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nd dict.
Do not wish to be anything
but what you are, and try to be
that perfectly
Saint Francis de Sales
최근 한국의 소비 트렌드를 살펴보면 뚜렷한 공통점 하나가 있다. 스몰 럭셔리. 하이엔드 명품에 속하지는 않으나 일반 로드샵 제품보다는 하이 퀄리티로 백화점에서 만나볼 수 있는 부담스럽지 않은 브랜드를 말한다. 물론 제품이 가진 성분이나 효과 등이 마음에 들어 사는 소비자도 많겠지만 대다수는 스몰 럭셔리 제품이 불러오는 만족감과 일명 소확행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스몰 럭셔리 중에서도 2030 여성들에게 독보적인 인기를 누리는 브랜드가 있다. 만약 이름을 모른다고? 그렇다면 분홍색 핸드크림은 알 거다. 이솝의 시그니처가 되어버린 레저럭션 핸드크림은 아직 구매하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도 안 보기란 어려울 만큼 핸드크림 시장에서 독보적인 파이를 가져갔다.
사실 핸드크림은 일상생활에서 특히 겨울이 아닌 이상 백화점 제품을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대체재가 많다. 나처럼 손에 땀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겨울철이 아니라면 구매할 일 없는 물건 1순위니까. 그럼에도 가방 안에는 은은한 분홍빛의 이솝 핸드크림이 담겨 있다. 이 브랜드에는 어떤 매력과 전략이 숨어있을까?
이솝은 1987년에 멜버른에 설립된 비교적 오래되지 않은 브랜드다. 향을 주제로 모든 것을 어우르는 종합 코스메틱 브랜드답게 대표적으로 선보이는 제품군도 스킨, 헤어, 바디 케어 라인이다. 어찌 보면 흔하고 단순할 수 있는 제품군이지만 당근마켓에서는 다 쓴 이솝의 공병을 1만 원 이상에 판매할 만큼 브랜드가 내포하는 가치는 아주 크다. 처음에는 남이 다 쓴 제품의 공병을 1만 원 이상에 산다고? 하는 생각이 들지만 공병의 디자인을 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될 만큼 심플하고 모던함이 현재 트렌드를 정확히 겨냥했다.
이솝은 그런 면에서 아주 노련하고 똑똑한 브랜드다. 실용성 있는 제품 자체가 텅 비어버린 빈 공병을 사는 이유는 간단하다. 디자인. 소비 트렌드가 제품의 성능보다도 디자인을 우선으로 고려하는 시대에 맞춰 이솝은 그 트렌드라는 과녁에 퍼펙트텐을 꽂을 만큼 정확한 마케팅을 해내고 있다. 브랜드 철학에서도 이솝이 얼마나 디자인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지가 보일 만큼.
기능과 환경에 대한 배려 깊은 소통. 이솝이 선보이는 디자인을 관통하는 한 문장이다. 즉, 지적이면서도 지속 가능한 디자인에 대해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모든 제품군을 디자인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솝의 용기들은 센스 있고 모던한 것에 비례하게 사용법 역시 어려운 점이 없다.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기능성에도 초점을 둔 면모다.
사려깊은 디자인이 삶의 질을 높인다는 브랜드 철학으로 이어지는 슬로건은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단순히 상권이 좋고 유동인구가 많은 것보다도 얼마나 그 지역과 공간을 잘 활용할 것인지, 어울리지 않는 공간보다는 조화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컨펌한다. 이렇게 애정있게 브랜드를 다룬다면 당연히 성공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
지역과 연관성 있는 디자인 요소를 활용한다는 점은 세계 곳곳에 있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다. 도쿄의 경우 목재 건물이 많은 일본의 건축적 특징을 살려 전시매대와 내부 공간 모두를 원목으로 구성했다. 파리는 예술과 낭만의 도시라는 도시 브랜딩이 있듯 매장 역시 디자인 가구를 많이 놓아두고 제품군을 철제에 전시해 깔끔함을 살려줬다.
이외에도 세계 곳곳의 이솝 오프라인 샵은 거리와 이질적인 느낌을 주지 않는다. 단순히 공간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에도 언제 들어왔나 모를 만큼 자연스럽게 이솝의 매력과 브랜딩이 녹아든다. 애정어린 마음으로 브랜드를 계속해서 가꿔나가는 경영진의 마음이 세계 곳곳의 소비자들에게 보이지 않는 형태로 닿아 돌아오는 건 아닐까? 이번 겨울이 되면 나 역시 오래 닫아둔 뚜껑을 열어 이솝의 향기를 지구 반대편에서 만끽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