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壽衣)를 입히는 남자

두 번째 글: 수의(壽衣)

by tank

“어머니가 생전에 준비해두신 수의가 있는데 그것으로 하면 안 될까요?”

오랫동안 요양병원에 모시고 있다가 돌아가신 분의 장례절차 상담을 하던 중 상주는 내게 조심스레 물었다.

윤달에 수의를 준비하면 오래 사신다고 해서 형제들이 의논해 오래전에 준비해 둔 수의로 어머니 마지막 가시는 길에 입혀드리고 싶다는 말에 “당연히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하고 수의 상태를 한번 보자고 했더니 집으로 간 상주가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 수의가 든 상자 두 개를 들고 왔다.


하나는 자식들이 어머니의 무병장수를 위해 지어준 옷이고 다른 하나는 돌아가신 분께서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미리 장만해두신 것이라고 했다.

이미 꽤 오랜 시간이 흘렀으므로 수의의 상태가 괜찮을까 싶어 조심스레 상자를 열고 보니 아니나 다를까 수의 곳곳에는 좀이 슬어 있었고 두루 색이 변질된 곳과 퀴퀴한 냄새가 배어났으므로 수의로는 차마 쓰지 못할 상황이었다.


“이 옷을 입혀드리기에는 옷이 너무 상했습니다.

혹시 다른 옷은 없는지요?

어머니께서 즐겨 입으시던 옷이나 한복도 괜찮습니다,” 했더니 낭패한 표정을 짓는다.

“이거 비싸게 주고 한 옷인데”라며 집에 다시 다녀오겠노라고 나서서는 또 그렇게 한참 후에 한복 등이 든 옷 보따리 하나를 들고 왔다.

역시나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 관리가 되지 않아 상한 곳이 많은 옷이었다.


그냥 입혀드리면 안 되느냐는 상주의 말은 나를 잠시 고민에 빠지게 했지만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사람도 아니고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겠구나 하고 연유를 물었더니 “지금 갑자기 어디서 수의를 구해올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수의 구하는 일이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곳 장례식장에 비치되어있는 것도 있고 수의를 취급하는 업체에 연락하면 쉽게 해결이 됩니다.” 하고 안내를 했더니 그때서야 마음을 놓는다.


어느 장례식장이든 상담실이나 로비 한쪽에 장례용품이 가격과 함께 전시되어 있지만 사실 이제 막 상을 당해 장례식장 상담실에 들어선 유족들에게는 그것들을 흝어 볼 경황이 없기에 가끔 생기는 일이기도 하다.


장례 전반에 대한 상담을 마치고 상주가 물어왔다.

“그럼 저기 못쓰게 된 수의나 한복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쓰레기로 버려야 하나요? 아니면 다른 데서 보니 장례를 치르고 난 후에 어디 가서 태우고 그러던데 어디 그런 장소가 따로 있습니까?” 하는 물음이었다.

나는 상주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말했다.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기에 두었다가 내일 입관준비가 끝나고 제가 가족들을 모시러 오면 그때 저 옷 보따리들을 같이 갖고 오시면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하니 상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튿날 입관준비가 끝나고 유족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게 하고 염이 끝난 고인을 관에 옮긴 후 옷 보따리들을 풀어 하나씩 말아서는 유족들의 손에 쥐어주고 관 안에 빈 공간에 채워주십사 하고 부탁하고는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보공(補空)이라고 해서 운구할 때 고인이 흔들리지 않도록 관의 빈 공간을 채우는 일입니다.

대부분 초석이나 화장지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어머니가 준비하신 수의와 자녀분들이 준비하신 수의 그리고 어머니가 아끼시던 한복으로 서로의 마음이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채워주시기 바랍니다.”


수의라고 하면 세상을 떠날 때 마지막으로 입는 옷을 말한다.

전통적으로 수의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옷 중에 가장 즐겨 입고 아껴 입던 옷을 최고의 수의로 여겼다고 한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빈손으로 이 세상에 들렀다 모든 수고로움을 마치고 떠날 때 가장 좋아하던 옷으로 치장하고 길을 떠나는 것으로 위로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누군가는 그런 말을 남겼다고도 하지 않는가.

“빈손으로 와서 옷 한 벌 얻어 입고 가니 이만하면 성공한 삶 아닌가?”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미리 수의를 장만해두는 집이 많았다.

음력을 쇠고 남은 날들을 모아 만든 윤달은 손 없는 달이라고 하여 윤달에 수의를 해두면 장수한다는 속설에 따라 너도나도 수의를 준비해두는 것이 유행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속설은 속설일 뿐 실상은 수의를 팔기 위한 수의제작업체들의 상술이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마음이 여린 사람들일수록 무엇인가에 의지하려는 심리를 이용해 윤달은 귀신도 쉬는 달이라거나 또는 손이 없는 달이라거나 해서 이때 수의를 장만해두기도 하고 묘의 이장을 하기도 한다.

문제는 수의의 보관방법과 관리에 있다.

우리가 일상복으로 입는 옷들도 정기적으로 관리를 해주지 않으면 좀이 슬거나 헤져서 입을 수 없게 되는 것처럼 수의도 섬세한 관리가 필요하다.


삼베로 지은 수의는 한 번씩 통풍건조를 해주는 것 외에도 사이사이 한지를 대어 보관해야 할 정도로 세심한 손길이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그냥 쟁여두고 있다가 막상 일이 닥쳐 사용하려고 열어보면 그제서야 관리에 소홀했음을 깨닫게 되곤 한다.


수의의 재질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변화를 거쳐 비단이나 명주 또는 무명이나 삼베 등등으로 제작해왔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수의에 대한 생각들이 다소 달라져 꼭 삼베 등으로 만든 수의가 아니더라도 평소에 자신이 즐겨 입던 옷이나 특별한 날에 입었던 옷들을 자신의 수의로 입혀주기를 바라는 이들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예를 들자면 본인의 결혼식 또는 자녀들의 결혼식이나 어떤 기념일에 입었던 드레스나 한복을 입혀주거나 심지어는 청바지나 티셔츠 차림으로 보내주기를 원하는 이들도 있다.

어떤 이들은 격식에 어긋난다며 도리질을 하기도 하겠지만 굳이 형식에 얽매이기를 원하지 않는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이들이라면 그것도 괜찮은 변화라고 생각한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체형의 변화로 인해 옷이 맞지 않는 경우다.

보편적으로 수의는 평상복보다 조금 넉넉한 치수로 만들어지는 편이어서 체형의 변화와 상관없이 입혀드릴 수 있고 평소 품이 넓게 입던 한복 또한 크게 무리 없이 입혀드릴 수 있으나 몸에 꽉 끼는 청바지나 티셔츠는 복불복이라 할 수 있겠다.


참고로 수의의 특징을 덧붙이자면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라는 것과 ‘수의를 깁는 바느질에는 매듭을 짓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머니가 없는 것은 이 세상에서의 것을 저세상으로 가져갈 수 없다는 깨달음을 위한 것이고 매듭을 짓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서의 모든 은원을 다 풀어 내려놓고 편안히 가시기를 바라는 염원이기도 하다.

욕심을 경계하고 용서와 화해를 권고하는 조상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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