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클래식, 시대를 듣다>를 다시 읽고 쓰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거나 무언가 집중을 하고 싶을 때 항상 클래식을 듣는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클래식 100선, 클래식 명곡 모음 등과 같이 YOUTUBE에서 검색한 클래식 콘텐츠를 별다른 부담 없이 소비하는 형태이다. 음악은 듣기 자체보다는 들을 때의 ‘상황’과 ‘동기’가 중요하기 때문에, 음악은 어쩔 수 없이 ‘본연의 음악’을 즐기기 보다는 나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곤 한다.
생각해 보면 미안함이 없지 않다. 비발디, 바흐, 베토벤, 모짜르트, 슈베르트에서 현대음악의 윤이상까지…. 클래식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써 내려갔던 음악 위인들이 몇 백 년에서 몇 십 년이 지난 후에 자신이 만든 음악이 아무런 의미 없이 소비되는지 알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 마다, 나는 미안함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래식이 현대 사회에서 음악 자체로서의 ‘목적’이 아닌 현대인의 삶 속의 ‘수단’이 되어 버린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인 듯 하다.
‘클래식, 시대를 듣다’에는 시대를 대표하는 클래식 거장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녹아져 있다. 음악적 고뇌, 생활모습, 사회상, 역사적 배경은 물론, 다가 올 미래를 예측하고 서로 다른 공간과 시간을 연결시킬 수 있는 장치까지 포함시킨다. 그래서 한 명의 음악가를 모두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그런 의미라면 각각의 傳記를 쓰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다만,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 글을 쓰는 목적이기도 하지만, 가장 특색 있는 나만의 언어로 음악가들을 표현해 보는 것이 거장을 이해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표하는 특별한 방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악기와 인쇄술의 발달로 바로크 음악의 대중화를 성공시킨 "음악 열정가 비발디", 모든 음악적 화성을 만들어내면서도 신과 인간의 관계, 그 속에서 생활인과 음악가로 고뇌했던 "음악 성인 바흐", 평범함을 거부하고 일상의 획일성을 탈피하며 음악의 소비를 귀족에서 시민층으로 옮겨오면서도 자신은 그 경계선에 머물렀던 "음악 천재 모짜르트", 시대와의 불화 속에서 고전주의 음악의 기틀을 견고히 했으며 개인적 고난을 넘어서 우리를 음악적 환희의 세계로 인도한 "음악 거성 베토벤"은 우리의 음악적 기초지식을 불러 일으켜 준다,
그리고, 낭만주의 속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번민과 갈등을 겪으면서 한 평생 고독과 가난으로 지낸 "음악 방랑자 슈베르트", 현실을 회피하듯 사회와 거리를 두며 경제적 안정과 내면의 자유를 갈구했지만 내적으로 한 여인을 위한 순정을 지킨 "음악 사색가 브람스", 정치적인 색깔과 혁명적 사고를 가감 없이 음악에 입혀내며 파격을 그려냈던 "음악 투사 바그너", 음악 변방 러시아에서 서구의 음악을 바탕으로 슬라브족만의 독창적 음악을 끊임없이 그리고자 했던 "음악 민족주의자 차이코프스키"는 기존 음악을 변형시키면서 음악의 다양성의 방향을 제시해 준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고전주의와 민속적 음악을 융합하며 보편적 음악과 특수한 음악의 이중주를 성공시킨 핀란드의 "음악 애국자 시벨리우스", 19세기말 파리 감성을 그대로 녹여내며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소외와 무력감을 발전적 방향으로 변형시켜 음악의 현대화를 개척했던 "음악 화가 드뷔시", 음악의 산실 그리고 서구음악의 마지막 봉우리였던 빈의 흥망성쇠를 겪으며 세기말적인 사회 현상과 미래의 모습을 자신의 음악 언어를 재구상했던 "음악 경계인 말러",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스탈린 시대를 관통하면서 권력과 예술의 갈림길에서 고뇌했던 "음악적 쁘띠 혁명가 쇼스타코비치"에 이르러서 우리는 클래식이 지닌 가치를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선택하여 감상할 수 있는 범주의 확장을 완성시킨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클래식, 시대를 듣다>의 진정한 가치는 방대한 자료와 해석뿐만 아니라 제목에서 나타나듯이 각각의 클래식 거장들이 활동했던 시대의 모습을 시, 미술, 건축, 정치, 경제 등 사회 모든 방면에서 고찰하는데 있다. 클래식 음악이 그렇게 탄생할 수밖에 없는 ‘당위성’과 ‘가치’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되돌아 보게 만드는 것도 이 책이 가지는 힘이다. 음악가의 음악에 관한 이야기 보다는 그 배경, 동시대의 미술, 문학을 이야기 하고, 사람들의 생활상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음악은 시대의 일부분일 뿐, 시대의 변화를 가장 먼저 이야기하면서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음악가들이 시대를 음악에 어떻게 담아내고자 했는지 고민했고 어떤 방식으로 저항했는지를 설명한다. 시대의 일부분 그리고 보다 나은 생활을 구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음악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는 현대음악의 모습을 보여주며 과연 작곡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기계의 발달에 따른 작곡의 의미는 무엇인지, 우리에게 "거장"이라고 일컫는 말의 가치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찰한다.
그것에 대한 답은 아직 정확하게 내릴 시점은 아니지만, 우리는 비발디, 바흐에서 말러에 쇼스타코비치에 이르기까지 보아왔던 음악가들의 고뇌에서 작은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바로 "시대와의 불화 - 시대유감". 시대를 살면서도 자신의 시대에 결코 순응하지 않았던, 사회와 개인의 충돌 속에서 고민한 흔적들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빈(Wien)으로 대표되는 서구음악을 프랑스에서, 영국에서, 핀란드에서 그리고 러시아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며 자신의 음악 색깔로 어떻게 만들어냈는지가 개인적 차원에서 클래식을 이해하는 시작이라면, 인간과 사회 가운데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며 장엄하게 흘러온 역사로서 받아들이는 것은 클래식 이해의 마침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미술을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로 시작했다면 클래식은 이 책 "클래식, 시대를 듣다"로 시작해도 충분할 듯 하다. 글 속에서 얻은 것이 너무 커서일까? 저자의 클래식 강의는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난다. 클래식 콘텐츠를 구독하고 책을 읽는 도중 음악을 찾아 들어보고 이해할 수 있는지를 확인해 보는 일은 나에게 있어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었지만, 무언가 알게 된다는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었던 것은 이 책이 가져다 준 커다란 선물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오늘 또 하나의 名作을 만나 ‘클래식 만찬’을 즐기듯, 음악에서 인생을 배운다.
* 이 글은 SJCU 독서감상문 대회에 올려진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