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은 분홍이 되어 물들었다.

모든 일은 필연적이다.

by 박나킨


벽에 붙은 종이쪽지가

바람에 흔들린다.


미쳐 버리지 못한 버스 영수증 위에
커피 자국이 번져 있다.


햇빛이 테이블 위로 기울고,
나뭇잎 그림자가 팔에 걸쳐 있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몇 가지는 사라져 있었다.


그날을 기억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기억하고도 싶다.


강렬했던 감정에 잊고 싶지만,

강렬한 감정 탓에 잊을 수 없는,


그때의 빨강이
지금은 분홍빛이 되어
아주 예쁘게, 물들어 있다.


그리고,
그 필연은
이렇게 색을 바꿔가며
나를 물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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