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21 <채윤의 방>
엎드려 누워 휴대폰 속 SNS쇼츠를 보던 채윤은 깜짝 놀라며 일어나 자리에 앉았다.
채윤: (혼잣말) 어머. 여기.. 우리 고등학교 때 다니던 그 떡볶이집 같은데? 주소가.. 어머어머 웬일이야. 그 집 맞네.
여고동창모임. <지성과미모포에버소녀단> 단톡방에 캡처한 사진을 올린다.
<깨톡 창>
채윤: 여기 다들 알지??
아름: 푸하하하하 이게 웬일이야. 여기 우리 고등학교 때 버스까지 타고 가서 먹던 그 떡볶이집 맞지?
시영: 어머어머 여기 아직도 있어?
정현: ㅋㅋㅋㅋㅋ 대박이다 진짜ㅋㅋㅋㅋ
신비: 얘들아 ㅋㅋㅋ 올해 연말모임은 여기로 결정이다ㅋㅋㅋㅋ
지금으로부터 27년 전, <지성과미모포에버소녀단>은 꽃다운 여고생들이었다. 학교 앞 떡볶이집을 마다하고 굳이 굳이 버스를 타고 찾아다니던 유성구 진잠종합시장 근처의 작은 떡볶이집, '떡볶이와 친구들'이 틱톡SNS에서 [대전 노포 맛집] 인기쇼츠로 검색된다.
글자를 뚫고 떠오르는 모두의 표정, 말투 그리고 몸짓. <지성과 미모포에버소녀단>의 단톡방은 왁자지껄하다.
채윤: 연말까지 어떻게 기다려. 오늘 금요일이네. 점심 번개어때ㅎㅎ 올 수 있는 사람은 무조건 다 모여. 난 오후 반차쓰겠어!!
아름: ㅋㅋㅋㅋㅋ 미친 실행력ㅋㅋㅋ
정현: 나 가능
시영: 난 서울이자너ㅋㅋㅋ 미친 실행력이네 진짜ㅋㅋ
신비: 그래서 오늘 모일 거야? 오픈런해야 하는 거 아냐? 내가 가서 줄 서있을게 ㅋㅋ 우리 집이 제일 가까워.
채윤: 신비야... 아직 출발 안 했어?
신비: ㅋㅋㅋㅋㅋㅋㅋㅋ
아름: ㅋㅋ오늘 신비는 떡볶이 값 내지 마ㅋㅋ
신비: 그래서 누구누구 올 수 있는 거야? 대답을 하시오.
채윤: 2시 가능
아름: 나도 2시 가능
정현: 나 11시 이후 가능
시영: ㅠㅠㅠㅠㅠㅠㅠ 난 못 가 ㅠㅠ
신비: ㅋㅋ 정현아 어서 준비해. 우리 집 앞으로 나 데일러와.
정현: 그럼 나도 오늘 떡볶이 값 안내냐?ㅋㅋㅋ
채윤: 우리 정현이가 이래서 부자가 됐어요ㅋㅋㅋ 그래 너도 내지 마ㅋㅋ
Scene. #22 <떡볶이와 친구들 내부>
낡은 간판, 벗겨진 메뉴판, 긁히고 색이 변한 바닥타일이 27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호들갑 떨며 그 시절 감성을 논하는 친구들을 보며, 아름은 마음속으로 여고생 시절 추억이 깃든 떡볶이 집이 아니었다면.. 지나가다가 그냥 한번 들러볼 것 같지 않은 낡은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아름: 나 김말이, 두 개 먹을 거야ㅎㅎ
채윤: 맞아 아름이 김말이 좋아했지 ㅋㅋ
신비: 시내에 있는 '바로 그 집'맛이랑 진짜 똑같지?
정현: '바로 그 집' 아직도 있어?
신비: 뭐래~~ 대전의 명물은 '성심당'하고 '바로 그 집' 이잖아~~
아름: 시영이한테 사진 보내줘. 일이 손에 잡히려나 몰러ㅋㅋ
정현: 시영이가 이 집 제일 좋아했어.
아름: 그렇다면 더 먹음직스럽게 데코레이션 좀 해봐. 김말이 두 개 올려.
채윤: 그러다 시영이 퇴근하고 대전 내려올라ㅎㅎ
오전일과를 마치고 고향으로 향하는 아름의 마음은 내내 설렘으로 가득했다. 회춘(回春)이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아직 젊은 40대 중반이지만, 아름의 내부에서는 분명히 여고생 시절의 싱그러움이 샘솟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지성과 미모포에버소녀단>은 청춘에 있다.
아름: 이 김말이는 왜 다른 데는 없는 걸까? 여기 말고는 본 적이 없어.
정현: 이놈의 김말이타령ㅎㅎ
아름: 진짜루 잘 좀 봐봐~ 어떻게 양념에 계속 담가놔도 모양이 그대로지? 신기하단 말야.
신비: 아직까지 사장님한테 안 여쭤보고 뭐 했냐?ㅋㅋ
가족들의 배를 채우며 사는 동안 요리 꽤나 해 온 네 소녀는
고소한 크림풍미로 보아 이 집의 떡볶이 소스에는 분명 커피 프림이 비법으로 들어갔을 것이라는 둥, 버터가 아니겠냐는 둥, 어떻게 아직도 이렇게 저렴한 가격을 유지할 수가 있는지 놀랍다는 둥, 원가구성까지 추측하며 조금씩 중년의 여인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채윤: 얘들아 있잖아.....
정현: 어 나도 이제 좀 느끼해ㅋㅋ
신비: 콜라랑 사이다 좀 시킬까?
채윤: 여기, 이 가게, 간판... 우리 아버지가 하신 거야..
...
.....
.......
..........
학교수업을 마친 뒤
집과는 정 반대쪽으로 향하는 220번 시내버스를 타고
[진잠종합상가] 정류장에서 내리면 100미터가 채 안 되는 거리에 떡볶이 집이 있었다.
당시 채윤이의 아버지께서는 근처에서 간판가게를 운영하셨다.
우리의 주머니에는 항상 버스 승차권이 있었고, 언제나 220번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채윤 아버지의 가게에 들러
"아저씨 안녕하세요 오~" 큰 소리로 인사하면
"아유 이 귀여운 것들, 그런데 우리 채윤이가 제일 예쁘네" 호탕한 웃음으로 우리를 맞아주시던 친구의 아버지.
호주머니에서 반으로 접힌 만 원짜리 한두 장을 꺼내주시면 들어갈 때 보다 더 큰 목소리로 짹짹거리며 방앗간으로 향하던 참새들.
학교와 떡볶이집 사이에서 참새들의 중간 경로가 되어주셨던 당시 채윤의 아버지께서는 아마도 지금 우리와 비슷한 나이였을 것이다.
채윤 아버지께서는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투병하시다가 24년도에 돌아가셨다.
아름: 지지배.. 이거나 다 먹고 얘기하지..
어떻게 그 방앗간을 잊을 수 있었을까..
순간 아름의 눈에는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의젓하게 상을 치루던 채윤의 모습위로
그 시절 참새들과 나이가 비슷한 큰 딸의 모습이 겹쳤다.
오늘 점심 번개! 를 외치던 채윤이의 마음이 온통 그리움으로 가득했다는 걸 알아버린 나이든 참새들은 떡볶이를 제물로 둔 채 목이 메었다.
떡볶이집 사장님: 이것들이 왜 떡볶이 처먹다가 울어어??!
오늘의 생각 30.
오늘도 '삶'이라는 드라마가 생방송으로 방영되고 있습니다.
아 물론, 각종 NG나 실수도 괜찮아요.
어차피 결론은 해피앤딩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