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내어 준다는 것(2)

그 가장 사치스러운 사랑에 대하여_가족 편

by 미쉘오드리

식구라는 이름으로 같은 밥상을 나누던 어린 시절이 지나가고 각자의 삶의 터전을 이루어 가다 보니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가족은 무엇이든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존재일까?

직장생활을 위해 서울로 올라온 뒤 가족을 아주 드문드문 보았다. 1년에 3번 보면 많이 보는 날들이었다. 가끔 이어지는 아버지와의 통화는 짧은 몇 마디와 함께 눈물로 마감되어 그 마저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점 점 사라졌다.

그래서일까?

나는 결혼을 빨리 했고 가족들과 더 빨리 이별을 했다.


가끔 내려가는 친정은 여행을 가듯 갔다. 친정 집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가기 전 준비하는 시간이 더 설렜다. 그러나 막상 도착하면 집안의 대소사로 골치가 아팠고 내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엄마가 돌아가셨다. 엄마의 부재로 혼자 계신 아버지가 걱정되어 아버지를 보러 가는 날들이 추가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1년에 몇 번 못 내려간다.


아버지는 치매로 인해 기억이 소멸되어 가고 있다. 10초간의 통화를 30초로 이어가기 위해 나는 말을 걸고 또 걸지만 아버지의 "안녕"이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로 통화가 끊긴다. 그러나 이제는 나의 이름을 잊어버린 지도 오래되었고 따뜻한 눈인사로 대화를 나눌 뿐 전화로 나누는 대화는 같은 말을 반복하는 정도이다. 아버지의 기억은 점 점 사라져 가고 언젠가는 그조차 끊어지는 일이 생기겠지.. 난 그 시간을 위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지만 과연 마음처럼 받아들여질지 모르겠다.


부모님이 없는 시간을 생각해 본다. 부모님이 없으면 이제 우린 어디서 만나게 될까? 언니들 집을 돌아가며 만나게 될까? 지금도 몇 번 얼굴을 못 보고 지내는데 부모님 기일에서 만나는 것이 전부가 될까?


정말, 잘 모르겠다. 이런 막막함은 나이를 먹어도 예상하기 힘들다. 아니 직면하기 싫은 내 마음을 알아채버린 걸까?


글을 썼다, 지우 다를 반복한다. 생각을 멈추게 하는 이 답답함은 뭘까?


10초간의 전화라도 '안녕'을 잊어버린 아버지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핸드폰을 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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