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저지리 예술인 마을 가다

by 안순나

돌공방을 방문했다

풍경 소리가 울렸다.

작가님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요즘 귀가 점점 잘 안 들려요.”

그 소박한 한마디가 공방 안 공기를 잔잔히 흔들며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날 작가님은 프린트물로 이생진 시인의 「아내와 나 사이」를 나눠주셨다.

베로니카 차에 두고 와서 결국 인터넷으로 다시 찾아보았지만, 시와 돌공예 작가님의 삶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아내분이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하루 서너 시간씩 간병인 돌봄을 받는다고... 그래서 공방과 살림집을 합쳐 함께 생활한다고 했다.

살림과 작품이 함께 엮이는 삶 속에서, 돌공예작품, 연리지 나무, 작품 하나하나가 의미를 갖게 되는 이야기였다.


특히 ‘산산조각’ 작품 이야기는 잊을 수 없다.

깨진 돌조각이 놓여 있는 모습을 보며, 작가님은 부처님의 말씀을 전했다.

“얘야, 있는 그대로 놔둬라. 아무리 붙여도 흔적이 남으니, 부서진 것은 부서진 대로 두는 것에도 의미가 있다.”

깨진 조각 그대로의 모습 속에서, 삶의 흔적과 상처, 회복과 이해가 동시에 담겨 있음을 느꼈다.


공방 안에는 연리지 나무도 있었다.

연리지는 두 나무 가지가 오랜 세월 맞닿아한 몸처럼 합쳐진 현상을 뜻한다.

그 유래는 중국 후한 말 학자 채옹의 효심에서 비롯되었다.

채옹은 병든 어머니를 극진히 간호하고 무덤 곁에 초막을 지어 살았는데, 그의 집 앞 두 그루의 싹이 자라면서 가지가 서로 붙어 한 그루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부모를 향한 효심이 나무에까지 나타난 상징이자, 후대에는 부부, 연인, 우정 등 깊은 정과 결합을 비유하는 상징으로 확장되었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시 『장한가』에서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고,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바란다"

라는 구절이 유명해지면서, 연리지는 사랑과 인연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연리지 나무를 바라보며, 나는 인간관계와 삶이 서로 얽히고 맞닿아 가는 모습을 떠올렸다.




작가님은 약 20분 동안 돌과 연리지나무, 산산조각 작품 등등 하나하나의 의미를 상세히 설명했다.

연리지, 산산조각 작품, 그리고 공방과 살림집을 함께 이어가는 삶.

모든 설명 속에서 나는 작품을 보는 눈과 마음이 동시에 열리는 경험을 했다.


이생진 시인의 「아내와 나」, 아내 76세, 자신 80세의 나이.

젊은 시절 서로를 잘 알았지만, 나이가 들며 기억이 흐려져 서로를 완전히 알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오는 삶의 아이러니.

서로 모르는 사이로 만났다가 점점 알아가고, 다시 나이 들어서는 서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간다는 이야기.

그 안에서 피어나는 섬세한 연민과 공감이 마음을 깊게 울렸다.


공방 안 풍경 소리는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었다.

작품 설명 도중 우연히 울린 딸랑딸랑 팅글링 징글링 맑고 경쾌한 소리가, 작가님의 소박한 말과 어우러지며 마음을 잔잔히 두드렸다.

작가님의 겸손하고 따뜻한 이야기들이 작품과 함께 마음속 울림으로 자리 잡았다.


공방을 나서며, 제주도의 풍경을 떠올렸다.

제주에는 ‘문’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집과 담장은 있지만, 길과 공간은 훨씬 열려 있었다.

구멍 뚫린 담장 사이로 바람과 빛이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예술인 마을도 인상적이었다. 저지리 마을에 예술가들이 모여 살며, 나라의 지원을 받아 각자 공방을 만들고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마을 자체가 하나의 공동체이자 작업 공간이 되어, 삶과 예술이 자연스럽게 결합되어 있었다.


베로니카와 함께 작품을 바라보며 나는 손끝으로 질감을 느끼고, 작가님의 설명을 따라가며 마음속 깊이 울림을 받았다.

작품 하나하나에도, 연리지 나무 하나에도, 세월과 삶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나 자신, 나의 기억과 나이, 삶의 흔적까지 함께 떠올랐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생각 속으로 빠져 들게 했다.

길가 가게 종소리, 아이들 웃음소리, 멀리 전철 경적까지 모든 것이 풍경 소리와 겹쳐 마음을 두드렸다.

그날 공방, 돌공예 작품, 작가님의 삶과 시, 제주 풍경과 마을, 그리고 집 안 고요 속의 울림.

모든 것이 하루를 천천히 살아가는 힘으로 자리 잡았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고요한 공간 속에서도 풍경 소리는 남아 있었다.

삶이란 결국 서로의 마음을 읽고 이해하며 천천히 걸어가는 과정임을 깨달았다.

서로의 굽은 어깨를 이해하고 발걸음을 늦추며, 남은 길을 함께 걷는 시간.

그 안에서 우리는 말없이도 서로를 알아가는 법을 배운다.


풍경 소리가 남긴 울림은 단순한 청각적 경험을 넘어 마음속 깊은 곳에 작은 파동을 일으켰다.

두려움과 연민, 오래 놓쳤던 감정들을 깨우며, 나는 다시 삶의 속도를 조절하게 된다.

베로니카와 함께한 공방 순간, 제주 열린 공간, 예술인 마을, 산산조각과 연리지, 그리고 집 안 고요 속의 울림.

모든 것이 하루를 천천히 살아가는 힘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 모두의 삶은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서로를 이해하고 기다리며 걷는 길일 것이다.

그 길에서 마주하는 작은 울림들은 풍경 소리, 돌조각들, 연리지나무, 제주 담장과 예술인 마을처럼 오래도록 마음속에 머물러 삶을 깊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