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창문을 열자마자 가을바람이 살짝 스며들었다.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가 마치 오래된 음악처럼 내 마음을 스쳤다. 어린 시절 도선사 돌계단 위에서 느꼈던 습기와 정수리에서 스며나던 향기, 할머니 손의 따뜻함까지 떠올랐다. 그 모든 기억이 지금 이 순간, 조용히 나를 감쌌다.
아버지가 외국에 가셨던 날, 나는 옷장에서 풍기는 아버지 체취를 맡으며 그의 부재를 견뎠다. 그 향기는 외로움 속에서 위안이었고, 지금도 마음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셨던 8년 전쯤의 기억도 떠올랐다. 연민과 죄송함으로 마음이 무거웠지만, 오늘 건강하게 계신다는 사실에 감사함이 커진다. 체취는 결코 불쾌하지 않고, 삶의 무게와 사랑이 묻어난 향기로 느껴진다. 아이들이 아기였을 때의 향기는 정말 순수했다. 작은 손과 목덜미에서 스며나던 천사의 향기는 세상 어떤 향수와도 바꿀 수 없었다.
중년을 지나며 나는 점점 향기와 체취에 민감해졌다. 노년이 가까워지며 몸과 마음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감각인 듯하다. 그래서 나는 가끔 올리브영 향수 코너에서 시향을 하고, 백화점 1층의 은은한 향을 음미하며 잠시 멈춘다. 향기는 나를 현재로 데려오고, 동시에 과거를 부드럽게 떠올리게 한다.
며칠 전, 나는 잠시 시간을 내어 레스케이프 호텔 내 스벅에 들렀다. 커피 한 잔과 고요한 공간, 르네상스풍 엘리베이터와 금박 장식, 프레스코화, 정교한 조각 장식의 거울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독였다.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마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이 순간, 나는 스스로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웃었다.
그런 기억 속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존재가 있다. 딸, 베로니카. 그녀는 제주 호텔에서 바쁘게 일하고 있지만, 늘 내 마음을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아 마음이 놓인다. 나는 그녀에게 작은 사건들을 이야기하며 웃음과 유머를 나누기도 한다.
최근, 딸이 이야기해 준 동료 20대 호텔리어 흑채 사건이 떠올랐다. 올리브영 고객층 연령과 화장 습관을 보여주는 작은 해프닝이었다. 동료는 머리 위 흑채를 톡톡 바르다가 쏟아 당황했지만, 결국 인간미와 웃음을 담아냈다. 나는 딸을 통해 이 이야기를 듣고, 상상하며 혼자 웃었다. 서로 다른 세대가 작은 해프닝 속에서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따뜻하게 느껴졌다.
나는 오늘도 향기와 삶을 음미한다. 정수리에서 나는 자연스러운 체취, 은은한 향수 잔향, 오래된 책과 커피, 가을바람과 낙엽, 영화관의 공기까지. 그 모든 것이 내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 준다. 웃프 사건, 유년 기억, 가족과의 따뜻한 소통, 호텔과 스벅에서의 사소한 즐거움, 딸의 성실함과 존재감… 모두 내 삶의 색깔과 향기를 만들어 준다.
세대를 넘나드는 관찰과 공감 또한 삶의 일부다. 젊은이들의 고민과 작은 해프닝, 세심한 노력과 웃음, 그리고 나 스스로를 향한 지지와 이해가 어우러져, 삶이 풍부해진다. 나는 오늘도 딸과 젊은이들을 떠올리며, 그들의 고뇌와 성장을 상상하고, 동시에 내 삶의 고뇌를 돌아본다.
오늘도 나는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향기를 느끼며, 웃음을 잃지 말자. 오늘 하루의 소중함을 마음껏 음미하자.”
세상의 향기와 기억, 작은 사건과 가족의 사랑을 마음속에 담고, 오늘도 나는 충분히 아름답고 충분히 살아 있음을 느낀다. 향기와 웃음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사랑하며 내일을 기다린다. 그리고 내일에도, 삶 속 모든 순간에서 작은 행복을 발견하며, 그 향기와 함께 살아가자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