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글: 고려장 유감
“나라에 심한 흉년이 들어 초근목피로 생명을 이어가던 시대에 사람들은 더 이상 먹을 것이 없게 되자 어린아이를 잡아먹기도 하고 젊고 힘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라도 살기 위해 나이 먹고 힘없는 노인들을 몰래 지게에 지고 깊은 산에 가서 버려두고 오곤 했는데 어느 한 노인이 자기를 버리고 돌아가는 자식이 혹시라도 깊은 산중에 길을 잃어 고생할까 싶어 자식 몰래 나뭇가지를 꺾어 표시를 해두고 그런 부모의 마음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 자식이 다시 노인을 업고 집으로 돌아와 모시고 살았다” 하는 내용은 우리에게 고려장이라는 제도가 실제로 있었던 일처럼 꾸며내기 위한 것으로 얼핏 효를 가장한 해피엔딩으로 보이지만 면면을 뜯어보면 엄청난 술수가 숨어있음을 깨닫게 된다.
지금처럼 기술이 발달한 시대가 아닌 모든 것이 하늘의 뜻에 달려있던 농경사회에서 어느 해는 적정기후로 풍년을 맞아 풍족한 먹을거리와 함께 조금은 여유가 있는 삶을 누릴 수 있었으나 또 어느 해는 심한 가뭄이나 이상기온으로 인해 흉년을 맞게 되어 배를 주리거나 삶의 여유가 척박해지는 것은 인위적으로 해결할 수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온몸으로 현실에 적응해야 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기근이 심하면 굶는 일은 예사였고 초근목피로라도 연명을 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마저도 어려운 이들 중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도 생겨나기 마련이고 적절한 치료법조차 없었던 탓에 질병에라도 노출되면 자연치유와 경험에 의한 치료 외엔 기댈 곳이 없어 주변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당연한 순리로 알았던 시절에 천륜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살기 위해 늙고 힘없는 부모를 지게에 지고 산에 버리고 오거나 어린아이를 잡아먹었다는 미개한 문명이었다는 것을 조작하기 위해 극한의 굶주림을 동원해 동정심을 자극하고 한편으로 은근슬쩍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산에 버리려던 노부모를 다시 집으로 모시고 와 함께 살았다는 효자(?) 이야기를 끼워 넣는 식으로 있지도 않았고 있을 수도 없었던 고려장에 대해 마치 그것이 부득불 실제로 행해졌던 풍습이었던 것처럼 교묘히 포장해낸 고도의 기만술이라는 것이다.
한민족의 역사는 공동체 발달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씨족. 부족사회를 거쳐 다듬어져 온 것으로 우리 민족의 공동체 의식은 지금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결속력을 가지고 있다.
굳이 외국에 나가면 애국심이 더 고취된다는 식의 표현이 아니더라도 흔히 주변에서 보이는 혈연. 학연. 지연 등등의 관계가 그렇다.
때때로 그 정도가 지나쳐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힘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어느 한순간 형성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두고 학습된 것이기에 가능하다.
이웃이 어려운 일을 당하면 같이 힘을 보태고 콩 한 쪽도 나누어 먹는다는 표현을 할 정도로 이타심이 강한 민족이자 숱한 외세의 침략에도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강인한 특유의 민족 얼을 와해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일본의 문화 말살 정책 중 하나가 바로 이 고려장이라는 이야기다.
침략을 통해 조선을 식민지화한 일본은 무력을 앞세워 한 민족의 역사가 담긴 수많은 문화재를 수탈해 갔고 심지어 무덤 속의 부장품(죽은 이를 매장할 때 같이 넣어주던 귀중품이나 애장품)에도 눈독을 들여 고분을 파헤쳐 도굴해가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이때 무덤을 파헤치는 일에 조선인 노역자들을 강제로 동원하려 하였으나 효 사상을 중시하는 조선인들이 “묘는 건드리는 것이 아니다.” 또는 “조상들의 묘를 함부로 건드리면 대대손손 흉사가 끊이지 않는다.” 등의 이유를 들어 작업을 거부하자 그들을 회유하기 위해 기록에도 없는 고려장 이야기를 지어내 “너희 선조들이 대단한 줄 알지만 사실은 이런 사람들이었다.”라고 세뇌시킴으로써 민족에 대한 열등감과 함께 그런 핑계를 통해 무덤을 파헤치는 일에 대한 죄책감을 상쇄시키려 했다는 것은 이미 익히 알려진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고려장이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저들의 음모가 얼마나 치밀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비단 고려장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어서 광복 팔십 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우리 생활 곳곳에 그 시절의 잔재가 남아있음을 우리는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무력으로 조선을 침탈하고 지배하던 일본이 조선 백성들의 얼을 말살하기 위해 사용한 수단으로 조선의 문화를 왜곡하거나 변형시켜 우둔한 식민지 백성으로 둔갑시키려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그 잔재가 지금까지도 대한민국 곳곳에서 활개를 치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통탄을 금할 길이 없다.
해방 이후 많은 이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저들이 말살시킨 전통문화에 대한 복원이 조금씩이나마 이뤄지고 저들에 의해 왜곡된 사실들을 바로잡기 위해 지속적으로 꾸준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음은 다행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적잖은 사람들이 고려장이 실제로 있었던 일처럼 받아들이고 심지어는 “현대판 고려장” 이니 하는 말들로 저들의 문화 왜곡에 앞장서서 동참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무리 우수한 민족성을 유구히 이어온 민족이라고 하더라도 나라를 빼앗기고 문화가 유린되면 어떤 치욕적인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 되짚지 않을 수 없다.
비극적인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역사를 기억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 또한 중요하다고 본다.
이미 고정명사가 되어버린 ‘고려장’이라는 말에 대해 ‘고려장은 없었다.’라는 올바른 인식과 함께 더는 ‘현대판 고려장’이니 하는 식의 표현들은 사용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