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하는 이쁜씨

수선의 길로 들어선 지 어느새 10년째

by yibboon

1- 1 수선의 삶을 시작하기 앞서..


“이쁜 씨, 이 옷 좀 살릴 수 있어요?”


엄마를 이렇게 부르는 사람은 많았다. 동네에 하나쯤 있는 수선집. 엄마의 가게도 그랬다.

나는 늘 궁금했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수선을 시작했을까? 어떻게 자기 가게를 차렸을까? 누군가의 밑에서 일만 해온 나는 내 이름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늘 부러웠다. ‘그래도 이 정도라도 벌면 다행이지’라며 나의 바람을 애써 무시하며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40대에 접어든 나는 아르바이트를 더 이상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더 젊은 사람이 그 일을 하고 싶어 했고, 그 젊은이는 총무의 지인이었다. 몇 년 동안 꾸준히 일했고, 누구보다 성실히 했지만 끝은 허무했다. ‘이제 경력도 없고 나이도 있는데… 공장이나 식당일밖에 없겠지.’

지인의 소개로 식당에 하루 나가보았다. 잘되는 코다리찜집이었다. 무거운 도자기 접시, 뜨거운 돌솥밥. 하루만에 손목과 허리에 통증이 왔고, 병원까지 다녀왔다. 결국 지인에게 “더는 못 하겠어요”라는 문자를 보냈다. 그래도 나, 뷔페에서 몇 년을 일한 사람인데… 그보다 작은 식당에서 못 버티다니, 분하고 억울했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1 -2 내가 수선을 ?


우리 동네에는 오래된 수선집이 두 곳 있었다. 세탁도 겸하는 곳이었는데, 집에서 아무리 빨아도 아이들 교복은 깔끔해지지 않았다. 결국 맡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처음 수선집을 방문했다.

그곳엔 사장님 외에도 동네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여기 사랑방인가?’ 싶었다.

며칠 뒤, 딸의 동창 엄마가 거기에 있었다. “애들은 잘 지내지?”, “학원은 어디 다니니?”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커피 한 잔 하고 가” 하는 말에 나도 앉게 되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수선집에 앉아 시간을 보내게 됐다.

남편 출근, 아이들 등교를 보내고 오전엔 운동, 오후엔 집안일, 저녁엔 밥 짓고 하루가 끝나는 일상. 그 사이, 나의 새로운 일과가 생겼다. 아이들 등교 후 수선집 가서 믹스 커피 타 마시고, 사장님 옆에서 수다 떨고, 가끔 옷 실을 풀어주는 정도. 그리고 아이들 하교 시간에 맞춰 집에 돌아왔다.

남편은 못마땅해했다. “왜 아침마다 나가서 떠들다 와? 시간 낭비잖아.” 나는 말했다. “일하는 것도 아니고, 공장이나 음식점은 반복이라 못 견뎌. 집안일은 다 하잖아. 그냥 좀 내버려 둬.”

그러던 어느 날, 새벽에 혼자 깨어 생각했다. ‘나도 기술을 가지고 일하고 싶다. 아이들도 컸고, 이젠 시작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날도 평소처럼 수선집에 갔다. 사장님의 재봉틀 움직임을 어깨너머로 봤다.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른 기술보다 수선이 내게 맞아 보였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1인 사업장이라 바빠서 누군가를 가르칠 여유가 없었다.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우리 시에서 운영하는 여성 창업 교육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옷 리폼 강좌’가 있었고, 이걸 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인기 강좌는 수강 신청이 전쟁이라더라. 오전 10시 정각, 선착순.

그날 아침, 아이가 학교 가지 않는 날이어서 딸에게 신청을 부탁했다. 10시가 되자 컴퓨터 화면이 하얘졌다.

“얘… 이거 왜 안 돼?”

딸이 대답했다. “사람이 많아서 그럴걸요.”

손에 땀이 났다. ‘이번엔 꼭 들어야 해.’

잠시 뒤, 신청 완료 창이 떴고, 딸이 말했다. “엄마, 됐어.”

‘정말… 내가 여기서 배우면 수선집을 차릴 수 있을까?’

설렘과 불안이 공존했다. 얼렁뚱땅이었지만, 나도 수선을 시작하게 됐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