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순간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 그 앞뒤의 행간 읽기.
아이들이 태어나고 휴대전화 속 사진첩에 내 사진의 비중은 현저히 줄었다.
매일의 아이들을 기록하느라 바쁜 사진첩.
그럼에도 내 손 안에 있는 카메라로는 가족 넷을 모두 담기에 아쉬우니, 매 해 두 번 정도는 사진관에 찾아가 가족사진 겸 형제사진을 찍어준다. 처음에는 아이들의 생일을 기념해서 간단히 찍기 시작했던 것이 몇 해 반복하다보니 으레 그렇게 하는 일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사진관 주인 아저씨와도 제법 친해지고 처음엔 사진만 찍고 헤어지던 사이에서 그나마 스몰토크 정도는 하고 안부를 전하는 단골이 되었다.
사진을 편집하기 위해 펼쳐둔 폴더 속에서 개구진 우리 아들 형제와 비슷한 이야기를 가진 다른 가족들의 사진도 보게 되고, 또는 강아지와 함게 찍은 가족 사진 등 여러 사진이 주는 이야기를 사진 속에서 읽을 수 있었다.
그러다 행복한 모습으로 촬영을 시작했다가 끝내 엄마의 눈시울을 붉힌 한 사진을 마주하였다. 엄마와 여덟아홉 남짓 되어보이는 딸 아이, 단 둘이서 찍은 사진이었는데 딸은 연신 해맑은 표정을 지었고 엄마 역시 행복한 미소를 보였다. 그러나 촬영이 시작되고 조금 지난 사진을 보니, 행복한 모습 그대로인 딸과는 달리 엄마의 얼굴은 굳어지고 눈은 빨갛게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노력하는 얼굴이었다. 사진관 아저씨께서는 자세한 사연은 알 수 없지만, 엄마가 갑자기 눈물을 보이셔서 촬영을 중단했다는 이야길 덧붙여 주셨다.
엄마는 어디론가 떠나는 모습이었다.
정말 먼 거리를 가는 것인지, 아니면 그럴 수도 있는 확률을 가진 것인지, 그도 아니라면 멀어질까 두려운 것인지, ...
함께라서 행복한 이 순간을 찍기 위해 찍는 가족사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는 사진이었다.
어느 누군가는,
함께라서, 행복한, 이 순간을 간직하기 위해, 이 순간을 멈추어 기록하기 위해, 언제라도 다시 꺼내볼 수 있도록 남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 행복을 내가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 벅차면서도, 행복이 흐려질 때가 올 수 있다는 두려움과 슬픔을 함께 맞닥뜨려야하는 어느 누군가가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
고등학교 시절, 모의고사 준비를 위해 문제풀이를 하던 중 '그리움'이라는 단어의 해석 때문에 답을 맞히지 못했던 적이 있다.
자세히 기억 나진 않지만, 나는 그리움이라는 단어의 해석을 '현재로써는 다시 가질 수 없기 때문에 가지는 마음'이라 생각했다. 그에 대한 해설지 속 답변 역시 명쾌하게 와닿지 않았다. 이에 대한 의문을 품고 쭉 살던 어느날엔가 그리움은 내가 다시금 가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쓸 수 있다는 것을 저절로 익혔던 적이 있다.
내가 가진 어떤 것에 대한 해석, 소위 관념 혹은 고정관념이 맞지 않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확장이 일어나면서 큰 혼란과 깨달음이 함께 한다.
이 날 내가 마주한 모녀의 슬픈 가족사진 역시 내가 가지고 있던 가족사진이라는 의미가 넓어지게 해주었다.
앞으로도 있을 행복한 모습 중 한 컷을 스틸로 남겨놓는 것이 아닌, 누군가에게는 행복이 옅어질 때면 다시 짙음을 채우기 위해 필요한 지금의 행복을 남겨둘 수도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