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철의 <시간의 향기>를 읽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시간으로부터 항상 쫒기며 살아오고 있다. 시간을 분단위 초단위로 구분하며 시간관리를 하고 있는데도 이상하게도 우리는 시간이 모자라는 것을 느낀다. 이럴때마다 공교롭게도 그 근원을 우리의 나태함과 무력함으로 치부하며 마음과 행동을 더욱 더 압박하는 것이 사실이다.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은 세계 어디에서나 같다. 물론 빠르기로 경쟁한다면 한국이 당연 시간에 대한 압박감은 1위를 달리겠지만, 한국인 입장에서 직업상으로 시간이 주는 의미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마감, 기한이라는 말은 사회 생활과 더불어 항상 따라다니고 우리를 알게 모르게 압박하고 있다.
한병철 교수의 <시간의 향기>는, 피로를 느끼게 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과 그 속에서 여유를 찾아야 한다고 이야기한 <피로사회>의 연장선에 위치한 책이다. 피로사회의 원인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욕망, 멈추지 못하고 나아가야 한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속성에서 찾은 것처럼, <시간의 향기>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사용한 결과로 빚어지는 결핍과 무상함 그리고 자유를 얻지 못하고 항상 무언가에 예속되는 생활상을 자본주의 하 '사람들의 행동양식'에서 찾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속성인 노동의 근원적 의미, 자유로움, 사색을 추구하기 위한 최소한의 절규를 뒤로하고 노동 자체가 삶을 지배해버림으로써 노동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어버린 상태를 고발한다.
이러한 점은 우리가 항상 느끼는 문제들의 표면을 긁어내는 단순한 말들이 아니라 내면 깊숙히, 본질이 감추어진 현 사회의 어두운 속성을 낱낱이 고발함으로써 사회를 변혁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다. 마치 방안의 스며드는 꽃 향기 내음이 천천히 그리고 점점 더 진하게 퍼지듯이 시간 역시 칼로 난도질하며 쪼개고 쪼개서 단절된 형태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성과 영속성을 담은 찻잔의 향기로 시간이 사용되어 지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배어나온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시적인 표현일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을 속도와 단절된 형태가 아닌 은은함이 배인 연속성으로 파악하면 좋을 듯 하다.
인터넷을 통해 획득한 정보를 마음에 담아 두는 것이 아닌 눈에서 소멸되고, 노동을 통해 자유를 얻기 보다 노동 자체가 목적이고 삶의 전부가 되어버린 삶, 모든 것에 '속도'가 최우선의 가치인 현실에서 그 끝을 생각해 본다면 끔직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 달콤한 휴식, 시간의 향기를 즐겨본 적이 없기 때문에 두렵다. 그래도 되는 것인지...걱정부터 앞서고 리스크와 위기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은다.
아마 우리만큼 위기의 홍수와 빠르게 문화를 뼈 속 깊게 간직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을까? 한 때는 그것이 미덕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이덴터티를 나타낸다고 생각했지만, 외국에 나와서 한국인 보다 문화가 전혀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것은 그들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특별함에서 비롯된 문제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때로는 우리의 특별함이 세계를 호령할 무기로 작용했을지 몰라고 이제는 그 무기의 끝은 우리 스스로를 겨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좀 더 사색하고 한 곳에 머무르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하나로 관통하는 철학을 공유하는 안식이 필요한 이유다.
한교수의 책은 어렵고 또 어렵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철학이라는 것이 현실의 떠난 이상적인 학문이 아니라 현실 담론 수준으로 서술한 사색서라 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항상 그렇지만 받아들이느냐 배척하느냐는 우리의 마음에 달려있다.