 수 없는 긍정과 아우라가 있다. 집착과 끈기가 있다. 일에 대한 좋은 집착이 좋은 성과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돌아와서 일의 생산성을 낮추는 원인이 '일을 싫어해서'라면, 좋아하는 일을 하면 해결되는 가?


그렇다. 


일 자체의 애정이 크지 않더라도 일하는 과정이 재밌거나.

자신의 결과물에 대한 세상의 반응이 재밌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카페에서 일하는 것이 질려 스터디 카페를 선택했다




개인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사업을 했으면 좋겠다. 크든 작든 자신이 이 세상에 어떤 기여를 하고 갈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현해 내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사업가'라고 생각한다.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어떤 분야든 상관없다.


가능하다면 당연하게도 정해진 시간 안에 일을 꾸역꾸역 하는 현상이 없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두 팔 걷어붙이고 더 잘하고 싶어서 안달이 날 수도 있다. 자신의 개인 시간과 일이 분리될 수 없다. 머릿속에 좋아하는 사람이 계속 떠오르는 것과 같은 이치라 생각한다.


내 주변을 돌아보면 위험한 멘트라는 걸 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자 이상이다. 


한국인의 생산성이 낮다는 영상을 보고 그저 내 생각을 이야기해 본 것뿐이다. (반대의 의견도 언제나 환영이다) 자신의 일을 생계유지 수단으로 하는 사람도 많고, 여러 사정과 환경 속에서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크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결에 맞게 직업을 선택하는 것. 싫어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의 건강한 합의가 이루어지게 노력하는 것. 팍팍한 현실에 활기를 더 하는 것. 


이 또한 가치 있는 일로 여긴다.




흥미나 동기보다 책임과 의무만 앞서는 지금을 체감할 때 


'어른이 되고 있구나'


라며 팍팍함을 느낄 때가 있다.



그 틈을 비집고, 살아있다고 느끼는 것. 


이 또한 인간이 찰나를 살다가는 이유 중 하나이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말 없는 아이의 변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