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은 마치 식당에서 나오는 반찬 같아요
내 손을 떠난 선물은 잊어버려요
가정의 달, 5월이 되니 주변을 챙겨야 하는 일이 많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니 어린이날까지 추가되어 어린이날을 필두로 어버이날, 스승의 날을 지나고 나야 남은 5월의 달력을 음미할 여유가 생기는 듯하다.
선물을 고르는 것은 참 여러 감정을 일으키는 것 같다.
나의 마음에 흡족한 것이라야 행복한 고민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다만, 다른 이에게 보내는 선물을 고르는 것은 행복하면서도 긴장되고 여러 방면에서, 여러 단계를 거쳐야만 결정할 수 있는 어려운 일이기에.
소심한 나는, 선물을 고르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지만 선물을 전달하고 나서도 많은 생각을 하곤 했다.
'마음에 들었을까?'
'잘 쓸까?'
'좀 더 좋은 걸로 살 걸 그랬나?'
혹은
'부담스러웠으려나?'
다음번 상대를 만나기 전까지 이런 생각들을 하고, 상대를 만나고는 다시 눈치를 살피는 것이다.
이런 나의 태도에 일찌감치 친정 엄마는 그러지 마라고 신신당부를 하곤 했다. 네 손을 떠난 것이니 선물을 주고 나서는 신경 쓰지 말라고.
그도 그럴 것이 엄마에게 선물이라며 챙겨줬다가도 눈치를 봐서 영 쓰이지 않는다 싶으면 다시 가져간다고 가져온 물건이 여럿 되다 보니 엄마는 혹 다른 사람한테도 내가 그럴까 봐 걱정 어린 투로 나를 타박하셨다.
그럴 때면 아니, 어차피 잘 쓰지도 않는 물건이니 가져가서 내가 대신 쓰겠다는데 뭐 어떠냔 식으로 되받아치곤 했다. 다시 내다 팔든, 잘 쓸 사람에게 다시 주 든 해서 물건이 쓰이는 게 더 효율적인 거 아니겠냐며.
그런데 이게 시어머니에게는 도통하기가 어려운 일이었다.
선물을 사기 전에 고심을 하고 고르는 과정은 같으나, 마음에 들어 보이지 않는다 해서 시어른에게서 내가 다시 되가져 온다는 것은 생각도 하기 힘든 문제였다.
다만, 남편에게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어떡하냐며 푸념을 늘어놓는 수 밖에는.
그 외에도 사회에서 만나게 되는 직장 동료, 상사, 혹은 아이들 기관의 선생님, 친구네 집 등 여러 사람에게 필요시에 답례하는 일이 잦아지게 되자 나름의 마음을 정리하는 노하우가 생겼다.
결국은 물건으로 선물을 건넸지만 그 안에 내 마음을 잘 담았고, 허투루 고른 게 아니었고 고심하였으니 그걸로 됐다. 선물을 주고 난 이후에 그 물건에 대한 결정권은 받은 이에게 모두 넘겨주자. 아마도 선물인지라 그것이 마음에 넘치건 부족하건 고마운 마음은 같을 것이다.
보통의 식당에서 우리는 주 메뉴인 메인 요리를 고르지, 반찬까지 전부 선택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고른 메인 요리는 당연히 그 맛이 보장된다면야 매우 흡족할 수밖에 없지만, 반찬은 주방의 결정에 따르는 것이기에 내가 잘 먹지 않는 것이 나올 수도 있고, 평소에 좋아하는 것이 나올 수도 있다. 함께 곁들이면 좋을 것 같다는 주방장의 결정에 따라 딸려 온 반찬이기에 행여나 손님이 반찬을 많이 남기더라도 주방장은 크게 서운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깨끗한 그릇을 본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지만 반찬은 오롯이 주방장이 결정하여 식탁에 올린 것이니 손님의 마음이 모두 한결같이 오케이 일리는 없지 않겠나. 정중히 음식과 함께 내어 대접했다면 그걸로 된 일이다.
이렇듯 모두가 나와 같은 마음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편하겠지만, 우리는 모두 다른 존재이기에 항상 상대를 다루는 것이 조심스럽고 어렵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결국 모두 다른 생각을 갖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기에,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한들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나와 다른 생각을 갖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개중에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날 때, 그때 크게 기뻐하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