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딸 베로니카 2

by 안순나

〈예쁜 딸 베로니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란 아이〉

여름밤

11시 50분,

서울 차병원 분만실의 불빛이 희미하게 깜박였다.

그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을 품에 안았다.

예쁜 베로니카.

그 이름이 입술 위로 떠오르던 순간,

세상이 조용히 멈춘 것 같았다.

작고 따뜻한 체온, 그리고 숨결 하나하나가

기적이었다.


임신했을 때 나는 참 행복했다.

베로니카가 내 안에서 자라나던 그 시절,

남편은 종로 복떡집에서, 오징어를 연탄불에 구워

‘임신부를 위한 간식’이라며 웃으며 내밀었다.

그 연탄 냄새와 구운 오징어의 짭조름한 향은

지금도 내 마음 한구석을 스치면

눈물이 핑 돌게 하는 기억이다.

그 시절의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인이었다.


출산 후, 병실의 하얀 불빛 아래에서

남편은 밤새 내 침대 옆을 지켰다.

시어머니가 병문안을 왔을 때,

유산의 위험으로 입원했던 그분이

“내가 자는 방향을 감수했다”라고 하시며 웃었을 때,

우리 가족의 첫 시작은 그렇게 따뜻하고 서툴게 이어졌다.


베로니카가 처음으로 걸었던 한 걸음,

그 한 걸음은 내 심장을 멈추게 할 만큼 감동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세상의 모든 길이

베로니카가 걸어갈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치원 앞에서 “엄마, 빠이빠이!” 하며 손을 흔들던 작은 손,

그 뒤돌아보지 않는 뒷모습을 보며

나는 눈물을 삼켰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공간 속으로

내 아이가 걸어 들어가고 있었으니까.


베로니카의 일기장 옆에는

항상 ‘엄마의 리뷰 일기장’이 있었다.

그날의 그림, 숙제, 그리고 아이의 표정을 적어두던 노트, 그리고 너무도 하고픈 말이 많았던

엄마로서의 하루를 반성하고, 또 감사하던 기록.

나는 그 시절, 아이를 위해 세상에 좋은 건 다 주고 싶었다.

드레스의 레이스 한 줄, 머리리본의 구슬 한 알에도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였다.

발레, 피아노, 수영, 웅변, 영어 그룹과외 —

내 아이가 세상을 향해 자신 있게 설 수 있다면

나는 뭐든 아끼지 않았다.


언덕길 중학교,

급식의 냄새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섞여 있던 그 시절,

베로니카는 키 168cm의 씩씩한 소녀로 자랐다.

6년 터울의 남동생 후고에게는

늘 다정한 누나였다.

“후고야, 울지 마. 누나가 있잖아.”

그 한마디에,

집 안 공기는 언제나 따뜻해졌다.


시간은 참 빠르게 흘러

베로니카는 어느새 대학생이 되었다.

경영학을 전공하며 세상을 배우고,

뉴저지 주립대 어학연수로 처음 홀로 비행기에 올랐을 때,

나는 공항 유리벽 뒤에서 손을 흔들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엄마, 나 다녀올게요.”

남편은 운전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울었다 천상 딸바보 아빠다 그날 밤 나 도혼자 울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 시절,

그곳의 하늘은 늘 푸르지만

아이의 하루는 순탄치 않았다.

호텔에서 근무하다가

터어키식 식당 주방으로 옮겨

손에 화상을 입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님이

“이제 매장 맡아봐요. 당신이 제일 믿음직하네요.”

라고 말했을 때,

베로니카는 총괄 매니저가 되었다.

직원들의 월급을 챙기고,

사장님을 대신 관리하고,

무거운 책임을 묵묵히 감당하던 아이.


엄마인 나는 그저 멀리서 바라볼 뿐이었다.

아이의 손등 위 상처 자국이

내 마음엔 흉터처럼 남았다.

하지만 그녀는 미소 지었다.

“엄마, 난 괜찮아요. 이게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딸이 세상을 이겨낼 힘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호주에서의 몇 해 동안,

베로니카는 음식을 만들어 나누고

각국의 외국인 친구들과 맛있는 요리와

밥 한 끼를..

그건 돈이 아닌 마음의 나눔이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 아이가 나보다 더 큰 사람으로 자라고 있음을 느꼈다.


귀국 후, 베로니카는 카페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다.

커피 향이 가득한 공간에서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미소를 건네던 그 아이는

곧 호텔 프런트로 스카우트되었다.

그곳에서의 첫 유니폼,

흰 셔츠와 네이비블루 스카프가

그녀의 얼굴을 더욱 빛나게 했다.

“엄마, 드디어 시작이야.”

그 말에 나는 마음속으로 박수를 쳤다.


이제 베로니카의 꿈은

호텔 최고경영자가 되는 것이다.

나는 그 꿈이 결코 멀지 않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녀는 늘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해왔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신화월드메리어트호텔,

베로니카는 지금 야간 근무 중이다.

밤 11시의 로비는 고요하고,

창문 너머로 파도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종종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묻는다.

“베로니카야, 무섭진 않니?”

그녀는 웃으며 대답한다.

“엄마, 괜찮아요. 고양이가 따라온 적은 있어요.

처음엔 들개인 줄 알고 놀랐는데,

눈빛이 반짝여서 봤더니 고양이더라고요.

졸졸 따라와서 귀여웠어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마음이 놓였다.

그 밤길에도 누군가가

베로니카의 발자국을 따라 걷고 있다는 게

왠지 모르게 고마웠다.


세상은 여전히 어둡고 차가울 때가 많다.

하지만 예쁜 딸은 그 속에서도

자신의 빛을 잃지 않았다.

나는 그게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예쁜 딸이 걸어온 모든 길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때때로

베로니카가 아기였던 시절의 향기를 떠올린다.

작은 손, 투명한 눈빛,

내 품 안에서 잠들던 따뜻한 숨결.

그 모든 순간이 내 인생의 전부였다.


이제 그 베로니카는 어른이 되었지만,

내 마음속 베로니카는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귀한 아이다.

똥도 아까운 아이다

그녀가 호텔의 로비에서,

손님들에게 미소를 건네며 인사를 할 때,

나는 그 모습이 세상 누구보다 아름답다고 느낀다.


딸이 세상으로 나아가는 일은

언제나 엄마의 눈물로 시작되고,

엄마의 기도로 이어진다.

나는 지금도 매일 밤 기도한다.


“하늘아, 우리 딸을 지켜줘요.

그 아이가 어디에 있든,

빛으로 둘러싸이게 해 주세요.”


그 기도 속에서

나는 오늘도 베로니카의 이름을 부른다.

그 이름이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시의 한 줄이니까.


제주도의 겨울은 생각보다 길었다.

호텔 유리창 너머로 바람이 세차게 불고,

그곳에서 베로니카는 늘 웃음을 잃지 않았다.

밤이 깊어지면 손님들의 발걸음이 줄고,

책상 위로 달빛이 스며들었다.


“엄마, 제주 바람은 쓸쓸해요.

그래도 바닷소리가 친구 같아요.”

그 목소리 너머로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이상하게도 엄마의 마음을 덮어주는 밤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곳의 시간이 다 되어간다.

기숙사 계약 기간이 끝나고,

호텔의 숙소에서 나와야 하는 날이 다가왔다.

1년 치 임대료를 한꺼번에 지불하고 들어가야 하는 방,

작지 않은 금액 앞에서

딸의 목소리는 조금 잠겨 있었다.


“엄마, 이젠 제주를 떠나야 할 것 같아요.

서울 쪽으로 가고 싶은데,

아직 마땅한 자리가 없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마음 한구석이 저릿했다.

이제는 중견급 호텔리어로 자리 잡은 딸이지만,

세상은 언제나 그를 시험하는 듯하다.

화려한 유니폼 뒤에는

늘 고단한 노동이 있다.


나는 그저 조용히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야?”

베로니카는 한참을 말없이 있었다가

작게 대답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려고요.

좋은 기회가 있을 것 같아요.”


그 말속에는

그동안 수없이 넘어지고 일어서며

자신을 단단히 세워온 아이의 믿음이 담겨 있었다.

엄마인 나는 더는 조언할 수 없었다.

그저 그 믿음을 믿어주기로 했다.


베로니카는 늘 그래왔다.

힘든 일을 만나면 잠시 멈춰 숨을 고르고,

다시 고개를 들어 세상을 바라보았다.

호주에서 손에 화상을 입었을 때도,

“괜찮아요. 조금 따가울 뿐이에요.”

하며 웃던 그 아이였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울면서도 다시 걸어가는 사람이라고.

베로니카는 바로 그런 아이였다.


요즘 밤이면

그녀가 사는 제주도의 하늘을 상상한다.

불 꺼진 숙소 창가에서

조용히 차를 마시며,

호텔 공고를 확인하고 있을 딸의 모습을.

그런 모습을 떠올리면,

가슴이 아프면서도 이상하게 뿌듯하다.

그 아이는 이제 완전히 ‘자기 힘으로 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엄마의 사랑이란 건 결국,

손을 놓아주는 연습인지도 모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손을 잡아주던 그날부터,

지금처럼 멀리서 바라보는 이 순간까지,

사랑은 언제나 ‘놓아주는 용기’로 완성되는 것 같다.


베로니카가 이직을 하면

더 바쁘고, 더 치열한 일상을 살겠지.

그 속에서도 나는

그녀가 다시 웃음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호텔의 화려한 로비 조명보다 더 반짝이는 건

딸의 미소라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엄마, 다시 시작할게요.

조금 두렵지만 설레요.”

그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또 한 번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래, 세상은 언제나 불확실하지만

내 딸은 늘 그 속에서 길을 찾는 사람이다.

그게 나의 예쁜 딸 베로니카다.


어쩌면 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자신의 아이에게서

‘자신이 못 다 산 인생의 용기’를 보는지도 모른다.

나는 베로니카에게서 그 용기를 본다.

한때는 드레스의 리본을 묶어주던 그 아이가

이제는 호텔의 방향을 정하고,

직원들의 마음을 이끄는 사람이 되었다.


세상 어디에도 완벽한 길은 없다.

하지만 진심으로 자신을 믿고 걸어가는 사람에겐

언제나 문이 열린다.

나는 그것을,

베로니카의 삶이 증명해 주었다고 믿는다.


이제 나는 기다릴 뿐이다.

호텔 로비에서

그 아이가 환한 미소 지을 날을.

밤 근무를 마치고

“엄마, 오늘도 잘했어요.”

하며 메시지를..



나는 매일 밤 기도한다.

“하늘이여,

예쁜 딸 베로니카에게

따뜻한 빛과 길을 허락해 주세요.”


그리고 나는 안다.

언젠가 그 기도가 닿을 때,

세상 어디에 있든

내 사랑스러운 딸은

또 한 번 새벽처럼 빛날 것이다.


딸이 걸어온 모든 길이


작은 손, 투명한 눈빛,

내 품 안에서 잠들던 따뜻한 숨결.

그 모든 순간이 내 인생의 전부였다.


이제 그 아이는 어른이 되었지만,

내 마음속 베로니카는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귀한 아이다.

그녀가 호텔의 로비에서,

손님들에게 미소를 건네며 인사를 할 때,

나는 그 모습이 세상 누구보다 아름답다고 느낀다.


딸이 세상으로 나아가는 일은

언제나 엄마의 눈물로 시작되고,

엄마의 기도로 이어진다.

나는 지금도 매일 밤 기도한다.


“하늘아, 우리 딸을 지켜줘요.

그 아이가 어디에 있든,

빛으로 둘러싸이게 해 주세요.”


그 기도 속에서

나는 오늘도 베로니카의 이름을 부른다.

그 이름이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시의 한 줄이니까.


이제 나는 기다릴 뿐이다.


언젠가 그 기도가 닿을 때,

세상 어디에 있든

내 사랑스러운 예쁜 딸 베로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