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 없는 우정

by 안순나




1장: 만화가게의 가을 햇살


가을 햇살이 골목길을 부드럽게 물들이던 오후, 나는 만화가게 문을 밀고 들어섰다. 바깥의 바람은 쌀쌀했지만, 가게 안은 따뜻했다. 먼지 낀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햇살 속에서 책장과 만화책들이 반짝였다. 나는 손에 책을 들고 한 권, 또 한 권 페이지를 넘겼다. 다독형인 나의 손끝은 흥분한 마음과 함께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옆에는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천천히 책을 펼치고, 그림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며 인물의 표정과 손짓을 음미했다. 나는 가끔 그 친구를 힐끗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읽고 있었지만,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공유하고 있었다.

내 앞에는 엄희자의 만화책이 놓여 있었다. 인형 같은 눈망울, 섬세한 선, 배경을 가득 채운 꽃과 레이스, 페이지마다 흐르는 감정이 내 마음속에서 피아노 선율처럼 울렸다. 친구는 부용의 만화책을 펼쳤다. 중국 고전 의상을 입은 인물들, 장신구 하나하나까지 친구는 꼼꼼히 감상했다.


서로의 독서 방식은 달랐지만, 우리는 함께 배우고 있었다. 창밖으로 떨어지는 낙엽이 흔들리고, OST처럼 흐르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선율이 우리의 존재를 감쌌다. 오래된 만화책 냄새, 햇살, 친구의 눈빛, 내 손끝의 감각… 모든 것이 한 편의 영화처럼 이어졌다.





2장: 시간 속을 흐르는 우정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우리는 다른 학교로 흩어졌다. 매일 만나던 시절은 지나갔지만, 우정의 끈은 끊어지지 않았다. 부르면 언제든 달려올 준비가 되어 있는 친구,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태도는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친구라는 존재의 가치는 시간을 함께 보내는 빈도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기억하는 깊이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린 시절 목욕탕에서 놀던 시간, 시장에서 떡볶이와 순대를 나누던 기억, 영화관에서 ‘라스트 콘서트’를 보고 육교를 건너던 장면까지, 모든 순간이 마음속에 쌓여 있었다.


사회생활과 결혼 후에도 우리는 서로를 잊지 않았다. 마음으로 전하는 전율은 OST 속 선율처럼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어린 시절 만화가게에서 배운 서로 다른 속도와 방식의 이해는,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우정의 토대가 되었다.





3장: 어린 시절의 세밀한 풍경과 친구의 그림


우리 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있었다. 목욕탕에서 물보라를 튀기며 웃던 순간, 시장 골목에서 떡볶이와 순대를 나누던 시간, 백화점 아이쇼핑에서 서로에게 목도리를 길게 감아주며 장난치던 기억. 모든 장면이 지금도 선명하다.


특히 만화가게의 풍경은 잊히지 않는다. 햇살이 유리창을 통과할 때, 친구는 부용의 만화를 한 장 한 장 뜯어보며 세밀한 의상과 표정, 장식 하나하나를 음미했다. 나는 스무 권을 휙휙 넘겼지만, 친구는 한 권 속에서 무한히 머물며 그림 속 세계를 살아냈다.


부용의 만화 속 인물들은 중국 고전 의상을 입고, 단정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친구의 시선 속에서 나는 세상을 보는 또 다른 방식을 배웠고, 그 배움은 내 삶 속 OST가 되어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4장: 인간관계의 유통기한과 오랜 친구


냉장고 속 소스처럼, 인간관계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누군가는 오래 남지만, 누군가는 시간이 지나면서 시들거나 변질된다. 그러나 오랜 친구는 예외다.


최근, 나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이사 온 지 1년이 넘었지만 만나러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친구는 강아지가 아파 딸네 집에서 돌보고 있었다. 우리는 만나지 못했지만, 마음속 전율은 여전히 서로를 향했다.


심리학자들은 인간관계의 깊이는 횟수보다 경험의 질과 공감 능력에 달린다고 말한다. 오랜 친구는 단순히 많은 시간을 함께한 것이 아니라, 서로의 역사와 감정을 이해하고 기억한다. 나의 어린 시절, 남편과 시어머니와의 일상, 웃음과 눈물… 모든 것이 친구의 마음속에 기록되어 있다.





5장: OST와 마음의 풍경


가을이 깊어갈수록, 나는 창가에 앉아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낙엽이 바람에 흩날리고, 햇살은 바닥 위에 황금빛 물결을 만든다. 먼 하늘의 구름은 느리게 흘러가고, 마음속 OST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선율로 흐른다.


냉장고 문을 열고 유통기한을 확인하며, 나는 음식과 약처럼 인간관계도 관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음식은 상하고, 약은 효력이 줄어든다. 그러나 오랜 친구와의 우정은 유통기한이 없다. 어린 시절의 우리를 기억하고, 서로의 마음속에서 계속 살아가는 친구는 오래된 OST처럼 변치 않고 울린다.





6장: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다정함


나는 가끔 친구를 만나지 못해 안타까워한다. 요양보호사 일과 영화, 집안일로 바쁜 나날 속에서 시간을 내기 어렵다. 그러나 전화 한 통, 메시지 한 줄, 마음속 전율만으로도 충분하다. 오랜 친구는 공간과 시간을 넘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게 해 준다.


친구는 내 어린 시절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잊어버린 순간들도 친구는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역사이자 증인이다. 이 증인은 OST처럼 마음속에서 반복되고, 감정을 울린다.


가을 햇살이 창가를 비추고, 낙엽이 흩날리는 풍경 속에서, 나는 오랜 친구와 함께한 시간을 되새긴다. 우리가 서로에게 유통기한 없는 존재임을, 변치 않는 우정이 존재함을, 그리고 그 우정이 삶 속에서 OST처럼 울려 퍼진다는 것을.





7장: 결론 – 유통기한 없는 우정


냉장고 속 음식, 약, 인간관계의 유통기한을 생각할 때, 나는 오랜 친구의 존재를 더욱 소중히 느낀다. 음식과 약은 시간을 견디지 못하지만, 우정은 시간을 넘어선다. 우리는 다르게 살아왔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마음을 나누며, 삶 속에서 OST처럼 반복되는 선율로 존재한다.


가을바람과 햇살, 낙엽과 구름, 창가의 작은 풍경 속에서, 나는 오랜 친구를 떠올린다. 어린 시절 만화가게와 영화관, 시장과 목욕탕에서 함께했던 시간, 그리고 지금 마음속에서 울리는 전율까지.


그 친구는, 나에게 유통기한 없는 존재다. 우리가 나이 들어도, 바빠도, 멀리 있어도, 마음속에서 계속 살아 있는 친구. 오랜 친구와 함께한 시간은 삶의 OST이며, 그 선율 속에서 나는 오늘도 웃고, 울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