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영 감독님의 계단 아래
〈명동의 필름이 흐르다〉
명동은 언제나 내게 ‘영화의 도시’였다.
화려한 간판, 빛으로 물든 거리, 그리고 그 불빛 아래 숨어 있던 시간들.
그곳에는 내 청춘의 장면이, 내 마음의 영화가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가장 사랑하던 공간이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명동씨네라이브러리.
이름만 들어도 마음 한켠이 따뜻해지던 곳이었다.
영화가 좋았다.
그곳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로가 되었다.
나는 주로 혼자 그곳을 찾았다.
영화 시작 두어 시간 전, 김밥 한 줄을 챙겨서 로비 창가 쪽 자리에 앉곤 했다.
낮은 음악, 종이 냄새, 커피 향이 어우러진 그 공간에서
김밥을 한입 베어 물며 상영 시간을 기다리는 순간이
내게는 이미 영화의 프롤로그였다.
혼자였지만, 외롭지 않았다.
오히려 혼자일 때야말로, 영화 속 감정과 가장 깊이 이어질 수 있었다.
나는 늘 영화표를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건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그날의 마음을 담은 작은 의식이었다.
하얀 티켓 , 그리고 내 손끝의 온도.
그 한 장의 사진이 하루의 감정을 완성시켰다.
영화가 끝나면 명동성당 언덕길을 걸었다.
종소리가 울리고, 바람이 스쳤다.
명동칼국수집의 문을 열면 익숙한 육수 냄새가 반겼다.
칼국수 한 그릇, 김치 한 젓가락, 그리고 여유로운 오후의 시간.
이후에는 레스케이프 호텔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으로 마무리했다.
남산이 보이는 그 자리에서
영화의 잔상을 커피 향에 섞어 곱씹는 시간—
그것이 내 하루의 엔딩 크레딧이었다.
그러나 명동씨네라이브러리 안쪽,
그곳에 있었던 김기영 감독님의 ‘계단’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음 한쪽이 무너져 내렸다.
한 시대의 영화와 기억이 함께 지워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 계단을 오르며 자주 생각하곤 했다.
‘이 계단은 어디로 이어질까?’
어쩌면 우리가 걸어온 세월의 층계,
그 위에 쌓인 웃음과 눈물, 젊음과 그리움으로 향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명동은 나에게 단순한 거리가 아니다.
신세계 백화점에서 받은 쿠폰으로 커피를 마시던 오후,
중국대사관이 내려다보이던 가무 카페에서
친구의 오빠가 비엔나커피와 핫케이크를 사주던 스무 살의 겨울 ,엘칸토 중학교 동창 현순이외 떡볶이 먹으러 다녔던 거리
그때의 나는 세상이 한없이 넓고, 모든 길이 반짝인다고 믿었다.
커피 위에 얹힌 크림이 천천히 녹아들 때,
우리의 웃음도 그 위에 흩어졌다.
대학 시절에는 밥값을 아껴 필하모니 클래식 감상실에 갔다.
어두운 조명 아래 흘러나오던 비발디와 쇼팽, 바흐의 선율이
지친 하루의 끝을 감싸주었다.
그 뒤에는 늘 샤보이호텔 커피숍이 있었다.
조용한 재즈가 흐르는 그곳에서 마신 커피 한 잔—
그 향이 지금도 내 청춘의 냄새처럼 남아 있다.
더 오래전, 명동은 가족의 풍경 속에 있었다.
아버지의 사무실이 대연각호텔 후문에 있다가
퇴계로 퍼시픽호텔 근처로 옮겨졌던 시절.
그때 나는 시청역에서 내려 명동까지 부리나케 걸음을 재촉했다.
도시의 냄새, 차소리, 전단지 바람—
모든 것이 젊은 날의 리듬이었다.
시간이 흘러 명동씨네라이브러리는 문을 닫았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아직도 상영 중이다.
조명이 꺼지고 스크린이 어두워져도,
진짜 영화는 마음속에서 다시 재생된다.
그곳에서 나는 여전히 김밥을 꺼내 들고,
혼자이지만 따뜻하게,
영화가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다.
명동은 내 청춘의 무대였고,
내 마음을 키운 상영관이었다.
이제 그곳의 불빛은 사라졌지만,
내 안의 필름은 여전히 조용히 돌아간다.
그 불빛은 영화보다 오래 남을 것이다.
언젠가 다시 그 계단을 오를 수 있기를—
그날, 나는 또다시 티켓 한 장을 손에 쥐고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릴 것이다.
그때처럼, 가슴이 조금 안타깝지만 따뜻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