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7시.
따뜻한 탄소매트 속에서 열 시 즈음까지 늦잠을 자고, 그 자리에 누운 채 영화도 한편 보고 싶다.
꼬르륵 배가 고파지면 피자를 배달시켜 간단히 점심을 먹고, 느긋하게 집안 정리를 하면 좋겠다.
조금 이른 저녁밥을 지어먹고
샤워를 마친 뒤 얼굴에 수분팩을 뒤집어쓰고
딸이 재미있다고 추천해 준 소설책을 읽으면
정말이지 완벽한 일요일이 될 것만 같아.
상상만 해도 흐뭇해.
아침 8시.
집 앞 스타벅스로 향한다.
치아바타샌드위치와 커피를 먹으며 영어 독해문제집을 풀기 시작한다.
Blessed /is he who expected nothing.
영어문장에서 동사(V)는 가장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으므로 일단 동사 앞에서 끊어 읽고
눈으로 빠르게 주어(S)를 찾아야 한다.
위 문장은 주어(S)-동사(V)-보어(C) 순서로 배열된 2 형식 문장 이어야 하지만,
관계대명사 수식어구로 인하여 길어진 주어를 뒤쪽으로 이동시켜 보어(C)-동사(V)-주어(S) 순서로 도치되었다.
90년대식 학습법이 아로새겨진 전두엽과 해마가 착실하게 정해진 분량의 몫을 해냈다.
3시간 후 뿌듯함과 피곤함을 정확히 절반씩 담은 아름은 집으로 향한다.
오늘 푼 독해문제집의 첫 문장이 CVS도치가 되어있는 것처럼,
내 인생의 순서도 조금은 다르게 흘러간다.
25년 하반기에는 이사와 더불어 하던 일의 대부분을 정리했다.
그 자리에 오랜 시간 동안 마음에 담아두었던 꿈의 마지막 조각을 채우기로 결심했다.
사춘기 청소년 둘을 키우는 40대 중년여성이
경제활동을 중단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본격적으로 전문 국가고시공부에 뛰어든다는 것은
말 그대로 꿈같은 일이다.
한 아이를 키울 때와 마찬가지로
엄마가 수험생이 되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내 아침밥은 스타벅스에 맡기고,
베란다와 화장실 청소는 주기적으로 헬퍼이모님의 도움을 받아야한다.
식구들의 끼니는 동네 손맛 좋은 반찬가게 사장님을 믿고 일단 가본다.
그래서 버지니아 울프는 이런 말을 했을까?
'여자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과 약간의 돈이 필요하다'라고 -
버지니아 울프의 조언을 귀담아 듣고
용기를 잃지 않기위해
옳다고 믿는 길 위에 서 있었던
지난 날의 나에게 애틋함을 전하고 싶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가능성을 모으고 있었구나.
오늘의 생각 31)
이제 동사를 만날 차례야.
그동안 주어가 너무 길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