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야기가 세계를 지배하나요?

이야기엔 여백이 필요하다

by 바오

현대 사회에서 기억되는 위인들은 역사 속 수많은 영웅과 악당, 천재와 발명가들과 무엇이 달랐는가? 예수와 무함마드, 뉴턴과 다윈은 현대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거대한 패러다임을 만들어냈으며, 새로운 패러다임이 출현하기 전까지 그들은 창조자로서 불멸할 것이다.


그렇다, 이야기를 만들어낸 인물은 그 이야기와 함께 불멸한다. 해당 이야기의 핵심적인 역할을 부여받은 인물 또한 불멸한다. 성경의 예수와 베드로가 그랬고, 불교의 부처가 그랬으며, 유교의 공자가 그러하다. 그러나 거대한 이야기만으로는 패러다임처럼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제우스와 성경 속 예수가 무엇이 다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삶의 의미를 찾는 존재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해야 한다. 삶의 의미를 얻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거대한 이야기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은 인물로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한 가톨릭 성인들이 그러했으며, 현대에 종교적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나누고 봉사하는 신도들 역시 그러하다. 그렇다, 이야기가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선 개인이 등장인물로서 역할을 부여 받을 수 있는 여백이 필요하다. 이 여백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을 그 이야기 속에 투영하고,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결국 사랑도 서로의 이야기의 여백을 채워주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이야기는 현재에도 지속적으로 창조되고 있다. 생산 속도는 더욱 가속화되며 다면화된 세계와 같이 복잡하고 불완전한 이야기로 채워지고 있다는 점이 다른것이지만 말이다.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이 에어컨, 냉장고와 같은 제품들과 달리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던 이유 중 하나는, 아이폰이 완성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아이폰 위에서 구동되는 수많은 앱과 기능들은 다른 인물들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여백을 제공했다. 이 여백이 아이폰을 단순한 제품이 아닌, 계속해서 발전하고 확장되는 거대 서사로 발전 시켰다. 세계는 점점 더 큰 여백을 개인에게 부여하고 창조적 주체로서 그들의 선택과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살아가는가? 아직도 누군가 만들어 놓은 거대한 이야기의 여백에 속에서 살아가는 걸까? 사실 세계는 이미 전쟁과 경제 공황, 디지털 혁명를 거치며 보편적 진리였던 거대 서사는 사라지고, 다양한 시각과 개인의 경험이 강조되는 미시 서사의 부상을 경험했다. 이제 세계는 수많은 파편화된 이야기로 쪼개졌고, 이 파편화된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진리나 도덕적 기준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SNS 플랫폼이라는 거대한 여백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창조해내고 있다. 이야기는 힘이다. 파편화된 이야기들을 연결할 수 있는 공감에 대해 다음 글에서 다뤄보고자 한다. 공감이 단순한 수단에서 목적이 되기까지, 거대 서사에서 미시 서사로의 문화적 대전환에 대한 이야기를 위한 서론은 여기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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