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마키아 벨리의 군주론에서 얻는 영감 -
노동이 삶의 가치였고 노동을 통해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온 세대로서 개인적, 사회적 역할을 다 마치고 나니, 비로서 책임이나 부담없이 남은 여생을 한가로이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울컥 마음의 감동이 일어날 때, 책 한 권을 들고 무작정 바다로 떠날 수 있고, 음악을 들으며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산책할 수 있고, 친구와 여행을 떠나고, 그의 정신세계에 호기심을 가진 작가의 미술 전시회를 다니며, 소일하는 나날들이 참으로 평화롭고 여유롭다. 만약 젊은 날, 열심히 일하지 않았다면 이런 노후를 기대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AI 시대의 미래 세대는 일하지 않아도 AI가 대신 일하고 인류는 일하지 않고도 일생을 향유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그래도 될건지? 에 의문을 갖고 젊은 날, 여러 번 읽었던 군주론이 이 시대에 주는 울림이 있는지, AI기술시대를 살아갈 미래사회를 생각하며 다시 한 번 새롭게 알아보고 싶어 책을 들었다.
오래 전부터 가스의 한 달 소비량을 문 밖 검침표에 적던 일이 몇 달 전부터는 '띵동' 하고 울리는 가스회사의 카톡 앱에 적어올리면 된다. 제 날자에 미처 올리지 못하면 검침직원의 다구침 문자를 여러번 받아야 해서 성가셨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대신 문 밖 검침표를 점검했던 검침직원은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기계는 답을 내놓고 인간은 질문을 던진다’
이 서늘한 선언이 가장 절박하게 울려 퍼지는 곳은 오늘날의 일자리 현장이다. 500년 전 마키아벨리의 눈앞에 놓인 고국 이탈리아가 강대국들의 노략질로 분열되고 짓밟혔듯, 오늘날 우리의 '인간성'은 거대 자본과 결합한 AI라는 강력한 외세에 의해 약탈당하고 있다. 어제의 신입 사원이 배워야 할 기초 업무는 알고리즘의 몫이 되었고, 취약계층이 머물던 단순 노동의 터전은 키오스크와 로봇이 점령했다. 청년들은 경력을 시작할 사다리를 잃었으며, 소외된 이들은 단단한 장벽에 진입하지 못한 채 부유하며 떠돌며 주체가 아닌 데이터의 부속품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있다.
인류는 지금까지, 노동의 가치를 추구하는, 이성적 판단능력을 지닌, 도덕적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생산하고 창조하는 존재로서 인류역사를 지탱해 왔다. 그러나 자본이 가치를 결정하고 기계가 인간보다 더 뛰어난 지능과 노동을 대치하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잉여의 존재로 전락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존재의 의미를 창조할 것인가? 의 위기 앞에 서 있다. 군주론을 읽으며 자본과 기계에 지배당할 위기에 처한 인류와, 500년 전 폭풍 속에 던져진 고국 이탈리아의 혼돈 앞에 선 마키아벨리의 심정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군주론의 배경을 살펴보기로 한다.
1559년 로마 교황청에서 금서목록에 포함시킨 책,
종교개혁가들조차 악마의 책이라고 명한 책,
계몽군주로 알려진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도 ‘마키아 벨리는 틀렸다.’ 고 평가한 책,
그러나 그의 묘비명에는 ‘어떤 묘비명도 이 위대한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다 ‘ 고 쓰여있다. 그가 생전에 쓴 군주론은 메디치 가문의 후광에 들어 자신의 탁월한 정치술을 조국 이탈리아를 위해 쓰이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끝내 외면당했고, 극심한 가난을 견디다 좌절된 희망을 끌어안고 외롭게 죽음을 맞이했던 사람, 그의 무덤조차 잊힌 그의 사상이, 세상에서 다시금 새로운 관심을 받고 인정받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려야 했다.
당시 피렌체, 밀라노, 제노바 등, 여러 공국과 왕국, 교황령으로 분열된 이탈리아는 주변 강대국들,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의 침입과 정치적 분열로 폭풍 속에 던져진 무력한 멋잇감이 된 처지였다. 현대의 우리 또한 거대 자본과 초국적 빅테크 기업이 우리의 일자리, 데이터, 심지어 사고방식까지 알고리즘으로 통제당하는 우리는, 부품으로 소모되는 디지털 식민지의 주민으로 전락하게 될 위기에 처해 있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현대인은 디지털 공간 속에서 파편화되고 정서적 연대가 끊긴 채, 각자도생 하느라 거대 시스템에 대항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읽었던 '군주론'은 예측불가능한 미래 시대를 눈앞에 둔 우리에게 어떤 영감을 줄 것인가? 우선 그가 살던 시대로 돌아가 당시의 상황을 들여다 보고 오늘의 삶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그가 태어난 1469년 이전의 이탈리아는 11세기 이후 베네치아와 제노바, 밀라노, 피렌체 등 공국들의 각축전이 팽배하던 시기였다. 또한 13세기에는 황제파와 교황파의 세력다툼으로 피렌체는 정치적 분열의 위기에 몰렸으며, 군주론이 집필될 당시는 프랑스나 스페인등의 중앙 집권체제를 완비한 주변국의 침략을 피할 수 없던 시기였다. 13세기, 피렌체의 특사로 교황을 설득하기 위해 로마로 파견되었다가 그의 정적이 고의적으로 만든 함정에 빠져 고향 피렌체로 돌아오지 못하고 타국에서 숨진, 단테는 그의 책 신곡에서 ‘비참한 땅에서 피 흘리는 비굴한 이탈리아여, 거대한 폭풍우 속에서 선원이 없는 배여!’라고 한탄했다.
피렌체에서 가난한 법률가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그는 전쟁의 중심에 있었던 어린 시절, 살던 집을 나폴리 군에게 빼앗긴 채 어머니의 손을 잡고 도망쳐야 했다. 1494년 25세에 프랑스 샤를 8세가 피렌체를 침략하여 사기 등등 하게 시가행진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유린당하는 조국의 현실을 지켜봐야 했으며 신정정치를 펼친 사보나 롤라의 비참한 죽음을 목격한 그는 조국 이탈리아를 세울 강력한 군주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이후 29세의 젊은 나이로 외교와 국방을 담당하는 최고 행정관의 비서직을 맡은 그가 외교사절로 프랑스 루이 12세에게 파견되었던 5개월의 경험은, 16세기 초의 변화하는 유럽의 정치질서에서 피렌체의 정치적 위치를 직접 체감하는 계기가 된다. 이후 로마냐로 체사레 보르자(발렌티노 공작)에게 파견되어 그의 호전적이고 독립적인 통치자의 자질을 지켜보면서 강력한 정치권력을 가진 군주의 출현만이 통일 이탈리아를 세울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그러나 그가 군주의 모델로 삼았던 보르자는 부친 알렉산드르 6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강력한 후원자를 잃고 교황 율리오 2세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모함으로 추방당한 후 31세의 나이로 죽고 만다. 보르자의 탁월한 역량(virut)이 안타깝게도 행운의 여신(fortuna)의 손길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마키아 벨리는 위대한 이탈리아를 통일할 가문이 바로 메디치 가문이라는 것을 수많은 역사적 논증을 동원해 '군주론'을 쓰고 메디치 가문에 헌정한다.
당시 피렌체는 상업과 무역이 번성하여 자연스럽게 부유한 시민계급이 형성되었고 이들이 문화소비계층으로 성장하면서 문화와 경제의 중심지로 발전하고 있었다. 의약품업과 무역, 그리고 금융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조반니 디 비치(1360~1429)는 4명의 교황과 2명의 프랑스 왕비, 여러 명의 추기경을 배출한 가문의 기반을 튼튼하게 세운다. 그 뒤를 이은 코시모 데 메디치(1389~1464)는 피렌체의 메디치 은행을 이탈리아 전 지역과 유럽의 최대은행으로 성장시킨다. 막강한 재력을 보유한 그는 산 로렌쪼 수도원과 도서관을 짓고 당시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콘스탄티노플에서 흘러들어온 수많은 고대문명의 원본과 필사본을 아낌없이 사들였다. 그의 손자 로렌초는 뛰어난 정치적 수완으로 주변국가들과 이해관계를 조정했으며 보티첼리와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첼란젤로 등 예술가들을 후원하면서 수많은 걸작을 남기게 된다. 당시 성경에서 가장 천하다고 여긴 고리대금업의 가문으로부터, 잊혔던 고대 로마와 그리스 문명이 부활하였으며 위대한 르네상스 시대의 문을 열게 된 것은 실로 엄청난 아이러니이다.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 대성당, 산마르코 수도원과 도서관에는 메디치 가문이 후원한 수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이 고스란히 남겨있다.
메디치 가문과의 악연은 그의 삶 전체를 뒤흔들었다. 1512년 피렌체 공화국은 신성동맹에 패하고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를 되찾는다. 공화국의 주요 공직자였던 그는 메디치 군주국에 대한 음모혐의를 받고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시골농장으로 추방당했지만 메디치가문의 공직 복귀에 희망을 놓치지 않고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를 집필하며 이 곤경을 빠져나가기 위해 노력한다. 통일 이탈리아의 대업을 이룰 지도자를 도와 자신의 미력한 힘을 다하려 했지만 행운(fortuna)의 여신은 그를 비켜가 버리고 1527년 메디치 가문이 무너지고 만다. 공화정이 재건된 후에도 공직의 기회는 다시 오지 못했고, 마침내 실의에 빠진 채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죽기 전, 친구 베토리와 주고 받은 편지에서 시골마을에 갇힌 채, 가난하고 어리석은 이웃과 논쟁하며 사는 삶을 길게 묘사한 대목이 그의 심정을 대신한다.
’ 저녁이 되면 나는 집으로 돌아가 공부에 들어간다네, 문턱에서 나는 먼지와 진흙으로 범벅된 일상복을 벗고 제왕과 원로원의 의상을 입는다네, ~ 중략~ 나는 더 이상 가난이 두렵지 않고 죽는다는 생각에 떨지도 않는다네, 나는 완전히 그들의 일부가 되는 거라네, 그리고 단테가 지식은 기억으로 간직하지 않는다면 존재하지 못한다고 말하듯, 나는 그들과의 대화에서 배운 것을 적었고 군주론이라는 작은 책을 지었네 ‘
여섯 아이를 둔 추방당한 가난한 가장이었지만 어릴 때부터 익숙했던 라틴어 실력과 고전 읽기는 통일 이탈리아를 염원했던 자신만의 '통치술, 로마사 논고, 피렌체의 역사‘ 등 걸작을 남기게 된다. 다음 내용은 그가 얼마나 메디치 가문의 발탁을 염원했는지를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이탈리아인은 지리멸렬하고 지도자도 없고 질서나 안정도 없으며 짓밟히고 약탈당하고 갈기갈기 찢기고 유린 당하여 완전히 황폐한 상황에 있습니다. 최근 한 줄기 빛이 한 인물(체사레 보르자)을 통해 나타났지만 운명에 의해 일격을 당해 쓰러졌습니다. 이제 희망을 걸 대상은 오직 영광스러운 전하의 가문뿐입니다. 전하의 가문이야말로 행운과 역량을 갖추고 있으며 신의 가호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정치적 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의문과 호기심이 충돌했다. 로마사 논고를 통해 로마공화정의 탁월한 정치체제를 들었던 그가 왜 군주론을 썼을까? 속임수와 거짓과 배반을 하면서까지 강력한 통치권력을 정당화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군주론을 메디치 가문에 헌정한 것은, 가난에 찌든 삶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나? 그는 이탈리아를 정말 사랑했을까? 우리가 고전이라 부르며 이상을 꿈꿨던 실체는 과연 무엇이었나? 이런 수많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그의 심정을 헤아려보려 애써보았다. 추론하건데 아마도 당시 이탈리아는 너무 부패하고 분열되어 있어서 공화정으로 가기위한 청소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즉 강력한 군주가 필요했던 것은 공화국을 세우기 위한 과도기적 수단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본다.
"운명은 여성(가변적인 것)이기에, 그녀를 정복하려면 거칠게 다룰 필요가 있다." — 마키아벨리
그의 책이 금서가 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군주 된 자가 나라를 지킬 때 미덕을 지키기는 어렵다. 때로는 여우처럼 간교하고, 때로는 사자처럼 잔인해져야 한다.’라는 내용 때문이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이데아를 볼 수 있는 철인 통치자를 이상적 군주의 모델로 삼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공동체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이 공직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이전의 인문주의 이상적 군주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필요할 때는 주저 없이 사악해져라, 오로지 선만으로는 권력을 지킬 수 없다.’ ‘필요하다면 군주는 폭력과 간계를 쓰는 일을 서슴지 말아야 한다 ‘고 말한다. 그가 강력한 통일 이탈리아 군주의 모델로 삼았던 교황 알렉산드르 6세의 아들, 발렌티노 공작( 체사레 보르자)은 도둑질, 싸움, 온갖 불법행위가 난무하는 로마냐를 무력으로 점령한 후, 자신의 충복이었던 레미로 데 오르코라는 잔인하고 비정한 인물을 파견하여 전권을 위임한 후, 단기간에 질서와 평화를 회복했고 명성을 얻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자행된 가혹한 조치가 공작의 지시라고 생각한 인민들의 반감을 사게 되자, 적절한 기회를 포착하여 두 토막이 난 레미로의 시체를 광장에 전시함으로써 인민을 속이고 레미로를 배반한다. 강정인, 김경희 님이 옮긴 까치출판사 책에는 ‘이 참혹한 광경을 본 인민들이 한편은 만족을 느끼면서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고 번역했다.
‘만약 당신이 요새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인민이 당신을 미워한다면 요새가 당신을 구하지 못할 것이다’
‘강이 범람할 때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할 것인가? 진정 자유롭기를 원한다면 운명에 맞서 싸워서 승리하라.’
‘남이 때린다고 울지 말라, 더 때릴 것이다. 세상은 울보를 기억하지 않는다.’
때로는 여우처럼, 때로는 사자처럼 교활하고 잔인한 군주의 통치술을 피력했던 마키아 벨리에 이어 1588년 출생한 홉스는 리바이어던이라는 절대 권력으로 세상을 또 한 번 놀라게 한다.
‘인간은 정염의 존재이고, 누구나 다른 사람의 생명이나 재산을 빼앗을 수 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따라서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상태에 있다. 야수와 같은 전쟁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민은 자발적으로 국가와 계약을 맺었고 국민은 주권자에게 절대복종해야 한다.’
~ 면서 철벽같았던 중세시대 신과의 계약을 파기하고 정치 종교 분리의 정당성을 선언한다.
마키아 벨리와 홉스철학의 중심에는 권력의 본질이 인민의 지지와 동의(사회계약)에 있는 한 편, 권력에서 중요한 것은 명분이나 윤리, 도덕이 아니라, 안정된 현실정치체제의 정당성이었다. 홉스와 마키아 벨리가 살았던 시대는 안정된 법이나 규칙이 지배하는 평온한 시대가 아니었다. 구교와 신교의 대립과 국가와 국가 간의 폭력과 힘의 논리로 늘 전쟁의 위협 속에 살아야 했으며, 소수의 귀족들의 폭압적 정치권력으로 국민을 착취했던 당시의 현실에서 볼 때 국민들을 보호할 더 큰 권력을 가진 군주의 출현만이 그들을 지킬 수 있을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물론 그의 통치술이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오해는 '공동체를 위한 선한 목적이 있다면 그에 따르는 냉혹한 결정의 무게를 기꺼이 짊어져라’ 즉 위기에서 탈출하려는 투쟁적 태도였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자본과 기계의 논리에 지배되는 미래사회에서 ‘유발 하라리와 같은 석학들은 ‘무용계급’의 등장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경고한다. 마키아 벨리는 운명을 ‘난폭한 강물’에 비유했다. '운명이 닥치기 전에 둑을 쌓고 대비하며, 자신의 기질을 바꿀 수 있는 유연함을 가진 자만이 살아남는다'라고 보았다. 그동안 일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증명했던 인간은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존재론적 허무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기술을 통제하는 자와 알고리즘에 통제받는 계급으로 나뉘는 미래사회는 ‘계층의 고착화’라는 벽 앞에서 기우뚱거릴 것이다. 소수의 자본가들은 기술을 독점하여 알고리즘을 통해 대중의 관심사를 분산시키고 갈등을 조장하는 교묘한 통치술을 발휘할 수 있다. 마키아 벨리가 ‘ 잔인한 폭력은 레미로에게 시키고 교묘하게 책임을 피한 것'처럼 불평등의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돌리고, 또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이라는 제방을 쌓아 지위를 영속화하려 할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다수의 무용층에게 운명의 노예가 될지, 아니면 행운의 여신(fortuna)이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상상할 수는 있다. 기계에 일자리를 빼앗긴 다수의 인간들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무력감에 빠진 채, 자극적 게임이나 가상세계, 약물, 혹은 알고리즘의 말초적 도파민에 중독되어 시스템이 주는 정보에 순응하는 도구적 존재가 될 우려가 크다. 결국 기계를 점령한 소수의 엘리트들이 모든 의사결정을 독점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의문을 갖는 것은 생존의 문제이다.
마키아 벨리는 혼돈을 타개하기 위해 군주의 virtu(역량)과 fortuna(행운)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군주의 역량은 야망과 결단력, 용기와 기개 같은 강한 힘을 말하고 행운은 외부로부터 오는 절호의 기회를 말하는데 마키아벨리는 이 행운의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이 역량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마키아 벨리의 시대에서는 단 한 사람의 군주의 역할이 절대적이었겠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자신이 삶의 주인임을 자각하는 '주체성'을 가진 깨어있는 다수라고 생각한다. 마키아 벨리가 진정으로 꿈꿨던 것은 군주의 절대권력이 아니라 자유롭고 강한 시민들이 주인이 되는 공화국이었다. 그가 혼란한 시대를 수습하기 위해 잠시 군주의 힘을 빌렸듯이 우리 역시 기계의 침략 앞에 잠시 웅크리고 있을 뿐이다. 깨어있는 다수에게 주어진 무한한 자유는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키고 '인간 본연의 삶'으로 돌아갈 fortuna(행운)가 될 수 있고, 같은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 연대하여 집단적 군주가 된다면 어떤 독재권력이라도 견제할 수 있는 virtu(역량)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기능으로서의 인간을 벗어버리고 내적 충만함을 위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자, 자기만의 서사를 만들어가는 자, 타인의 아픔을 느낄 줄 아는 자, 끊임없이 왜? 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자들은 인간본질에 더욱 더 다가갈 수 있는 행운의 기회가 될 것이다. 자본가에 의한 무력하게 순응한 소비하는 존재가 아닌 스스로의 가치를 결정하고 책임지는 주체로 사는 것, 그것이 바로 마키아 벨리가 창조해낸 virtu(역량)와 fortuna(행운)이다.
문제는 의식의 격차이다. 인류는 위기에 처할 때마다 다수의 폭발적 저항으로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았지만 생존의 압박으로 벌어진 의식의 격차는 소수에게 권력을 내놓아주므로서 반복되어왔다. 미래세대의 인간은 생존의 압박에서 벗어나 결과와 상관없이 과정자체에서 즐거움을 찾는 창조자로서 자기만족과 내적 충만함을 추구하며 예술과 여가를 창조하며 연대하는 다수, 기계가 내놓은 수만가지의 선택에, '왜?' 라고 질문하며 판단하고 결정하는 최후의 주체로 사는 삶을 추구하는 일이야 말로 의식의 격차를 극복하는 길이다.
권력은 진공상태를 허용하지 않는다. 진공상태의 공백을 자본과 기술을 독점한 소수의 통치술로 채워지지 않기 위해서 인간다움을 나누며 자본논리에 매몰되지 않는 정서적 연대는 자본과 인간사이의 균형을 이루어 줄 것이다. 마키아 벨리는 희생자가 되지 말라고 말한다. ‘생산하지 않아도 인간은 충분히 존엄하며 풍요로울 수 있다’는 것을 삶으로 증명하며 늘 깨어있는 것, 이것이 바로 마키아 벨리가 미래사회의 입구에 서있는 우리에게 주는 영감이 아닐까?
용맹은
광포한 공격에 대항하여
무기를 들 것이다.
전투는 짧을 것이니
이탈리아인의 가슴에
조상들의 용맹이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