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멍청한 사람들만 하나요?

by 바오

뉴스에서 장관, 의원 배지를 달고 멍청한 말싸움이나 하고있는 정치인들을 보고 있자면 여러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정치인을 뽑는 유권자가 문제인가? 이미지를 날조하는 언론이 문제인가? 선거 시스템이 망가진것인가?


이번글은 권력의 목적이 사라진 한국 사회에 대한 글이다.


[1] 선발 메커니즘: 당장의 권력을 탐하는 인간이 살아남는 구조

정치는 본질적으로 경쟁의 장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 경쟁의 규칙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아니라 이미지를 관리하는 능력으로 바뀌었다. 스마트폰과 여론조사, 실시간 미디어가 결합하면서 정치인은 여론에 맞춰서 자신의 이미지를 재단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즉각적인 보상이 없는 5년뒤 미래가 아니라 다음달 선거를 위한 눈앞의 지지율만 우선시하도록 하는 행동 압력을 가한다. 정책은 실질적 이해관계를 건드려 지지율을 떨어뜨릴 위험이 크다. 반면 조직화되지 않은 상징적 집단을 겨냥한 혐오 정치는 비용이 거의 없고 지지층 결집에는 즉각적이다. 이렇게 ‘가성비 높은 갈등’이 정치의 중심 전략이 되면서, 명확한 비전 없이 단기적 기회주의가 가장 합리적인 선택으로 굳어졌다. 이것이 오늘날 정치가 병든 첫 번째 이유다.


[2] 보험 국가: 아무일도 안하면 안전하다는 착각

개발국가 시절엔 정부가 산업정책, 인프라 확장 같은 명시적 목표를 갖고 움직였다. 오늘의 국정은 점점 보험의 논리로 수렴한다. 말 그대로 사고 방지와 리스크 회피가 국가의 1원칙이 되었다. 문제는, 보험은 실패를 줄일 수는 있어도 성장을 만들어내진 못한다는 점이다. 혁신은 설계와 실행, 그리고 통제된 실패의 누적에서 나온다. 실패를 제도적으로 악으로 규정하고, 책임만 묻는 구조에선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게 최적 전략이 된다. 그 공백을 채우는 건 더 정교한 정책이 아니라 더 교묘한 흑백 선전이다. 누가 책임을 회피하는 기술 잘 구사하는지 겨루게 된것이 두번째 원인이다.


[3] 절차의 함정: 좌파와 우파가 잃어버린 목적의식

롤스는 정의로운 분배의 조건을, 노직은 최소국가의 자유를 말한다. 그러나 둘 모두 그렇게 설계된 구체의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하고 운영할 것인가에 대해선 침묵한다. 정치는 원래 설계의 언어를 가져야 한다. 합의된 원칙을 국가 예산, 과제, 제도로 번역하고 실행과 피드백으로 개선해 나가야한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는 절차의 정당성에 매달린 채, 목적의식을 잃었다. 최저임금의 인상률을 두고 치열히 싸우지만, 10년 뒤 이 나라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비전이라곤 서울 집값이 오를것이라는 믿음만이 유일하다. 정치의 장기 설계가 실종된 자리를 자산 가격의 내러티브가 대체한다. 목적없이 절차에만 매달리게 된것이 마지막 원인이다.


설계된 진보를 향하여

사회는 자연과 다르다. 사회적 제도는 무작위 변이와 자연선택으로 우연히 진화하지 않는다. 의도적 실험과 설계로 진보한다. 헌법, 아폴로 11호, 아이폰은 환경에 적응하다 우연히 나온 산물이 아니다. 문제를 정의하고, 시스템을 설계 반복 검증한 산물이다. 국가의 정치가 해야 할 일도 같다. 흐름대로 잘되겠지가 아니라 목표를 분해하고 설계해야 한다. 정치는 비전의 학문이며, 권력은 그 비전을 실행하기 위한 도구로 다뤄져야한다.


한국의 정치에는 미래가 있는가, 아니면 단지 생존이 있는가?





작가의 이전글흠... 일자리만 없어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