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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Apr 14. 2022

예술작품의 근원


철학자 하이데거의 예술에 대한 관심은 예술작품의 작업(work)을 이해하는 데에 있다. 그는 ‘예술작품은 어떤 작업을 성취하는가’라는 물음에 답하고자 예술작품과 예술 그 자체를 구분한다. 


예술작품이 존재자라면 예술은 존재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작품은 ‘예술이 존재하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예술작품의 근원』은 1935년 프라이부르크 대학 강연 원고에 바탕을 둔 것으로, 그가 예술에 본격적인 관심을 표명하기 시작한 첫 번째 글이며, 엄연히 따지자면 예술이 아니라 예술작품에 대한 글이다. 하이데거는 저서에서 예술에 대해 간략하게 정의 내린다. 


“예술의 본질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존재자의 진리가 작품-속으로-스스로를-정립하고-있음(das Sich-ins-We-Setzen der Wahrheit des Seienden)’” 


이 정의는 예술에 대한 정의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예술작품이 무엇인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정의를 따르자면, 예술작품은 작품 안에서 진리가 정립되는 것으로 존재할 때에 비로소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


예술작품의 창작은 예술가의 주관적 체험의 표현이고 그 감상이란 작품을 통해 예술가가 겪었던 삶의 재현을 체험하는 것이라는 예술관이 널리 퍼졌으나, 하이데거는 예술작품이 체험의 대상으로 소비되는 현실을 비판한다. 하이데거의 예술철학에 있어 예술작품의 미술사적 가치나 놓인 장소, 가격 등은 그것을 예술작품으로 만들어주는 요소가 아니게 된다. 화랑이나 전시관에 걸리는 예술작품은 어쩌면 예술작품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공공기관은 작품의 관리와 보호를 떠맡고, 전문가와 비평가들은 작품을 심사하고, 화상들은 가격을 매기고 판매한다. 또한 연구자들은 작품을 학문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그러나 예술작품을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사건은 이러한 부수적인 과정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대상존재는 작품의 작품존재를 형성하지 못한다. 필요한 것은 관람자 스스로 작품 안에서 진리를 발견하려는 능동적인 행위다. 하이데거의 예술철학에는 스스로 사유하지 않고 대중에게 떠밀려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자신만의 존재가능성을 추구하는 적극적인 요구가 포함되어 있다. 이런 현존재의 근본 태도를 촉구하는 요구가 하이데거의 존재론과 예술철학에 들어있다.


하이데거 철학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존재에 대한 고찰이다. 존재자는 인간과 자연, 그리고 모든 사물이며, 존재는 그것들이 가진 고유하고 성스러운 성격이다. 하이데거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우리가 자신의 존재가능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태도라는 점이다. 우리는 예술작품을 볼 때 각자의 방식으로 그 의미를 해석한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작품의 감상을 사유의 한 방식으로 보는데, 그저 보고 파악하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 주제에 의해 촉발된 사유의 여정을 능동적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시대를 이렇게 설명한다.


 ‘세계는 황폐해졌고, 신들은 떠나버렸으며, 대지는 파괴되고, 인간들은 정체성과 인격을 상실한 채 대중의 일원으로 전락해버렸다.’ 


이렇듯 하이데거는 오늘날 인간은 존재를 망각했다고 이야기한다. 정치적, 군사적, 사회적, 도덕적, 생태학적인 온갖 폭력이 확산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 몸을 두고 있는 시인과 작가, 예술가는 어떤 작품을 창조해야 하는가? 그들의 사회적, 도덕적 책임과 시적, 문학적, 예술적 의무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어떤 시인이나 작가, 예술가도 이러한 물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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