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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myungdan Jul 07. 2024

집으로 가는 길

장맛비



빗소리가 높아진다

허공을 순식간에 지르며

숙명처럼 부딪친다

부딪치지 않는다면

빗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부딪치며 부딪히며

비를 알아차린다

비는 우산을 두드리고

땅을 두드리고

여름저녁 어둠을 조급하게 두드린다




비는 점이 아니다

이미 굵은 선이다

장대처럼 쏟아진다

우산을 미처 챙기지 못한 사람들은

지하철역을 선뜻 나서지 못 한다

비가 잦아들 타이밍이 있어야 할 텐데

하늘의 뜻을 어떻게 알 것인가

파란 프릴 우산이

빗방울을 튕기며 펴졌다

철모르는 어린아이 같다

우산의 주인공이 하필 나라니




하늘이 울컥울컥 멀미를 하는지

순간 억수가 된다

며칠 이런 기세라면 큰물지겠다

비는 길가로 모여 졸졸 흐른다

절벅거리는 아쿠아샌들은

발을 잡아주지 못한다

오늘부터 장마라 했다

헐렁하고 긴 여름바지는

금세 종아리까지 젖었다

큰 가죽가방을 가슴 앞으로 끌어안으니

여름스웨터는 한쪽으로 쓸려

쇄골이 더 드러난다




정류장이 미어터진다

몸의 반쯤은 비를 맞고 반쯤은

정류장 지붕 밑에 간신히 들어가 있다

어쩔 수 없다

다들 고양이 같다

머리는 지붕 밑이니까 비를 피하는 거다

문 닫은 과일가게 어닝 밑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우산을 들고

뒤에서 그들을 바라보기도 하고

속속 들어오는 차와 시선이 마주치기도 한다

요란스런 빗소리에 주눅이 들었는지

사람들은 말이 없고

휴대폰만 손에서 분주하다




바람에 나무들이 일렁인다

상하좌우

스윙감이 재즈인 듯

가장 자유롭게 표현한다

비가 오면 나는 나를 약속할 수 없다

비의 영혼이 불쑥 들어온다

심연까지 젖어버리는

누군가가 떠올라 추억을 교차시키고

그것은 아련한 스토리가 된다

홀연한 욕망으로

나에게서 가장 먼 나로 일탈한다

생각 사이를 떠다니다 생각을 만나 생각을 물고

마음의 마루를 넘는다




사람들이 몰려간다

버스가 왔다

와글와글 장맛비 사이에서 우산은 언제 접어야 하나

우산 접는 타이밍에 사람의 인격이 보인다

너무 이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는 타이밍

사람들은 하던 대로 한다

스치는 차창 밖

고깃집 순대국집 짧은 처마 밑에선

사내들이 이를 쑤시며 평화롭다

장맛비가 붉덩물을 몰고와

원망하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보통 사람들의 평화가 깨지지 않기를




나태주 시인의 행복이란 시가 있다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 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나태주 '행복'-)




계단을 타고 쪼르르 줄서 있는 비올라

온 몸이 생생하게 젖어

더 노랗게 꽃을 흔들어댄다

들이친 비바람에 날린 꽃잎들이

대문 까지 수를 놓았다

집에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며 전해오는

익숙한 집냄새가

나태주 시인의 행복을 부르게 한다

장맛비의 성가심을 잠시 퉁친다




*사진: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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