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렐라인처럼

단추 눈 속의 나, 그리고 진짜 엄마

by 안순나




나는 유년의 기억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간다. 세 살의 나는 진짜 엄마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고, 알 수 없는 것이 곧 공포였다. 내 방 안의 공기는 고요했지만, 내 마음은 소용돌이쳤다. 베개에 얼굴을 묻으면 구름처럼 부드러운 감촉이 온기를 주었지만, 그 온기는 금세 사라지고 공허만 남았다. 작은 손으로 장난감 상자를 열고 닫으며, 나는 장난감 속에 무엇인가를 숨기듯 진짜 엄마를 찾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았다.


코렐라인이 작은 문틈으로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장면은 내 마음속의 열쇠를 떠올리게 했다. 작은 문틈, 손가락이 닿는 문틀의 차가운 촉감, 벽지 사이로 스며드는 희미한 빛 — 그 모든 것이 미지와 호기심, 두려움과 설렘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나는 어린 나의 손끝으로 이 공허를 채우려 했고, 단추 눈 엄마는 그 공허의 형상이자 동시에 나의 욕망을 투영한 존재였다.


고모의 이야기 속 진짜 엄마의 모습은 나를 사로잡았다. 진주 출신, 진주여고 졸업, 교도관으로 죄수들에게 존경받았으며 8남매의 장녀로 동생들을 돌보던 따뜻한 누나. 책 사이에 몰래 돈을 넣어두던 작은 손길, 아침마다 챙겼던 반찬과 간식,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마음. 나는 그것을 마음속에서 재현하려 애썼다. 어린 나는 단추 눈 속에서 진짜 엄마를 찾았고, 단추 눈 엄마는 그 재현의 대리인이었다.


영화 속 단추 눈 엄마의 미소는 달콤하지만 동시에 위협적이었다. 벽지를 통해 손을 내밀 때 나는 긴장과 설렘을 동시에 느꼈다. 어린 나는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끌렸다. 그것은 내 무의식이 원하는 모든 것이자, 동시에 잃어버린 것들의 형상이었다. 현실에서 얻지 못한 안정과 안전을 그곳에서 잠시 경험하며, 나는 공허를 잠깐이나마 달랠 수 있었다.


내 방 안의 공기는 여전히 정적이었지만, 나는 장난감 상자를 열고 닫으며 상상의 세계를 떠돌았다. 작은 나무 인형, 낡은 인형 옷, 털실로 만든 토끼 인형, 모두가 내 손끝에서 살아났다. 나는 인형들에게 엄마를 찾아달라고 속삭였다. 그러나 인형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 속에서 사랑과 상실, 공허를 동시에 느꼈다.


새엄마는 현실 속 사랑의 화신이었다. 어린 나의 공허를 완전히 채워주진 못했지만, 삶 속에서 나에게 존재의 근거를 제공했다. 그녀는 내 안에서 단추 눈 엄마와 진짜 엄마 사이의 다리였다. 어린 나는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중년이 된 나는 이제 깨닫는다. 새엄마는 나를 돌보고, 사랑하고, 세상과의 연결을 유지하게 하는 중요한 존재였다.


중년이 된 나는 어린 나와 대화할 수 있다. 세 살의 나, 스무 살의 나, 현재의 내가 동시에 존재하며 서로를 위로한다. 영화 속 단추 눈 엄마와 현실의 새엄마, 그리고 기억 속 진짜 엄마. 나는 이 세 층위를 마음속에서 조율하며 치유를 경험한다.


치유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매일 반복되는 작은 의식, 침묵 속 손끝으로 기억을 더듬는 행위, 향기와 소리, 촉감을 느끼는 시간이 치유의 과정이다. 어린 나의 눈물이 베개에 스며드는 순간, 새엄마의 손길이 내 어깨를 쓰다듬는 순간, 진짜 엄마의 이야기가 내 마음속에서 반짝이는 순간 — 나는 그것들을 마음속 진열장에 정성껏 놓아두고, 매일 조금씩 들여다본다.


꿈속에서 나는 코렐라인처럼 작은 문을 다시 연다. 문틈으로 스며드는 빛, 촉촉한 공기, 단추 눈 엄마의 유혹 — 그것은 과거의 공허와 현재의 이해가 만나는 순간이다. 어린 나는 내 손을 잡고 속삭인다.

“괜찮아, 너 혼자가 아니야.”

나는 대답한다.

“그래, 이제는 네가 나와 함께 있어.”


베갯속에 얼굴을 묻은 세 살의 나, 스무 살의 나, 그리고 65세의 내가 동시에 존재한다. 세 시간대가 겹쳐 있는 내 안에서, 나는 단추 눈 엄마와 진짜 엄마, 새엄마를 모두 안는다. 단추 눈 엄마의 두려움과 욕망, 진짜 엄마의 근원적 사랑, 새엄마의 현실적 돌봄. 나는 이 세 가지 층위를 모두 끌어안고, 어린 나를 달래며, 현재 나를 지킨다.


유년과 현재, 영화와 현실, 단추 눈과 실제 눈, 기억과 망각을 오가며 나는 이해한다. 어린 나는 아직도 엄마를 찾고, 나는 그 어린아이를 달래며, 사랑과 그리움, 상실을 동시에 품는다. 영화가 보여준 ‘동행’은 내가 내 안의 아이와 화해하는 길을 안내한다.


영화관의 어둠, 작은 화면 속 코렐라인의 손짓, 그리고 단추 눈 엄마의 미소. 나는 그것들을 마음속에서 끌어안으며, 세 살의 나를 안고, 스무 살의 나를 달래고, 현재의 나를 안정시킨다. 그 안에서 나는 치유를 경험한다.


치유는 단순히 상실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상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나는 어린 시절의 공허를 인정하고, 현재의 사랑을 경험하며, 과거의 기억 속 진짜 엄마와 새엄마를 동시에 안는다. 그 과정에서 나는 비로소 나 자신을 이해하고, 내 안의 아이를 달래며, 삶의 균형을 찾는다.


단추 눈 엄마, 진짜 엄마, 새엄마. 세 층위의 존재는 내 안에서 서로 얽히고, 충돌하고, 결국 나를 치유한다. 나는 이제 어린 나를 더 이상 혼자가 아닌 존재로 느끼며, 매일매일 작은 의식으로 그 치유를 이어간다.


나는 오늘도 작은 문 앞에 선다. 단추 대신 눈으로, 공포 대신 사랑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그렇게 내 안의 아이는 매일 조금씩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