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도를 벗어난 길
1. 지도를 벗어난 길
서연은 내비게이션을 끄고 운전하기로 했다.
서울에서의 마지막 흔적을 지우고 싶었다. 손에 쥔 핸드폰을 잠시 바라보았다. 착신 목록에는 아직 확인하지 않은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이었다. 모두가 앞길이 창창한 스타 파티시에인 그녀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붙잡고 있었다.
떠나기 전, 서연을 유독 아끼던 선배가 그녀에게 말했다.
"이렇게 다 놓고 떠나버려도 정말 괜찮겠어?"
괜찮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버티는 것도 무리였다. 너무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반복되는 일상과 압박감 속에서 서연은 점차 자신을 잃어갔다. 서연은 피곤한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고 다시 전방을 주시했다. 창문을 살짝 내리자 신선한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국도에 들어서자 점점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커다랗고 빽빽한 고층 건물 대신 넓게 펼쳐진 논과 밭, 그리고 오래된 낮은 담장과 드문드문 작은 식당들이 보였다. 도로 표지판에는 처음 보는 지역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이쪽이 맞을까?'
서연은 조수석에 던져둔 지도책을 펼쳐보았다. 내비게이션을 끄고 온 길이었기에 오직 종이 지도에만 의지하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선을 따라가며 위치를 확인하던 그녀의 눈이 한 지점에서 멈췄다.
'어? 이쪽이 맞는데...?'
[달오름 마을]. 언젠가 인터넷 여행 블로그에서 본 적이 있었다. 한적하고 조용한 땅끝 시골 마을. '달빛 아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지는 곳'이라는 마을의 설명이 흥미로워 기억하고 있었다. 원래부터 이곳을 목적지로 삼았던 것은 아니었다. 서울을 무작정 떠나기로 결심하고 운전대를 잡았지만, 막상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한참 동안을 그저 서울과 먼 곳으로 달리던 서연의 머릿속에 달오름 마을의 기억이 스쳤다. 본능적으로 마음이 끌렸다. 갓길에 차를 대로 달오름 마을을 검색해 봤지만 이미 블로그는 사라진 뒤였다. 딱히 갈 곳도 없었기에 오래된 기억과 종이 지도에 의지해 마을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하지만 서연이 가지고 있는 지도책 어디에도 달오름 마을이라는 마을은 없었다. 순간 앞 유리 너머로 이정표가 보였다.
<달오름 마을 5Km>
'찾았다! 정말 있잖아?'
지도에는 없는 마을이 이정표에는 존재하고 있었다. 서연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달오름 마을 방향으로 차를 틀었다.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길로.
비포장 도로를 달린 지 20여분이 지났을까. 나무들이 빽빽한 길을 따라 차는 점점 깊은 숲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도시 생활에 익숙한 서연에게는 오랜만에 듣는 풀벌레 소리와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어쩐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때 갑자기 앞을 가로지르는 흰 물체가 보였다.
'...!'
서연은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차가 흙길 위에 미끄러지듯 멈춰 서는 순간 그녀는 눈을 크게 떴다. 강아지 한 마리가 도로 한가운데 서있었다. 털이 하얗고 커다란 강아지. 강아지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서연을 쳐다보고 있었다. 서연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문을 살짝 열었다.
"너 어디에서 온 거니? 집이 어디야?"
하지만 강아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꼬리를 한 번 흔들더니, 천천히 숲 속의 샛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 앞으로 가는가 싶더니 이내 뒤를 돌아보았다. 마치 서연에게 따라오라고 말하는 것처럼.
서연은 순간 고민했다. 이대로 차를 몰고 가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그때 갑자기 핸드폰 화면이 깜빡이더니 전원이 꺼졌다. 어젯밤에 충전을 해놓지 않은 탓이었다. 순간 숲 속에서 바람이 살랑 불어왔다. 다시 강아지를 바라보았다. 하얗고 빛나는 털. 관리가 잘 되어있는 걸 보니 주인이 있는 것 같았다.
'강아지를 따라가면 마을이 나오겠지?'
강아지는 여전히 숲길에 선 채로 서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연은 숲길 구석에 차를 대고 천천히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강아지를 따라 지도를 벗어난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