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내어 준다는 것(1)

그 가장 사치스러운 사랑에 대하여

by 미쉘오드리

우리는 습관처럼 "다음에 밥 한번 먹자."라는 인사를 건넨다. 이 문장은 때로 다정한 안부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가장 정중한 거절의 마침표가 되기도 한다. 함께하는 식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식사를 위해 우리가 기꺼이 지불해야 할 시간이다.


시간을 내어 준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찐친이 아니어도 한국인들은 “다음에 밥 한 번 먹자”라는 얘기를 자주 사용한다. 그런데 그 말에 과연 진정성이 있는 걸까?


전쟁이 휩쓸고 간 자리에 끼니를 채우지 못하는 사람으로 넘쳐나는 시대에서 인사말로 “밥 먹었어요?”가 첫 마디였다. 그 풍습은 지금도 이어져 오는지, 스쳐 지나가는 말로 자주 사용되다 보니 그 진심을 믿는 사람들과 외국인들은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경험하기도 한다.


함께 한다는 것은 시간을 내어 주는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더 나아가 사랑하는 관계와 서로 간에 나눌 수 있는 것이 있는 사이 역시 시간을 내어준다. 같은 공간에서 공부를 하고 직장 생활을 하다가도 언젠가는 헤어지는 시간이 있다. 물리적 공간이 떨어져 있어도 관계를 이어가는 경우도 있으나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연락처 마저 지워버리는 사이도 있다.


좀 더 깊이 있게 들어가면 가족 관계도 예외는 아니다. 형제자매로 자라났지만 원가족에서 분리되어 자녀가 결혼을 하여 또 다른 가족 구성원이 형성되었을 때에도, 특히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형제자매들은 타인처럼 멀어지는 경우도 종종 본다.


이렇게 시간을 내어 준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루하루가 빡빡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시간이 곧 돈이다. 내 시간을 내어준다는 것은 특히나 주말을 함께 보낸다는 것은 친밀함의 최고 퍼센트이지 않을까?


나는 교직에 들어와서 만난 비타민 같은 선생님이 있다. 같은 학년 담임으로 만나 비슷한 또래의 자녀가 있었서일까, 방과 후에도 아이들은 가끔 만났고 다른 학교에 발령을 받아도 우린 드문드문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였다. 코로나 시기에는 몇 년이 흘러 만나도 어제 만난 것처럼 어색함이 없었다. 그러나 서로의 위치가 달라서일까? 서로의 지위가 달라져서일까? 어느 순간부터 공통의 화재가 줄어서일까? 만남의 즐거움이 줄어들더니 이제는 연락을 하지 않은지 한참이 지났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연락을 하고 약속을 정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로 연락을 주고받지 않은 것은, 약속을 먼저 건네는 아쉬움을 가진다는 것은, 시간을 내어 주지 않는 관계는 언젠가는 소원해지기 마련이다. 자신의 용무만을 묻고 연락이 두절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최근엔 SNS에서 나이스샷을 날리는 골프 포즈의 사진으로 근황을 알게 되었다.


나의 경험을 미루어 볼 때 시절 인연이라는 것이 있는 것 같다. 즉, 인관관계의 유효기간 있어서 인연을 붙잡으려고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생겨 악연으로 종말 되기도 한다.



"어떤 인연은 내 삶의 한 계절을 함께하기 위해 온다. 그 계절이 지나면 그는 가고, 나는 남는다. 그것은 비극이 아니라 풍경의 변화일 뿐이다." _ 류시화 시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장을 마주하며 나는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쉰다. “사람이란 어느 시점까지는 서로를 이해하다가, 어느 시점이 지나면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이제 나는 안다. 누군가에게 내 시간을 내어준다는 것은, 다시는 돌려받지 못할 내 삶의 일부를 떼어주는 가장 사치스러운 사랑이었음을. 비타민 같았던 그녀와 나 사이의 계절이 지나갔음을 인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처럼 누구의 잘못도 아니며, 류시화 시인의 말처럼 그저 풍경이 바뀌었을 뿐이다.


이제 나는 멀어지는 인연을 붙잡으려 애쓰지 않기로 했다. 바뀌어가는 풍경을 스쳐가는 바람결처럼 또 다른 계절의 인연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며 내 자리에서 묵묵히 나의 길을 가고 싶다.


나의 시선은 이제 더 깊은 곳, 내 삶의 뿌리이자 가장 가깝기에 가장 소홀했던 ‘가족‘이라는 좀 더 은밀한 곳을 향하기 시작한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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