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우울증
60이 되어 이혼을 결심한 어머니의 마음
부모님 모두 우울증이 있으셨다.
아버지는 50살이 넘었을
무렵부터 하던 사업이 생각대로
되지 않아 스트레스가 쌓였고, 엄마에게 그걸
화풀이하듯 쏟아냈다.
어머니도 아버지와 똑같이 우울증을 달고 살았다.
나와 오빠는 당시 대학생이었는데 본가에서
나와 살았기 때문에 그 사실을 잘 몰랐고
부모님을 챙길 여유도 없었다.
아끼던 강아지가 죽고,
나는 어학연수를 떠나고,
주변에 기댈 곳 없는 상태에서 어머니는
수면제를 먹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도
어머니가 우울증이 다 낫고 나중에 한 얘기다.
자기는 죽을 줄 알고 먹은 건데 잘 자고
일어나서 어이가 없었고, 심지어 아빠는
아직도 엄마가 수면제를 먹은 걸 모른다.
나와 오빠가 회사에 들어가서도
부모님의 사이는 나아지지 못했고
오빠와 나는 서로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그 상황을 애써 외면해 왔던 것 같다.
참, 오래도 외면했다.
하지만 언제나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나에게 힘듦과 고충을 토로할 때에도
나는 자주 본가에 방문하지 않았다.
나도 힘들다는 핑계 때문이었다.
서울에 따로 떨어져 지내면서
본가에 연락이 닿지 않을 때에는
어머니가 혹시 극단적 선택을 하신 건
아닌가, 하고 경찰을 부른 적도 있었다.
그렇게 아버지의 온갖 짜증과 무시를
다 받아내다 안된 어머니가 이혼을 선언하며
집을 나오셨는데, 그게 내 결혼식 직전이었다.
결국 나는 결혼 준비와 동시에
어머니의 이혼 변호사를 알아보고
어머니가 지낼 거처를 마련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나는 결혼식 날짜를
옮기고 식장을 바꾸기도 했다.
결혼식엔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를 모시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식장 위약금을 물고, 시댁에게 양해를
구하며 내 결혼식은 300인에서 100인
소규모 결혼식으로 변경되었다.
이 때는 인생이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예비 부부가 정보를 얻는
카페에서 나는 나보다 슬픈 사연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있었다. 이 때는 이 세상 모든
예비 신부 중에 내가 제일 처량해 보이고 불행해 보였다.
하지만 이때가 아니었다면 나와 오빠가
어머니 속에 박힌 그 응어리가 얼마나
단단했음을 알아챌 수 있었을까?
어머니가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평생 어머니가
얼마나 속으로 앓고 있었는지 몰랐을 것이다.
그래도 버틸만하니까 아버지와 한집에
살고 계신 거겠지, 안일하게 생각하며
무시해 왔을 것이다.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컸으면
딸의 결혼식 직전에 집을 뛰쳐나왔을까..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어머니도 그랬을 것이다. 30년 넘게
참고 살다가 이제 자기도 마음먹으면
집을 뛰쳐나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뒤부터는 어머니의 행동이 당당해지셨다.
이건 정말 좋은 변화였다.
어머니는 별거 중에도 봉제공장에 알바를
구해 계속 일을 하셨고, 차곡차곡
돈을 모아 자기 앞에 있던 모든 빚을 청산하셨다.
아버지 없이도 경제적 도움 없이 잘 살아갈
수 있음을 확인하면서 어머니는 이제
두려울 것이 없어진 것 같았다.
지금 어머니와 아버지는 다시
합치고 잘 살고 계신다.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 아직 너무 크다.
휑한 머리에 주름살로 쭈굴 한 아버지가
잘생겼다고 말하는 천생 여자인 어머니는
이제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아버지가 집에서 놀며 유튜브를 볼 때에도
어머니는 일을 나가신다. 식당 설거지에
공장 알바까지 안 해본 알바가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하신다. 힘들지 않냐, 물어봐도
재밌다 얘기하는 어머니는 우울증이 걸렸을
때보다 지금 더 활기가 넘치고 건강해 보이신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정말 당시엔 말도 안 되는 불행이 닥친 것
같았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저 인생의
한 부분이었다. 그것도 우리 가족의 삶에
피와 살이 되고 도움이 되었던 경험이 되었다.
군자의 세가지 즐거움 중 1락을
난 이미 누리고있다.
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부모구존하여 형제무고가 일락야요)
부모님 모두 살아계시고 형제들이 무고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