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레마을 김유정역
아직 추위를 보내지 못하고 있는 겨울의 끝자락, 금방이라도 터질듯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던 매화꽃 봉오리가 드디어 한 송이 두송이 터지기 시작한 이른 봄날
춘천 실레 마을 김유정 작가의 생가로 떠났다ㆍ
지금은 폐역이 된 좁고 소박한 대합실에는 그 옛날 커다란 주전자를 올려놓은 석탄난로가 지금도 펄펄 끓고 있는 듯 훈훈하고 다정하다. 오랜 세월동안 이 역을 드나들던 촌로들과 아낙들, 그리고 학생들이 책가방을 들고, 혹은 곡식자루를 들쳐메고 오르고 내렸을 기차가 '이제는 나도 쉬어가야겠어' 하는 양, 따사로운 봄볕의 철로에 길게 누워 조을고 있었다ㆍ
김유정 선생(1908~1937)은 한국 문학사에서 해학과 향토색이 가장 짙은 작가로 꼽히지만, 그 이면에는 지독한 가난과 병마(폐결핵)에 시달리는 비극적인 삶에 놓여 있었던 작가이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하고 자주 횟배를 앓았다고 하는데 게다가 말더듬이여서 휘문고보 2학년 때 눌언교정소에서 고치긴 했으나 늘 그 일로 과묵했다고 한다. 그 밖에도 성장 과정에서 결핵성 늑막염, 치질 등 잦은 병치레를 치렀다고 하니 30년 짧은 인생이 녹녹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ㆍ
선생은 1930년대 초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강원도 춘천 실레마을로 낙향하여 농촌의 실상을 직접 목격하며 집필에 몰두했다. 이때 탄생한 작품들은 농촌의 가혹한 현실을 다루면서도 특유의 익살스러운 문체로 슬픔을 웃음으로 승화시킨 것이 특징이다. 폐결핵에 시달리면서도 작품에 대한 열정으로 마지막 생명의 온기를 끝까지 불태윘고 빈곤으로 끼니를 채우지 못하는 고통 속에서도 삶에 대한 희망을 결코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와 가장 친했던 작가 안회상에게 마지막으로 쓴 글은 참으로 눈물겹다.
"필승아 나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렸다. 나로 하여금 너의 팔에 의지하여 광명을 찾게 하여다우. 나는 요즘 가끔 울고 누워 있다. 모두가 답답한 사정이다. 반가운 소식 전해다우. 기다리마."
이런 비참한 여건 속에서 탄생한 그의 작품 속의 인물들은 읽는 이의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나같이 허약한 사람이라면 비관에 빠지게 했을 여건들이었겠지만, 선생은 이를 문학적 장치인 '해학(Humor)'으로 승화시켰다. 춘천의 유복한 지주 집안에서 8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으나 가장 민감한 시기인 7세에 어머니를, 9세에 아버지를 여위고 '고아가 된 경험은 평생 그에게 모성(母性)에 대한 지독한 그리움과 근원적인 외로움을 남겼다
그의 소설 속에 유독 '모성적 따스함'을 가진 여성 이나, 반대로 주인공을 휘두르는 '강한 여성(점순이)'이 등장하는 것은 결핍된 사랑에 대한 무의식적 갈망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가문을 이어받은 큰형은 방탕한 생활로 가산을 탕진하여 한때 서울 재동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했던 그가 순식간에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몰락하게 했다. 그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처참한 농촌의 가난은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작가가 몸소 겪은 실존적 고통이 투영된 결과이다.
그러나 그에게 결핍은 오히려 시들지 않은 문학적 에너지의 원천이 되었다. 어린 시절, 말을 더듬었던 그는 주변 사람들의 우스꽝스러운 몸짓, 모순된 행동, 사투리의 리듬감을 본능적으로 포착한다. 김유정 소설 속 인물들이 하나같이 생동감 넘치는 '바보들'인 이유는, 작가가 어린 시절부터 주변사람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보며 자기만의 언어로 재구성했기 때문이리라.
부모를 일찍 여의고 형의 방탕함으로 가산을 탕진한 선생에게 세상은 너무나 가혹했다. 너무 슬프면 오히려 웃음이 터질 때가 있듯 선생은 자신의 비참한 현실을 '남의 이야기'처럼 우습게 그려냄으로써 스스로를 치유했다. 익살과 재치를 통해 슬픔을 웃음으로 승화시킨 골계미의 미학은 그의 작품의 정수이다ㆍ풍자가 대상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공격하는 '칼'이라면, 골계(해학)는 대상을 보듬고 함께 웃는 '솜이불'과 같다.그래서 봄봄의 '나'가 실제로는 노동력을 착취당한 채 기약없이 볼모를 잡힌 분통터지는 현실이지만 이를 희극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독자와 작가 모두 그 비극의 무게에 눌려 죽지 않게 만드는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대학에서 퇴학당하고 실패자로 낙향하여 목격한 농촌의 실상은 자신의 기구한 인생처럼 참혹했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민초들의 질긴 생명력은 선생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굶주리면서도 사랑하고, 속으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농민들의 모습에서 선생은 '건강한 웃음'의 원형을 발견했던 것이다ㆍ.
'"장인 봉필은 눈매가 샐쭉하니 간사하여 사위를 부려 먹을 궁리만 한다."
"점순이는 나를 대그락대그락 들볶아 장인에게 대들게 만든다."
" 얘 그만 일어나 일 좀 해라. 그래야 올 갈에 벼 잘 되면 너 장가들지 않니?"
" 이 자식아, 미처 커야지 조걸 무슨 혼인을 한다고 그러니. 원!"
그가 길어올린 우리말은 당시 농민들의 삶과 감정을 고스란히 살려낸 '살아있는 보물과 같다ㆍ 지식인들이 쓰던 정제된 한자어나 일본식 문투를 거부하고, 농민들이 밭머리에서 주고받던 '날것의 언어'를 문학의 중심으로 끌어올렸기에 한글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 새삼 감탄하게 만든다ㆍ
"밤낮 일만 하다 말 테냐? 거진 다 커가는 몸뚱이가 아깝지도 않니?"
"성례시켜 달라구 왜 말을 못 하니? 벙어리니?"
점순이가 주인공 '나'의 무기력한 우직함에 대한 답답함을 '벙어리'라는 말로 건드리며
"나도 너를 기다리고 있다"
는 뜨거운 속내를 독자도 알고 점순이도 다 아는데 주인공 '나'만 점순이가 자기를 미워해서 구박하는 줄로만 아는 이 지적 격차가 해학의 핵심 이다.
"빙장님은 원체 수염이 적어서 내 손바닥에 한 움큼도 안 된다. 이걸 붙들고 늘어지니 그는 비명을 올리며 땅바닥에 퍽 고꾸라졌다."
"나는 장인님을 넙치처럼 땅바닥에 메어치고는, 그 위에 올라앉아 사정없이 수염을 뽑았다."
장인을 '빙장님'이라 부르며 극존칭을 쓰면서도, 그 수염을 잡고 늘어지는 하극상을 천연덕스럽게, 장인의 초라함과 주인공의 우직한 힘을 대비시키는 문학적 장치는 작가와 독자들의 마음 속 억눌렸던 답답한 감정을 통쾌하게 날려보내버린다.
작은 소도시에서 가장 예쁘고 세련된 감색 스커트와 베레모를 쓰고 학교에 오가던 중학시절의 나는 봄버들처럼 싱그럽고 설레임으로 가득했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밤이면 책을 읽었고, '전기를 아껴야 한다' 며 지청구하는 엄마가 잠들 때를 기다리다, 몰래 다락방에 올라가 촛불을 켜놓고 책을 읽었는데, 이때 읽은 책들이 일제강점기 시대의 작가들이 쓴 한국 단편문학이었다. 그 후에도 이 책들은 힘들고 지칠 때, 인생에 돌파구가 필요할 때 나도 모르게 떠올리는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그리워져서 샘각만 해도 위안을 주는 책들이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 시대 농민들의 처참한 삶을 읽으면서 마음 속에 느꼈던 안타까움과 슬픔, 그리고 순박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그대로 느껴졌던 것은 가혹했던 그 시대를 살아야 했던 무력한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면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지식인들의 아픔이 어린 내마음에 전해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특히 선생의 문체는 강원도 특유의 투박한 사투리와 거친 입담이 세련된 도시의 언어보다 훨씬 더 인간적인 따스함을 담고 있기 때문에 밤을 새워 읽을만큼 재미도 두둑했었다. 이번 춘천여행을 다녀오기 위해 선생의 책을 다시 읽을 수 있는 행복감, 그리고 그 분을 기리기 위해 아낌없이 생가터를 시에 헌납하고 그 분의 일생을 책과 함께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준 김유정 선생의 후손되시는 분들, 또 수많은 사람들의 온정과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선생의 문학을 살려낸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가족과 함께 그 분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