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壽衣)를 입히는 남자

첫 번째 글: 염습(殮襲)

by tank

사람은 누구나 다 죽음을 맞게 된다.

태어났으니 한 생애를 살아내면서 삶을 꾸려나가다가 명(命)이 다하게 되면 비로소 세상에서의 그 모든 수고로움을 내려놓게 되기 마련인데 그 끝자락에서 만나게 되는 이들을 우리는 흔히 장례지도사 또는 염사, 염쟁이라고 부른다.


혹자는 염사나 염쟁이라는 표현이 장례지도사라는 직군에 대한 비하가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스무 몇 해를 그쪽에 관계하며 지내다 보니 호칭에 대해서 많이 둥글어진 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염사나 염쟁이라는 표현이 기억 저 편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아득한 향수를 느끼게도 하기에 딱히 거부감을 갖거나 하지는 않는다.

다만 한때는 나도 다른 장례지도사들처럼 그런 표현에 다소 불편해했던 적이 있었음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먼저 염에 대해 정의하자면 세상살이가 끝난 이의 마지막 떠나는 길을 위해 몸을 씻기고 수의를 입히는 습(襲)의 과정을 통해 곱게 단장을 한 후 남아있는 이들과의 고별인사가 끝나면 머리부터 시작해서 발끝까지 염베를 사용해 가로, 세로 촘촘히 감싸게 되는데 이 행위에는 고인의 몸을 정리해 관(棺)에 모시기 수월하게 하기 위해 하는 목적도 있지만 더 큰 본래의 의미로는 생체의 모든 기능이 멈춘 상태로 조금씩 변해가는 고인의 모습이 남아있는 이들에게 흉하게 보이지 않도록 가려주거나 고인을 어머니 자궁에 웅크리고 있던 태아의 모습으로 만물의 어머니 격인 대지(大地)로 거두어 돌려보내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자면 습(襲)을 먼저 한 후에 염(殮)을 한다고 했으니 순서상으로 습염이라고 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데 오랫동안 우리의 일상에서 염습이라는 말에 익숙해져서 그렇게 굳어버린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절차에 따른 표현을 고집하자면 ‘습염’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그렇다면 습염 또는 염습의 행위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던 것일까?

인류 태생 초기부터 문명이 발달하고 문화가 정착되는 그 오랜 시간 동안의 흔적을 찾아내기란 애초 불가능한 일이기도 한 일이어서 다만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밝혀진 사실들에 대해 조금씩 귀동냥으로 들은 자료들을 통해 추측을 해본다면 인류가 정착 생활을 시작한 이후라고 보는 의견이 대다수다.


인류 초기 본능에 따른 수렵과 채집을 통해 겨우 생명을 이어가던 선사시대에는 장례(葬禮)에 대한 개념조차 없어 지역 또는 무리의 특성에 따라 막연히 자연의 순리에 맡겨오다가 씨족이 형성되고 더 나아가 부족이라는 공동체가 만들어지면서 자연스레 상호공존을 위한 나름의 규칙들을 정하게 되었고 그 약속의 책임과 필요에 따른 변화를 거쳐 오늘날과 같은 장례문화가 정착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죽음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인지를 못하던 때에는 어느 날 갑자기 생명활동을 멈춰버리면 그대로 방치해두거나 하다가 시간이 지나 부패가 진행되어 냄새가 심해지거나 하면 어디 들판에 내어놓기도 했다가 먹이를 찾아 나선 들짐승들에 의해 시신이 훼손당하는 일들이 마치 자연의 섭리인 것처럼 당연히 여겨오던 중에 씨족, 부족 등의 공동체 생활을 통해 비로소 내 가족, 내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의미가 형성되고 그 존재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되면서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부터는 그들의 시신이 방치되어 부패해가거나 들짐승들에 의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점차 풀잎이나 나뭇가지 등으로 가려주기도 하고 땅속에 묻고 흙을 덮어 주기도 한 것이 장례문화의 시작이라면 습염은 거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 남아있는 이들이 죽은 이들에 대한 예우를 갖춰 조금씩 그 형식을 갖추어 발전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쓰이고 있는 표준 장법(葬法)에 따른 염의 방식을 보면 크게 평상염과 매장염 그리고 탈관을 염두에 둔 탈관대렴으로 나눌 수 있는데 평상염은 주로 화장(火葬)을 할 때 쓰는 장법으로 가로 열다섯 매디의 염베를 사용해 세로 매디와 엮는 염을 하는 것을 말하고 매장을 염두에 둔 매장염은 가로 스물한 매디의 염베를 사용해 세로 매디와 엮어 염을 하는 것을 말한다.


다소 생소한 이름의 탈관대렴(脫棺大斂)은 말 그대로 관을 벗겨내고 몸만 땅에 묻히는 경우에 행해지는데 흔히 소렴이라고 하는 열다섯 매디의 평상염을 먼저 한 후에 다시 장포를 덮어 가로 스물한 매디의 염을 더해 세로 매디와 엮어내는 것으로 주로 선산이나 공원묘지에 관 대신 곽(槨)을 두어 매장을 하는 경우에 이 장법을 많이 쓴다.


나무로 만든 관 대신 석회 등으로 만든 곽을 쓰는 이유는 나무로 만들어진 관이 썩으면서 봉분이 내려앉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주변 나무들의 뿌리가 혹시라도 관을 침범해 육탈(肉脫)이 이루어진 고인의 뼈를 밀어냄으로써 생길 수 있는 유해의 손실을 막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어떤 방식의 염이든 염을 마친 모습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전히 감싼 형태가 되는데 입관예식에 참여해 지켜보던 대부분의 유족들은 염이 완성되는 모습을 보면서 ‘누에처럼 아름답다’ 라거나 ‘강보에 싸인 아기의 모습 같다’는 등의 표현의 감동을 통해 고인의 죽음에 대한 위로를 받는 모습은 새삼 장례지도사로서의 긍지와 보람을 느끼게 한다.

다만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많은 이들이 전통 장법을 고수하며 그 맥이 끊이지 않도록 노력하는 반면에 근래에 들어 이런저런 핑계와 이유로 인해 습만 하고 염을 하지 않은 상태로 입관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화장(火葬)의 증가로 인해 흔히 ‘화장할 건데 염은 안 해도 된다.' 라는 식으로 그럴싸하게 둘러대거나 편리와 시간적 효율성을 이유로 유족들을 현혹하는 이면에는 염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거나 또는 장법에 대해 자신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습관화되다 보니 염하는 법 자체를 잊어버리게 되어 염의 가장 기본이 되는 평상염조차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대충 큰 관절만 매질을 해서 입관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됐고 이는 매장을 할 때에도 ‘관 뚜껑 덮으면 안 보인다.’는 식으로 눈가림하는 경우로까지 이어지게 되어 급기야 탈관대렴에 이르러서는 염을 할 줄 모르니 할 줄 아는 이를 초빙해 염을 대신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가다간 어느 시점에 이르러 오랫동안 이어져 온 우리의 무형유산 하나가 흔적도 없이 소멸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아쉬움이 크다.


염이 단순히 하나의 과정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고인과 남아있는 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위로와 예우임을 잊지 않고 지속적인 승계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