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에서 나를 다시 만나다

나의 리듬에 관하여-물과 호흡

by 안순나


새벽 6시 40분, 수영장 문이 열리는 소리가 아직도 낯설다.

늘 같은 시간인데도, 공기의 냄새는 매일 다르다.

비가 온 다음 날에는 흙내음이 희미하게 스며 있고, 맑은 날에는 염소 냄새가 조금 더 짙다.

그 냄새가 싫지 않다.

마치 내 몸이 곧 물로 변해갈 예감을 전하는 신호 같다.

나는 매일 새벽, 물속에서 하루를 연다.

수모를 쓰고 수경을 고쳐 쓰는 짧은 순간에도 수십 가지의 생각이 스쳐 간다.

오늘은 몇 바퀴를 버틸 수 있을까.

어제보다 조금 더 부드럽게 숨을 고를 수 있을까.

언제쯤 ‘20바퀴 완주’를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을까.


처음 자유형을 배웠을 때, 나는 내 팔이 그렇게 무거운 줄 몰랐다.

물 위에 몸을 띄우는 일이 그토록 어려운 줄도 몰랐다.

숨을 들이마시려면 고개를 돌려야 하고, 돌리면 물이 들어오고, 그 물을 뱉으면 또 숨이 찼다.

그 악순환 속에서 처음으로 ‘호흡’의 의미를 배웠다.


코치는 말했다.

“자유형은 호흡이 90%예요.”

그 말의 뜻을 진짜로 이해하기까지는 몇 달이 걸렸다.

나는 ‘더 세게 차야 한다’, ‘더 빨리 젓자’라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물은 힘으로 밀어붙이는 존재가 아니었다.

억지로 이기려 하면, 더 큰 저항으로 되돌아왔다.


어느 날, 나는 수영을 멈추고 수면 위를 바라봤다.

빛이 물결에 부서지고, 동료들의 팔이 반짝이며 지나갔다.

그때 깨달았다.

“물은, 나를 이기려는 사람을 싫어하는구나.”

물은 내 적이 아니라, 내 호흡을 시험하는 친구였다.


새벽의 거리를 걸어 수영장으로 향할 때면

세상 전체가 잠시 나만의 운동장을 내어준 듯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익숙한 인사가 오간다.

그 인사들은 하루를 여는 주문처럼 느껴진다.


물속에 들어가면 모든 소리가 사라진다.

내가 들을 수 있는 건 오직 내 숨소리뿐이다.

‘들숨, 홀드, 날숨.’

그 세 단어가 내 안에서 리듬처럼 반복된다.

리듬을 놓치면 몸이 무거워지고, 호흡이 흐트러진다.

그러나 리듬을 타면 몸이 물속에서 미끄러지듯 나아간다.

그 순간, 세상의 소음이 사라지고 오직 나만 살아 있는 듯한 평화가 찾아온다.


자유형 20바퀴 완주는 체력보다 마음의 싸움이다.

10바퀴까지는 “괜찮아, 아직 할 수 있어”라며 버틴다.

하지만 15바퀴쯤 되면 속삭임이 찾아온다.

‘오늘은 이쯤에서 멈춰도 되지 않을까.’

그 유혹은 언제나 다정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마음속에서 중얼거린다.

“지금 멈추면, 내일은 더 무겁다.”

물속에서는 한 번의 포기가 다음날의 피로로 이어진다.

그래서 나는 ‘한 바퀴만 더’라는 주문으로 나 자신을 다독인다.


17바퀴쯤이면 위기가 온다.

팔이 무겁고, 다리는 리듬을 잃고, 숨은 점점 짧아진다.

그때부터는 수영이 아니라 명상이다.

“지금은 생각하지 마. 그냥 움직여.”

그 말을 반복하며 18, 19, 그리고 마지막 20바퀴로 나아간다.


터치패드를 손끝으로 치는 순간, 심장이 두근거리며 온몸이 깨어난다.

누가 보지 않아도, 그때의 웃음은 진짜다.

그건 ‘이김’이 아니라 ‘화해’의 웃음이다.


수영은 나에게 삶의 리듬을 가르쳐주었다.

호흡의 균형이 무너지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무조건 노력’만으로는 오래가지 못한다.

들숨과 날숨, 일과 쉼, 몰입과 멈춤의 균형이 필요하다.


물은 내게 말했다.

세상을 이기려 하지 말고, 물처럼 흘러가라고.

때로는 멈추고, 떠오르고, 잠기며 앞으로 나아가라고.

이제 연수반의 14명은 거의 가족 같다.

수영 후 함께 마시는 따뜻한 차 한 잔,

“오늘 행운퀴즈 했어요?” 같은 가벼운 농담,

“오늘 20바퀴 성공했어요!”라는 외침에 터지는 작은 박수.

그 웃음과 격려가 물보다 따뜻하다.

자유형은 혼자 하는 운동이지만, 꾸준함은 언제나 함께하는 사람들로부터 배운다.


사람들이 묻는다.

“어떻게 20바퀴까지 완주하세요?”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팔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여야 해요.”


초반 5바퀴는 몸을 깨우는 시간,

6~10바퀴는 리듬을 잡는 시간,

11~15바퀴는 집중의 시간,

그리고 16~20바퀴는 마음의 시간이다.

결국 중요한 건 ‘나만의 호흡’이다.

남의 속도에 맞추면 금세 지치지만, 내 호흡에 맞추면 오래간다.

물속뿐 아니라 인생도 그렇다.


20바퀴를 완주한 뒤, 나는 물 위에 떠 있는 한 조각의 그림자 같았다.

숨은 거칠었지만 마음은 고요했다.

“끝났다”가 아니라 “이제 시작이구나.”

그날 이후 나는 숫자를 세지 않는다.

이제는 ‘내 호흡이 나와 맞는지’, 그 하나로 충분하다.


물속의 나는 단단하고 고요하다.

물 밖의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딸이고, 엄마이며, 요양보호사다.

그래서 수영은 내게 균형의 예술이다.

남을 돌보는 시간 사이에서 나를 돌보는 단 하나의 시간.

그 시간이 나를 다시 세운다.

돌봄의 현장에서 숨이 막힐 때면,

나는 마음속으로 물속을 그린다.

‘들숨, 홀드, 날숨.’

그 간단한 리듬 하나로 오늘도 나는 다시 일어선다.


자유형 20바퀴 완주는 기록이 아니라, 삶의 은유다.

완주는 도착이 아니라 과정이다.

내일 새벽, 다시 수영장 문이 열리면

나는 또 다른 나를 만나러 물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어제보다 단단하고, 오늘보다 유연한 나를.

삶은, 결국 자유형 같다.

한 번의 들숨과 한 번의 날숨,

그 사이에 ‘살아 있음’이 있다.

그래서 나는 내일도 물속으로 간다.

그곳에서, 나는 여전히 나답게 숨 쉬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