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4
초등학교 6학년이 되는 우리 아들
언어가 딸려 아직 MBTI 검사를 하지 못했다.
그래도 아들이라고, 가끔은 몸개그로 우리 가족의 즐거움과 웃음을 담당하고 있지만 'I'인 것만은 확실하리라.
아들은 삼겹살을 좋아한다. 엄청 자주, 엄청 많이 먹는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삼겹살을 먹어야 하는 인간처럼 보인다.
그래도 소고기보다 삼겹살을 좋아한다.
다행이다.
삼겹살을 좋아하는 아들이 어제저녁 밥상에서 울었다.
배고프다고 밥 달라던 아들이 막상 저녁 식탁을 보더니 조용해졌다.
'왜 그래? 학원에서 무슨 일 있었어?'
밥상에서 웬만해서는 조용할 리 없는 아들이 무표정으로 뚱해있자 엄마가 물었다.
대답도 없이 갑자기 아들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알고보니 저녁을 준비하며 삼겹살을 자르고 있는 아빠를 보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잘게 다져진 삼겹살에 부추와 배추며 양배추, 그리고 두부가 듬뿍 들어간 '삼겹살부추덮밥'
아니 실상은 '채소 가득 삼겹살 조금 덮밥'에 당황한 것이다.
'E'들은 이해 못 하리라.
어쩌면 다른 MBTI 족속들도 이해 못 하리라.
아빠 INFP와 딸 INFP는 빵 터졌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눈물부터 나오는 아들의 행동에
나의 어린 시절 모습과 딸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너도 결국 INFP가 되어버릴라나?
자네도 결국 그 길을 걷게 되어버릴라나?
이게 INFP의 특징인지, 우리 집안 내력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눈물을 닦는 아들의 모습이 서럽다.
삼겹살을 기대하던 아들이,
밥을 두 공기는 거뜬히 먹던 아들이,
채소 가득 삼겹살 조금 덮밥을 깨작댔다.
아들이 남긴 덮밥은 아빠 INFP가 싹싹 비웠다.
아들아! 조금만 더 나이 먹어봐라.
'이게 얼마나 맛있게요!'
글작가 들불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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