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시스템의 혜택를 받고 있는가? 민주주의가 다수의 이익과 생각을 대변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흘러 간다면 아마 높은 확률로 당신은 혜택을 받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게 흘러가는 듯 보인다.
과거 왕권 신분사회에서 조선의 양반계층은 전체 인구의 1~2%였으며, 유럽의 귀족도 비슷했다. 시스템의 혜택을 받는 사람이 이토록 소수인데 어떻게 이러한 사회시스템이 유지 되어왔던 것일까? 다수였던 평민과 노예계층의 이익은 다 어디로 어떻게 갔을까? 힌트는 생각보다 가까이서 찾을수 있다. 우리 교육시스템을 살펴보면, 평균적으로 고등학교 상위 10%만 인서울로 진학을 한다. (이들은 교육시스템의 수혜자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상위 40% 까지는 어느정도 성적에 맞춰서 대학에 진학할 수는있다. 그럼 나머지는? 교육시스템은 모두를 포용하지 않는다. 시스템에 소외된 사람들은 취업이나 재수등 각자에 사정에 맞춰서 살아남을 뿐이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메디컬 열풍으로 상위 1%만을 위한 입시와 교육으로 더욱 파국에 치닺고 있다. 과연 하위 99%의 학생들은 1%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왜 이러한 시스템에 순응하면서 생활하고 있는 것일까?
먼저 이러한 시스템이 유지 될 수있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가장 중요한 이유는 1) 대체가능한 시스템이 만들어 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사회구조와 경제시스템이 가능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더하여 사람집단은 근본적으로 변화와 리스크에 저항을 하기 때문에 미지의 변화보다는 불편한 현상유지를 택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두번째는 소수가 큰 이익을 독점한다고 하여도, 2) 분산된 이익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1등급 학생은 서울권 명문대와 장학금을 받을 기회를 얻고, 3등급 학생은 5등급 학생보다 더 나은 대학에 진학할 기회가 있다. 결국 시스템의 하위 계층 속에서도 그들간 이익의 차등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익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다수가 시스템을 지지할 확률이 높은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점은 각 계층간 이익의 차등이 축소되거나 혹은 지나치게 극대화되었을때 계층 시스템의 안정성은 약화된다. 마지막으로는 시스템에 소외된 다수가 모두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수능 폐지를 누구는 수시축소를 외치며, 절대평가와 자율 학기제등 3) 수많은 합의되지 않은 문제에 대한 의견차이로 다수는 결국 다수의 힘을 잃게된다.
결론적으로 시스템의 수혜를 받는 사람들은 항상 소수이며, 합의되지 않은 다수는 시스템 속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적응하고 수용하며 살아간다. 누군가는 민주주의를 외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이미 무너질대로 무너졌다. 다음글에서 다뤄보도록 하겠다.) 사실 교육시스템을 주로 예시로 들었지만 그보다 더 큰 사회적 구조는 단연코 자본주의이다. 안타깝게도 자본주의가 보여주는 부의 불평등은 그 끝을 모르고 양극화되고 있다. (상위 1%가 전체 부의 40%를 독점하고 있다.) 다수 국민의 의견을 외치는 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앞에서 그 견제 역할을 하지 못한채 무너졌다.
시스템의 수혜자가 되기란 참으로 어렵다. 말했다시피 시스템은 언제나 상위 계층에(이미 혜택을 받고있는 사람)게만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는 계층의 사다리를 막는 방패막 역할을 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사회에서 시스템은 여러개가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면서 존재하고 있다. 즉 내게 유리한 시스템도 있을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우선 노력해보고 안된다면 내가 이길 수 있는 시스템을 찾아야한다. 나는 애초에 과학고등학교 내신교육 시스템과 맞지 않았고, 그래서 교외 활동에 비중을 두며 활동했다. 덕분에 특기자(다른 시스템)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남과 비교하고만 있어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남들에게 유리한 게임이 아니라 나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게임을 찾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