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죽음을 생각하자
외려 당신을 행복해지게 만들 우울한 이야기
나에게 죽음은 일찍이 무서운 일이었다.
늦둥이였던 나에겐 위로 9살 차이가 나는 오빠가 한 명 있다. 까닭에 나는 오빠가 있어도 줄곧 외동처럼 지내왔다. 그런 나에게 부모님은 토끼부터 해서 햄스터, 십자매, 강아지와 같은 동물 친구들을 사귀게 해 주었다.
그러나 친구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일찍이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헤어짐을 통해 일찍이 죽음에 대해 어렴풋하게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언제나처럼 엄마의 팔베개를 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누구든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해야 하고 엄마 역시 그럴 것이란 사실에 많은 충격과 슬픔에 젖었다. 한참을 울면서 엄마도 죽느냔 사실을 되묻고 또 되물었다. 엄마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지만 엄마는 눈을 기어코 부릅뜨려 노력하셨다. 슬프지만 언젠가는 누구나 받아들여야 하는 '죽음'. 그 불변하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린아이 앞이라 하여도 거짓으로 일관할 수 없으셨을 터였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한참을 '죽음'에 대해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수능을 치르고 대학교를 입학해 취업을 준비하는 치열한 삶 속에서 대척점에 자리한 죽음은 너무나 터무니없고 먼 이야기로만 느껴졌다.
그러던 대학교 4학년 여름방학의 어느 날, 아르바이트하는 곳에 출근해 점심시간을 기다리던 중 오빠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내용이었다. 전화를 끊고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엄마였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받자마자 괜찮냐는 질문을 했고 엄마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정말 괜찮게 들렸다.
반면, 처음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맞는 나에겐 장례의 모든 과정이 어색했고 어려웠다.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고 마음이 팽팽한 긴장 가운데 놓인 듯 심하게 요동쳤다.
까닭에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나의 생활 속에서도 그에 대한 그리움이 따라왔고 담담하게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던 외할머니의 모습은 강한 대비가 되어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그날의 기억은 나에게 죽음에 대한 면역을 안긴 듯, 이후로 겪게 될 나의 가까운 이들의 죽음에 대해 나는 의연해질 연습을 하게 되었다.
정말로 의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취업 후 업무를 시작하니, 이메일과 문자에 동료 혹은 상사의 애경사는 꾸준히 전해졌고 그들의 기쁨과 슬픔에 편승하면서 간접적으로나마 삶과 죽음의 분위기를 넘나드는 경험을 반복하였으니 의연해지다 못해 익숙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경험들을 통해 얻은 의연함은 나의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당연함이었을 뿐, 나의 죽음에 대해서는 반복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으레 사람은 자신의 일이 되기 이전에는 상상만으로 공감을 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나 역시 그랬다. 뉴스에서 사건사고를 보아도, 주변에서 들려오는 일도, 모두 그들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선을 긋고 형식적인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게 전부였다.
그 사이 나는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첫 아이를 낳고 나니 시어머니와도 통화가 자주 되었고, 줄곧 서로의 가정에 대한 건강과 안부를 물으며 통화를 종료했다.
그러던 어느 날, 통화를 종료하자마자 바로 어머님의 전화가 걸려왔고 꼭 빼먹지 말았어야 하는 말인 것 같은 그 내용은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것이었다. 아버지 회사에 다니시는 아저씨 한 분이 계시는데 그분 사위가 이른 나이에 변을 당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때 들었을 당시에 뭔 제철소 협력업체에 다닌다 했는데.. 점검하다가 글쎄 뭐가 잘못되었는가 사지가 다 찢어져 날아가 버렸대지 뭐니.. 그 아저씨 딸이 지금 배가 만삭에 이미 한놈을 키우고 있는데 말여.."
그 말을 전하시곤 난데없는 전화를 끊으셨다. 기어코 다시 전화해서 전하셔야 했던 아버지 회사에 다니는 아저씨 한 분의 사위가 당면한 죽음. 그것은 무얼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의문에 차서 바라본 나의 배 역시도, 갑작스레 미망인이 된 그 아저씨의 딸처럼, 곧 아이가 나올 것 같은 만삭이었다.
어머님은 동년배인 그 아저씨가 겪은 사위의 장례가 마치 당신의 아들의 것인 양 깊은 슬픔에 차 보였다. 나 역시도 같은 만삭의 처지에 미망인이 된 그 아저씨의 딸을 생각하니 많이 가엾고 안쓰러웠다.
새 생명을 품은 채로 남편을 영영 떠나보내야 하는 아내는, 남은 아이들 키워야 하는 막막함에 눈물을 쏟으며 가슴을 쳐댔을 엄마는 삶과 죽음의 기로 가운데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는지.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엄마이기 때문에 결코 애들보다 먼저 죽을 수 없다는 입장에서, 어쩌면 내 생각보다 이를지도 모르는 그 어느 날을 위해 살아야 한다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렇다면 내가 만약 세상을 떠났을 때 가장 슬프지 않게 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나의 빈자리가 크지 않게, 그러려면 내가 아니어도 되는 일이 다수가 되도록 하는 것이란 결론이 났다.
그날 이후, 남편에게 나는 나의 이러한 생각과 함께 내가 갑작스럽게 입원을 하건 혹은 어떠한 이유에서건 자리를 비울 때 당황하지 않으려면 알고 있어야 하는 집안일들에 대한 설명을 전달했다.
이에 처음에 남편은 어디 먼 길을 떠날 사람처럼 그러냐며 웃어 보였지만 이내 나의 뜻을 이해한 듯 수긍해 주었다.
또한, 아이를 키울 때에도 '자조' 그리고 '독립'이라는 부분을 염두에 두려 노력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아이가 네 살이 넘어가자 자기 취향도 확고해지고, 갖고 싶어 하는 장난감도 제법 여럿 생기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장난감이 갖고 싶다고 졸라대는 아이와, 때와 조건이 맞아야 한다는 엄마 사이의 줄다리기는 이때부터 시작인 것이다.
물론, 아이에게는 내 세상을 모두 안겨 주어도 모자라겠지만, 독립 후 소비 습관에서 갖춰야 할 자기 조절력 향상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비단 죽음에 대한 나의 곱씹음이 우리 가정 내에서의 일에만 영향을 준 것은 아니다.
요즘은 코로나로 인해 외출이 쉽지 않아 SNS로 친구들과 단체 대화를 하는 것이 그나마 유일무이한 소통의 창구가 된 것 같다.
그런데 아무래도 글로 하는 대화이다 보니 함께 모여서 떠들 때와는 달리 뉘앙스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기도 하고 그로 인해 내 말을 오해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곤 한다.
그럴 때면 으레 오래된 친구이니까 그저 내 말에 대한 오해가 없길 바라며 매번 그냥저냥 넘어갔던 것 같다. 왠지 먼저 사과하면 괜히 내가 정말 뭔가를 잘못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무서웠으니까.
그러던 내가 이 일을 계기로 슬며시 미안하다는 말을 꼬박꼬박 해보게 되었다. 나는 그럴 의도가 전혀 아니었지만 혹시나 네가 서운했다면 내가 생각이 짧았고 미안하다고. 속으로만 가볍게 읊고 지나던 내 마음을 훤히 드러낸 다는 게 처음엔 친구끼리 간지럽고 어려울 일이라 생각했는데, 매번 유야무야 지나가고 찝찝해하던 나의 소심한 마음에게는 오히려 그때그때 친구에게서 괜찮다는 대답을 들어버리는 게 더욱 시원할 일이었다.
생각보다 죽음에는 많은 답이 있고 용기가 있다.
죽음을 생각하면 할수록 우울해질 것이라 생각했는가? 오히려 반대이다. 누구나 겪을 것이라 마음에 새기면 갑작스러운 슬픔도 누구보다 용기 있게 맞설 수 있고, 지금의 나의 삶에게는 더욱 힘과 생기를 불어넣어 단단하게 만들어 준다.
심오해 지라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고 우리는 이 끝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육아에 있어서는 아이들의 독립과 자조를 강조하게 하였으며, 가정에 있어서는 남편과의 분업이 가능하게 하였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나의 쓸데없는 자존심을 낮추어 상대방과 오해 없이 기분 좋은 대화가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하였다.
나는 이와 같은 '나의 부재'에 대한 시뮬레이션 혹은 대입법이 다른 생활에서도 충분히 적용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 글을 쓰는 내가 얻었다고 자부하는 몇 가지보다도 훨씬 많은 것을 얻게 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