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는 끝났다

by 바오

계층 사다리는 근대 자본주의가 발명한 정교한 통치 장치입니다. 지배층은 아래 계층에게 “올라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더 많은 노동, 더 높은 충성, 더 높은 협조를 끌어냅니다. 즉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인센티브로 작용하는 것이죠.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혁명을 꿈꾸기 보다 경쟁을 택했고, 체제를 부수기보다 그 안에서 성공하기를 원하게 됩니다. 계층 이동의 약속은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사회적 안정 비용을 줄이는 가장 현대적인 통치 기술인 것입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이런 사다리가 언제나 열려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봉건사회, 조선시대, 노예제 사회에서는 대중 다수에게 실질적인 계층 이동 가능성이 거의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회들은 아래 계층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와 창의성을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사회가 필요로 한 것은 순응과 재생산이었지, 보편적인 상승 욕망과 광범위한 경쟁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해 계층 사다리는 인간 사회의 자연 상태가 아니라, 대중의 에너지와 능력을 체제 안으로 끌어들여야 할 때만 본격적으로 발명되고 확대된 장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 전제 자체가 무너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첫째, 생산수단의 성격이 바뀌고 있습니다. 과거의 체제는 인간 다수를 생산의 핵심 자원으로 필요로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AI와 자동화는 점점 더 많은 인지 노동과 실행 노동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만약 생산을 위해 대중 전체의 노동과 협조를 예전만큼 절실하게 필요로 하지 않는 사회가 온다면, 체제는 더 이상 광범위한 계층 이동의 약속을 유지할 강한 이유를 갖지 않게 됩니다. 사다리는 본래 대중을 움직이기 위한 장치였는데, 대중이 더 이상 핵심 생산요소가 아니라면 그 전략적 가치 역시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생산성 격차가 질적으로 전혀 다른 수준으로 벌어질 수 있습니다. 과거의 귀족과 농노,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도 질적인 차이는 있었지만, 그것은 결국 인간과 인간 사이의 격차였습니다. 반면 AI를 소유하고 통제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차이는, 수천 명의 보이지 않는 노동력을 거느린 사람과 맨몸의 개인 사이의 차이처럼 확대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지 자동화가 일자리를 줄인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더 본질적인 변화는 AI가 인간 노동을 대체하는 동시에, 자본을 소유한 자의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증폭시킨다는 점입니다. 그 순간 권력은 단순히 더 부유한 정도를 넘어, 아예 다른 규모의 능력이 됩니다. 아래 계층은 더 이상 위를 따라잡는 경쟁자가 아니라, 경쟁 시스템 바깥에서 관리되는 대상으로 밀려날 위험이 있습니다.


셋째, 미래에는 생물학적 격차마저 계층 문제를 더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유전자 편집, 생명공학, 인지 강화 기술이 일부 계층에게만 집중된다면, 계급은 더 이상 재산이나 교육 수준의 차이가 아니라 신체와 지능의 차이로 굳어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무너지는 것은 단지 평등이 아닙니다. 근대의 계층 서사를 떠받쳐온 전제 자체가 흔들리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능력주의는, 비록 불완전하더라도 적어도 모두가 비슷한 인간적 조건 위에서 경쟁한다는 가정을 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생물학적 강화가 계층적으로 독점되기 시작하면, 경쟁은 같은 사다리를 오르는 일이 아니라 애초에 다른 조건의 인간들 사이의 경쟁이 됩니다. 그때 불평등은 더 이상 노력과 교육으로 메울 수 있는 격차가 아니라, 인간 자체의 성능 차이로 굳어질 수 있습니다.


결국 계층 사다리는 인류가 언제나 누려온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체제가 대중의 노동과 능력, 협조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열어둔 역사적 장치였습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사회가 대중의 생산적 필요를 점점 덜 느끼게 될수록, 계층 이동 역시 더 이상 체제의 필수 조건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계층 사다리가 사라지는 사회는 노골적인 폭력 사회의 형태로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더 안정적이고, 더 효율적이며, 더 조용한 방식으로 닫힐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항할 힘도, 연대할 이유도, 대체할 수단도 잃은 채 각자의 위치에 고립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단순한 불평등의 심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근대가 예외적으로 열어두었던 계층 사다리가 폐기되기 직전의 장면일 수 있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아직도 노력하면 올라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어쩌면 앞으로 살아갈 시간 속에서, 지금이 그 사다리가 실질적으로 남아 있는 마지막 구간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 개인이 해야 할 일은 사다리를 믿고 남들보다 더 성실하게 오르는 데만 몰두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사다리가 아직 작동할 때 최대한 빨리 올라가되, 그 과정에서 얻는 학력과 경력, 신뢰와 현금, 네트워크와 문제 해결력을 곧바로 사다리 밖에서도 남는 기반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앞으로 개인의 과제는 AI와 경쟁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AI라는 생산수단 위에서 더 높은 위치를 점하는 것입니다. 도구의 사용자에 머무르지 말고, 문제를 정의하고 기준을 세우고 결과를 검증하며 신뢰를 제공하는 쪽으로 올라서야 합니다. 사다리가 남아 있는 지금 해야 할 일은 결국 하나입니다. 사다리를 오르는 데 인생을 거는 것이 아니라, 사다리를 발판 삼아 사라지지 않을 기반을 최대한 빨리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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