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행복을 빌어야 한다

각자 위치에서 잘 살다가 또 언제건 다음에 만나거든 반갑게 맞이하자

by 이소한

친구가 결혼을 했다.

그 덕분에 오랜만에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겨두고 3박 4일동안 일명 '자유부인'데이를 획득했다.


지금은 서울에서 꽤나 먼, 지방에 사는 나로서는 이런 기회가 아니면 서울에 있는 친구들을 본다는 건 정말 쉽지 않다.


나야 서울에 친구들이 몰려 있기 때문에 나 하나만 이동하면 여럿을 볼 수 있지만,

친구가 나를 보기 위해 지방으로 내려온다는 것은 정말 단순히 오로지 나를 만나기 위해 내려오는 일에 가깝기 때문이다.


서울로의 3박 4일 단꿈같은 휴가는 친구의 청첩장을 건네 받았던 때부터 이미 기획된 일이었으나,

그렇다하여 올라가서 만나자고 몇 달이나 전부터 약속을 잡는 다는 것도 맥락없는 일이다 싶어 기다리고 기다렸다.

결혼식 d-30일까지.


왕복 기차표를 끊고, 묵을 숙소를 예약했다.

그러고나서 모든 게 확실해 졌을 때 나의 3박 4일의 빈칸을 테트리스 하듯,

보고 싶었던 순서대로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나는 카카오톡을 제외한 SNS를 일절 하지 않는다.

고로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온 뒤 나의 인간관계는 말 그대로 지금 당장 생활에 필요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 상대가 아닌 이상 넓게 뻗어나가지 못했고 유지는커녕 점점 좁아지는 듯했다.


내 연락에 다들 첫 반응은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냐는, 믿기 힘들어 하는 눈치였다.

'지방에 내려간다. 결혼을 했고 아이를 키운다.'정도가 아마도 나에 대해 아는 대략적인, 마지막 정보였을 터이다.


연락했던 이들 중 모두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중 몇몇은 이미 해외에서 정착하여 살고 있는 이들도 제법 있었지만, 연락해 줘서 고맙다는 답장에 연락하길 잘 했다는 생각을 했다.

나 역시도 솔직한 나의 소회를 담아 마음을 전했다.

뭔가 만남을 기약할 수 없는 거리에 와 있다는 사실만으로 선뜻 연락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그래도 가끔 보고 싶었고 이렇게 이 기회에라도 안부를 서로 전할 수 있어 행복하노라고.


그렇게 스케쥴 테트리스를 모두 완성한 뒤 올라가는 기차에서 정말 마음이 행복했다.

약속한 이들과 당일이 되어 다시 만남을 재차 확인하고 만나러 가는 길에서도 설렘이 가득했다.

그들 덕분에 나의 3박 4일은 한 끼도 굶지 않았고 즐거운 식사의 연속이었다.


만나서 약 7년 혹은 그 이상 만나지 못했던 시간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만으로도 시간은 쫓기고 부족했다.

나의 인생의 각 지점에서 어찌 되었던 맞물려 있었던 사람들의 7년간의 이야기.

그 기간동안 조금의 차이로 틀어져 있던 각도가 뻗어나가고 뻗치며 우리는 이제 참 다른 길에 각자 서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만나자는 나의 연락에 하나같이 환대해 주며 반갑게 약속을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혹여나 누구 하나라도 본인의 현재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아 피하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서글플지 하는 생각도 했기 때문에 선뜻 만남을 허락하고 내 스케쥴에 본인의 시간을 맞추어 주는 노력이 더욱 고마웠다.


그래서 모두와 헤어질 때마다 이렇게 각자 위치에서 잘 살다가 또 언제건 다음에 만나거든 반갑게 맞이하자는 인사말로, 언제일지 모를 다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 것 같다.

인생을 살면서 내가 누구의 삶과 비교해서 어떤지 재어가며 소모적인 불평을 노래하기 보다는,

그저 각자의 위치에서 잘 살아야 우리가 다음에 또 기쁜 마음으로 만날 수 있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 결국은 옳다.


그 길이 모두가 행복한 길이고,

나의 선함을 상대가 알아주는 길이고,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길이다.


오랜만에 나의 사람들을 만나 행복했다.

남의 행복을 응원하자.

그것이 사회적 동물로서 내가 외롭지 않게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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