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고

by 안순나

가장 따뜻한 색으로 그려진 사랑의 초상화.


〈러브러브 울 아들 후고〉





가끔 후고의 그림 앞에 서면,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듯하다.

붓끝의 선과 색이 만들어내는 결, 그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 숨결.

그건 단순히 예술의 흔적이 아니라,

내 인생이 새겨진 또 하나의 일기였다.


후고는 태어날 때부터 예민한 아이였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열이 나고, 밤새 울며 앓던 날들.

나는 병원 복도를 오르내리며,

“제발 이 아이만 괜찮게 해주세요” 하고 수없이 빌었다.

그때의 나는 매일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한순간 웃고, 한순간 울며,

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크고 벅찬 생명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그렇게 아파서 약한 줄만 알았던 아이는,

의외로 강한 내면을 가진 영혼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는 끝없이 몰입했고,

그의 세계는 언제나 음악과 색으로 가득했다.




핑클의 노래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후고는 기저귀를 찬 어린아이였다.

그런데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된 그 노래를

하루 종일 반복해서 듣곤 했다.

리모컨 대신 손가락으로 ‘재생’ 버튼을 누르던 그 작은 손가락.

가사 하나하나를 따라 부르며

음악에 맞춰 고개를 까딱이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그때부터였을까.

그의 마음 안에는 이미 예술의 리듬이 살아 있었는지도 모른다.




초등학생이 되던 어느 해,

후고는 영어학원에서 최고 그룹에 들어갔다.

그저 시켜서 간 학원이었지만,

선생님은 늘 “집중력과 감각이 남다른 아이예요”라고 말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엄마, 나 영어 재밌어.”

그 한마디에 나는 마음이 놓였다.

그가 무엇이든 즐겁게 느낀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어느 날, 학급 회장 선거에서

여자아이들로부터 몰표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후고가 회장이래요.”

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

그건 이미 후고의 본능이었다.


게임을 좋아하던 후고는

때로는 화면 속 세계에 빠져 살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조이스틱을 잡던 모습.

그러다 문득 말했다.

“엄마, 나 가수 될까 봐.”

그 말에 나는 웃었지만,

그 눈빛은 진지했다.

그의 꿈은 늘 순간의 감정에서 시작되었고,

그 감정은 언제나 예술로 흘러갔다.




중학교 시절, 미술대회에 나가서 최우수상을 받았을 때,

나는 놀라움보다 ‘드디어 왔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세상을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것.

자신의 내면을 색으로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건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후고는 결국 미대를 택했다.

그의 결정은 단호했지만, 말은 짧았다.

“엄마, 난 그림이 좋아.”

그 말 한마디로 충분했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제 내 품에서 완전히 떠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3이던 어느 겨울,

후고가 용돈을 모아 내게 네일숍 예약을 해주었다.

“엄마, 같이 가자.”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런데 그 아이는 내 손을 꼭 잡고 웃었다.

“엄마 손, 예쁘게 해주고 싶어.”

그날 나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아들의 배려로 꾸며진 하루’를 선물받았다.

내 옆에 앉은 후고는, 네일을 받는 내 손을 바라보며

“엄마, 이 색이 엄청 잘 어울려.” 하고 말했다.

그 순간, 세상의 어떤 보석보다 반짝였던 것은

후고의 눈빛이었다.




시간이 흘러, 후고는 청년이 되었다.

청년예술청의 공모작에 당선되어 첫 개인전을 열던 날,

나는 전시장 한켠에서 조용히 서 있었다.

그의 이름이 인쇄된 포스터,

벽에 걸린 작품들,

그리고 사람들이 속삭이는 감탄의 소리.

모두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나는 그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천당과 지옥을 오가며 지켜낸 그 생명이,

이제 이렇게 자신의 세상을 그려내고 있구나.’


그날 전시장을 나서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햇빛이 눈부시게 쏟아지고 있었다.

그 빛은 마치 오래전 창문가에 서 있던

그 아기에게로 다시 이어지는 듯했다.


이제 후고는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SNS에는 새로운 그림들이 차곡차곡 올라오고,

전시 소식이 들릴 때마다 나는 여전히 설렌다.

그의 붓끝에서 펼쳐지는 세계는

이제 내 품이 아닌, 세상이라는 거대한 캔버스 위에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의 그림 속엔 여전히 나의 숨결이 있고,

그의 색에는 여전히 엄마의 온기가 스며 있다는 것을.

그는 이제 어른이지만,

내 마음 속에서는 여전히

핑클 노래에 맞춰 고개를 까딱이던

기저귀 찬 꼬마로 남아 있다.





후고야,

너의 그림을 볼 때마다 나는 또 다른 세상을 본다.

그건 단지 예술이 아니라,

삶을 사랑하는 방식의 이야기야.

너는 나에게 예술을 가르쳐준 첫 번째 스승이자,

삶의 아름다움을 다시 믿게 한 사람이다.


러브러브 울 아들 후고.

너는 내 인생의 가장 눈부신 작품이야.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가장 따뜻한 색으로 그려진 사랑의 초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