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공부를 가지고 둘을 비교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오고, 운동을 가지고 둘을 비교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너무나 지당한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자 그럼,
A 씨는 시계를 좋아하고, B 씨는 신발을 좋아하고 이러한 기호를 소비에 직접 반영한다.
이때, 누가 더 좋은 시계를 혹은 신발을 착용하는지를 가지고 둘을 비교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이 역시도 너무나 지당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공부나 운동과는 달리 시계, 신발, 자동차, 또는 가방에 이르기 까지. 기호에 따라 얼마든지 힘을 줄 수 있는 분야에 대해서는 나를 기준으로 상대를 평가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내가 상대보다 좋은 옷을 입었다고 하여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을까?
내 마음은 매우 흡족하고 으쓱할지언정, 실제로 상대보다 나은 사람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지 그 사람과 나의 소비패턴은 다른 것뿐이다.
하여,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닌 이상 나와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다르게 그대로 두고 받아들이는 것이 맞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난히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본다.
그 덕분인지, 주변 아시아 국가뿐 아니라, 서양권 국가들도 많은 관심을 갖고 따라갈 정도로 세련되고 개성 있으면서도 단정한 한국인들의 K-패션은 또 하나의 한류가 되어 인기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종종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옷차림에까지 지나친 관심을 갖는 경우가 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우스꽝스러운 신발이라 하여, 머리스타일이 괴상하다고 하여, 색의 조합이 어울리지 않는 코디라서, 굉장히 튀는 차림새라서 등의 갖가지 이유로 사진을 찍어 공개된 다른 SNS 혹은 단체 대화방에 올려 웃음거리로 만들곤 하는 경우를 보곤 한다.
또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합리적이지 않은 소비를 하였다 하여 이를 이상하지 않냐는 투로 동조를 바라는 글을 쓰는 사람들도 보곤 한다.
임대아파트에 사는데 외제차를 타더라, 연봉이 높은 편인데 중고로 아이 물품을 사더라, 연봉이 작은데 명품을 좋아하더라 혹은 백화점에서만 물건을 사더라, 자산도 많은데 허름하게 입고 다니더라 등의 과도한 상대의 소비에 대한 감시와 관심으로 인해 누군가는 괜하게도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내가 보는 단면을 가지고 상대를 판단하기는 힘들다.
물론, 임대아파트에 살면서 외제차를 타는 사람은 매달 나가는 할부금 혹은 리스, 혹은 높은 유지비로 인해 자신의 소득에 버거운 생활을 하는 흔히 말하는 카푸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차를 선택한 것은 그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도 높은 효능감을 느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아가 혹여나 자동차를 매우 좋아해서 이 사람이 자동차와 관련된 일을 한다고 할 때에 외제차를 직접 사용해 본 경험이 적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지도 않은가? 그렇기에 어려운 생활을 감내해 나가는 것도 온전히 그의 몫인 것이다.
그러니 나와 매우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그 사람의 안위에 대한 걱정은 그만 내려놓도록 하자.
연봉이 높은 편이더라도 아이 물품에 대해 새 제품을 고집하지 않을 수 있다.
지극히 기호에 따른 것이다. 사람마다 괜찮다고 느끼는 정도가 다르기에 나는 무조건 아이 물건은 새것이어야만 한다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고, 짧게 쓰는 물건이니까 중고도 괜찮다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입에 들어가는 건 새것을 사더라도 옷이나 신발 같은 건 또 괜찮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세세한 분류를 따지고 들면 사람마다 괜찮다고 느끼는 수인 범위가 모두 제각각일 것이다.
그 외의 여러 다른 예들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기에 무조건 내가 생각하는 소비 기준을 가지고 상대를 따지고 들려하면 안 된다.
이러한 왜곡된 시선을 통해 본인은 상대를 열심히 깎아내린다고 생각하지만, 본인이 스스로 침수하여 내려가는, 자멸의 길에 들게 되는 것이다.
언젠가 성인이 되어 영어회화 스터디를 하게 된 적이 있었다. 직장인에서부터 아이를 키우는 주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생각을 정리하여 영어로 이야기하며 부족한 회화 실력을 늘리기에 열중하였다.
그중 한 사람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본인이 키우는 아이들의 유치원 등 하원 시간에 마주치는 엄마들이 명품 옷이나 명품 신발, 가방을 하는 모습을 자주 보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명품에 관심이 없는데 나도 사야 하나 고민이 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또한, 아파트 주차장에 외제차가 많은데 나도 사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 말을 듣고 솔직히 말하자면 의아했다. 내가 명품을 사고 싶지도 않은데 다른 사람들이 많이 하고 다니니까 나도 사야 하나 고민이 될 정도로 괴로울까? 물론, 학부모 모임이라든지 할 때에 모두 명품백을 들고 왔는데 나만 없더라 하는 정도면 기가 죽어 괴로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약속을 잡아 모이는 날이 아닌, 평상시에 각자의 기호에 따라 착용하는 명품 백이나 신발이나 혹은 옷 등은 그저 그들의 기호일 뿐일 텐데.
결국 그분은 나도 명품을 살 돈은 있으나 관심이 없어서 안 산다고 말하고 싶은 것 같았다. 그런데 내 생각엔 그런 말은 누군가가 왜 너는 소득이 충분한데 명품을 사지 않냐고 물었을 때 답변으로 쓸 수 있는 말 같았다.
나는 당연히 의아함을 담고 그 사람이 소비하는 것에 당신이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코멘트를 해주었다.
그렇게 스터디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나에게 어디 사느냐고 물었고 지역구와 아파트명을 알려주자 본인도 같은 아파트에 산다며 몇 동이냐고 물었다. 대답해 주었더니 거기는 도로 근처라 시끄럽지 않냐고 물어 그렇지 않다고 하였다. 그러고 얼마 뒤 단톡방에 자신이 사는 동과 호수를 알려주며 집들이 음식을 준비했으니 초대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보자 하니 그 사람이 사는 동은 비교적 앞에 위치하였고 몇 세대 안 되는 넓은 평수가 있는 동이라 값이 더 나가는 편이었다.
그 당시에는 처음 보는 사람의 집이 어딘지 왜 이렇게도 캐묻나 의아하고 불쾌했다. 그런데 나중이 되어 생각해 보니 결국은 자신이 힘주는 분야는 집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아파트 단지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국평이 아닌, 더 넓고 비싼 평수에 사는데도 나는 명품을 사지 않는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까지 남에게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신경 쓰며 사는 그 사람이 많이 불안해 보였다. 어디까지나 소비패턴이 다른 것일 뿐, 누구나 힘주는 분야가 다른 것일 뿐인데, 나의 기준으로 상대를 보는 것도 모자라 상대의 기준에 비치는 자신까지 신경 쓰려니 적잖이 피곤할 것 같았다.
그저 나와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른 소비를 하는 것일 뿐.
그 사람을 향한 걱정이나 비난은 헛되고 부질없으며, 외려 그로 인해 자칫 본인이 화를 입을 수도 있으니 자중하는 편이 좋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